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같은 사람이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공기 속을 끝도 없이 걸었다.
끝이 닳아빠진 운동화 틈으로 채 마르지 않은 바닥의 빗물이 스며들었다.
발끝에서 시작된 그 찝찝하고도 초라한 느낌이 온 몸으로 스며드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참을 떨구어진 고개가 무거워 잠시 목을 뒤로 꺽었을 때, 나는 하나의 빛을 마주 보았다.
언제부터 였는지, 어디에서부터 였는지, 온화하게 굽은 등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노르스름한 불빛이 따뜻해서 나는 잠시 나의 초라함을 잊고 말았다.
그 빛이 나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주고, 채워주고, 감싸안아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이 부신 줄도 모르고,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등을 떠밀 듯이 불어오는 축축한 밤바람에 다시 걸음을 재촉해본다.
두 걸음 내딛자 이내 불빛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나는 다시 어둠 속 깊이 잠긴다.
발끝으로 스며든 물기어린 초라함이 운동화 가득 검게 출렁이고, 잊혀졌던 그 사람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일렁인다.
축축한 그리움이 온 몸으로 스며드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