너의 잔상이 나의 세상에 쏟아져 내린다.
빗줄기가 나의 세상을 난도질 하듯 쏟아지는 거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비가 많이 오던 그 날이 떠올랐던 것은 아니다.
그저 물기를 머금은 그 공기가 문득, 조금 많이 낯설었을 뿐이다.
이제는 건조하게 말라버린 내 추억과
이제는 덤덤하게 굳어버린 내 마음들이
메말라버린 흙더미 속을 나뒹굴던 그 때,
흙내음을 물씬 풍기며 성큼 다가온 촉촉한 공기에
바보 같이 조금 설레었을 뿐이다.
끊임 없이 쪼개지고 나누어지는 눈 앞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끝 없이 분열되는 당신의 잔상을 생각해 본다.
어느 새 당신의 눈과 코와 귀와 입술은 모두 하나하나의 조각이 되어 잠 못 이루듯 뒤척이는 공기 속에 뒤섞여 버린다.
너무 작게 쪼개져 눈에 보이지 않는 몇 몇 잔상의 조각들은 나뭇가지 위에, 모래 먼지 속에, 보도 블럭 틈에 그 작은 몸을 숨긴다.
불어오는 바람에
쏟아지는 빗줄기에
무신경한 발걸음에
작은 잔상의 조각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내 눈 앞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지면,
나의 세상은 캄캄한 밤이 되고 만다.
별도 없고 달도 없고 어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저 귓가에 찢어질 듯이 울리는 빗줄기 소리만 가득한 날카롭고 아픈 밤이.
너의 잔상이 나의 세상을 난도질 하듯 쏟아지는 거리에서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