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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링키 Jan 20. 2016

작은 화분.

처음을 마주할 수 있는 따뜻한 순간을 내게 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변함 없이 같은 모습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주는 물을 열심히 먹고는 기특하게도 언제 이렇게 작은 잎을 빼꼼히 내밀었는지-


식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다.

틈틈이 물을 준다고 해서 "잘먹겠습니다"

씩씩한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배불리 물을 줬다고 해서 "잘먹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사무실 안이 답답하다고 해서 "바람쐬러 갈래요?" 수줍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도 않고,

형광등 불빛이 차갑다고 해서 "광합성 하고 싶어요" 칭얼대듯 투정을 부리지도 않는다.

나에게 어떠한 요구도 없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그렇게 덤덤하고 묵묵하게, 모든걸 받아들이듯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은 존재가 물을 배불리 잘 먹었는지, 혹시 갑자기 배고프지는 않은지, 정수기 물 맛이 입에는 잘 맞는지, 내 책상 위를 떠나 멀리 도망치고 싶지는 않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키가 쑥쑥 자라거나 꽃이 활짝 피지도 않았기에 그저 시들지 않은 잎사귀를 보고 살아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변함없는 모습의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 문득 초록빛 잎사귀들 사이에서 연두빛의 아주 작은 잎을 보았다.

이제 갓 돋아난 듯한 작은 잎은 주변의 다른 잎들에 비해 한없이 여리고, 희미할 정도로 연한 빛을 띄고 있었다.

행여 작은 잎이 다칠세라 힘을 뺀 멍한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처음 만난 그 잎을 톡톡 두드리듯 만져보았다.   

갓 태어난 아가의 발바닥처럼 보드라워서 왠지 모르게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바람도, 빛도 없고, 먼지 뿐인 사무실에서 힘겹게 돋아났을 조그마한 잎사귀가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그저 자꾸만 쓰다어 주었.


나에게 어떠한 말 한마디도 없었지만, 온 힘을 다해 빼꼼 밀어낸 잎사귀는 그 존재만으로 "안녕"이자, "반가워"이자, "고마워" 였다.

단지 물을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민 그 예쁜 잎의 '처음'을 마주할 수 있는 따뜻한 순간을 내게 주었다.   


물이란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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