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가 된 일의 미래 : 첫 번째 이야기
코로나로 전 세계의 업무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던 재택근무는 일상화되었으며, 화상회의는 물론 각종 플랫폼을 통해 업무를 원격으로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급격하게 바뀐 비즈니스 환경은 마치 미래의 일이 현재로 크게 앞당겨 다가온 듯 느껴진다. 우연일지 행운일지 필자가 근무하는 디지털다임에선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2019년 10월에 전사적으로 디지털노마드를 시행하고 어디서 근무를 하던 일하는 장소에 대한 제약을 풀어 버렸다. 당시에는 여러가지 반대의견도 있었고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이라서 많은 두려움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코로나가 발생을 하면서 지금은 오히려 이런 근무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가장 큰 변화이다. '현재가 된 일의 미래 : Future of Work'의 첫 번째 이야기는 왜 디지털노마드를 도입을 했는지 그 동기부터 시작을 한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처음 한 곳은 삼성전자로 대기업의 공채로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영향을 받았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과도기를 보냈다. 지금까지도 삼성 60년 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삼성 제2창업 선언이 있었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전자 제품의 품질 문제에 분노해서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불량 휴대폰 등 150억원 규모의 수거된 제품 15만 대를 쌓고 직원들 앞에서 불태워버리는 일명 ‘애니콜 화형식’도 이때의 일이다. 가격 경쟁의 시대에 품질 경영을 앞세워 삼성은 초일류 기업으로 변신을 시작한다. 개혁의 신호탄으로 삼성은 그 해 7월 전 임직원의 근무시간을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로 조정한 이른바 ‘7.4제’를 시행했다. ‘7.4제’는 이 회장의 ‘신경영’을 구체화하는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7.4제’는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게 해 물류비용을 줄이고 업무효율을 높였다. 직원들은 퇴근 후에 여가활동과 어학공부 등에 시간을 활용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8년 8개월간 실시되었고 이후 탄력근무제로 변화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런 파격적인 조치는 전무후무의 일인 것 같다.
이건희 회장이 느낀 위기의식을 본인도 회사를 창업한 후 20여 년 동안 몇 번 정도 커다란 위기를 감지할 때가 있다. 하지만 회사의 근무정책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 디지털다임이 디지털노마드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회사는 동종업계에서는 드물게 10년 이상, 신입 공채를 진행했었다. 대기업에 비해서 중소기업의 단점인 좋은 인력을 경력직으로 뽑기 어렵다면 신입부터 제대로 된 교육과 프로로 성장시켜 양질의 인재풀을 만들자는 취지였으며 지금도 공채 출신들이 회사의 핵심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형태로 경력사원을 충원해보기도 했지만 업계의 인력란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역부족이었다. 특히 3년 차 미만 직원들의 턴오버가 많아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퇴직자들에게 확인을 해보니 어떤 패턴을 발견했는데, 과거와는 달리 구체적으로 어느 회사를 결정하고 퇴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만두고 잠시 쉬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치앙마이나 발리에서 1년 살기', '제주도에서 1달 살기'처럼 여행을 다니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회사만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을 했는데 당시 서점을 가보면 퇴사를 권하는 도서들이 한 코너를 장식했을 정도였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90년생이 온다'라는 도서에서 보면, 90년대 생은 어려서부터 이미 인터넷에 능숙해지고 20대부터 모바일 라이프를 즐겨왔다. 새로운 세대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한 형식적인 콘텐츠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90년대 생뿐 아니라 이제는 2000년대 출생자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하며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앞으로 시장을 주도할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모두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우선 직장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된 것이다. 저녁 10시 퇴근, 아침 8시 출근을 경험했던 사무실 풍경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청년실업은 만성화되어가고 있지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퇴사를 시작한다. 기업에서는 '요즘 신입사원은 끈기가 없다'를 외치지만 계속해서 괴리감만 늘어가는 것은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원인이다. 자신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공정성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공정세대'이며 업무에 올인하는 것이 아닌 생활과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비효율적인 잔업이나 함께하는 의무적인 회식문화도 거부한다.
과거 세대와 같이 직장에서 돈을 벌어서 집 한 채 마련한다는 것은 이제 포기할 수밖에 없는 넘사벽이고 차라리 젊었을 때 몇 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경험을 찾아 장기 해외여행을 떠난다. 또 유투브와 같은 일인 방송이 가능한 미디어의 성장과 소셜미디어나 쇼핑 플랫폼을 통해서 얼마든지 물건을 팔 수 있는 일인기업 마켓도 성장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제공해 주고 있어서 더 이상 직장 생활에만 올인할 이유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환경과 새로운 세대에 맞는 업무환경은 그럼 무엇이 될 것인가? 이런 고민의 답은 우연히 해외 출장에서 찾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가기로 하자.
참고 및 인용
삼성전자, 또 한번의 '파격 실험' _이데일리
90년생이 온다 _임홍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