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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링키 Nov 06. 2015

은행잎.

너의 계절 한 가운데에서 누구보다 빛날 수 있는-

 이제 갓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의 작은 몸뚱이가, 태어나 줄곧 머물러 있던 그 곳을 떠나 거칠고 메마른 시멘트 바닥으로 내던져 진 것은, 이제 막 시작된 다른 계절을 알리는 차갑고 싸늘한 바람 탓이리라.  

때로는 시원하게 리듬을 타듯 몸을 흔들게 하고 때로는 지루하지 않게 톡톡 건드려주었던 그 상냥했던 바람은, 그렇게 한순간에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존재가 되어 잎사귀들의 작은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말았다.

이제 다른 계절이 와야만 하고, 노오란 잎사귀들의 지저귐이 그 곳을 떠나야 함을, 그리하여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야 한다는 그 섭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듯이, 그렇게 바람은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지저귐도 작은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그 몸뚱이들은, 그저 하나의 노란 무덤이 되어 길거리 곳곳에 서로의 몸을 아무렇게나 맞댄 채 수북히 쌓여 있다. 시야를 노랗게 물들이고, 바람을 노랗게 길들이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그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 처절한 노란 빛을 무심하게 짓밟으며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한 여자가 있다.

파란 하늘이 너무도 눈부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두 눈에 고인 물이 떨어질까 두려워 고개를 떨구지도 못한채, 멍하니 노란 빛을 눈에 담은 여자가 있다.

차마 들지 못해 이내 떨궈진 고개 밑으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노란 빛 눈물을 두 눈 가득 머금은 여자에게 작은 은행잎 하나가 말을 걸었다.

조그마한 몸의 가운데를 갈라낸, 사랑의 형상을 닮은 모양새로.


괜찮다고, 너에게도 사랑이 다시 올거라고. 내 작은 몸을 갈라 보여줄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정말 올거라고,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비록 수많은 나의 벗들이 너의 발에 밟히고 찢기겠지만, 그래도 네가 머금은 그 빛이 너무도 고와서 그래서 말해주는 거라고. 푸르게 빛나고 노랗게 세상을 비추던, 한없이 빛나던 때의 내가 생각이 나.

나의 계절은 이제 끝이 났지만, 너의 계절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충분히 싱그럽게 빛날 수 있는 계절에 너의 빛을 미리 잃지는 말라고.

이미 끝나버린 계절의 끝자락에 매달려 노란 빛을 잃지 않으려 작은 몸뚱이를 버둥대는 내가 초라해지지 않게, 너의 계절 한가운데에서 누구보다 빛날 수 있는 네가 스스로의 빛을 지우지는 말아달라고.


 여자는 긴 손가락을 뻗어 수북히 쌓인 노란 무덤 위에 살포시 놓인 작은 잎사귀를 가만히 집어 든다. 제 몸을 곱게 갈라 예쁜 모양새로 말을 걸어준 그 상냥하고 고마운 잎사귀를.

조심스레 손끝으로 그 가느다란 줄기를 잡고 있다가, 결심한 듯 이내 자신의 지갑 속 작고 납작한 공간에 잎사귀의 몸을 뉘인다.


 어쩌면 누군가의 발에 밟혔을지도 모를, 그냥 의미없이 지나쳤을지 모를, 그 노란 더미 속에서 만난 작은 기적을 여자는 기억할 것이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여자의 발 끝에 무수히 많은 은행잎들이 밟히고 찢겨간다.

노란 빛을 머금은 여자의 눈물이 또르륵, 노란 무덤 위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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