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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린 Jun 29. 2022

열정과 일상 사이

- 영화 위플래쉬 리뷰-


어떤 영화는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한다. 아니 오히려 배우들의 매력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풍부하고 깊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나도 머릿속 깊이 배우들의 불꽃 튀겼던 열연이 오래도록 박혀있다. 영화 <위플래쉬>는 그런 종류의 영화다. 위플래시는 영화 속에서 유명한 재즈곡의 이름이다. 그 곡의 연주를 사이에 두고 스승과 제자가 벌이는 대립은 스릴러 영화 보다도 더 가슴을 졸여준다. 



열정과 일상을 조율하지 못하는 사람들


여기 아주 수줍고 어딘가 순진한 한 남자가 있다. 자신을 홀로 키운 아버지에게 맞추기 위해 먹기 싫은 캐러멜 팝콘을 사 오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도 데이트 신청을 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주저하는...

하지만 그가 드럼을 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백팔십도 돌변한다. 수줍게 주저하는 몸짓은 사라지고 광기에 가까운 눈빛을 쏟아내며 열정적으로 연주에 빠져든다.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손가락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연습을 하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음악학교 밴드 수업에서 담당 교수가 자신을 갖은 수단으로 모욕하면서 벼랑 끝으로 몰아쳐도 말이다. 결국 실력으로 그 소시오패스 선생에게 인정받고야 말겠다는 욕망만이 그의 마음속을 지배할 뿐이다. 


굉장히 뛰어난 재즈 피아니트이자, 명문 '셰이퍼 음악 학교'에서 밴드를 지휘하는 교수가 있다. 그의 실력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하지만 인성엔 좀 문제가 많다. 툭하면 학생들에게 면박을 주고 조금만 틀리면 개인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모욕을 주기 일쑤인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자신의 괴팍한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때때로 학생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지, 아님 진심으로 학생들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극한으로 몰아치는 건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들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추측한다면 타인을 학대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악마적인 취향을 가진 인간인 건 부인할 수 없다. 



밴드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려는 투쟁 이야기가 이렇게 스펙터클하다고?


'위플래쉬'는 이 두 명의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대학 밴드에서 괴팍하지만 명성이 자자한 교수의 눈에 들어 메인 드러머의 자리를 꿰차고 싶은 학생의 눈물겨운 투쟁 이야기?, 혹은 음악가로의성장 이야기가 전부인 영화다. 하지만 '라라랜드'로 더 유명한 '데이미언 셔젤'은 이런 간단한 이야기로 엄청난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관객들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악마 같은 교수와 드럼만이 인생의 전부인 외골수 학생의 대결은 기이하게도 어떤 액션 영화보다 더 몰입감을 높여 주고 있다. 땀방울이 쏟아질 때,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올 때의 그 긴장감은 영화를 직접 보지 않으면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갖은 수모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한계를 뛰어넘으려 애쓰던 주인공 앤드류(마일즈 테일러)는 불운한 사고까지 당하는 등 갖은 고생을 겪다가 플레쳐 교수(J.K. 시몬스)와 심각하게 맞선다. 그 결과 앤드류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만다. 한편 지독하게 잔인한 플레쳐 교수는 그전부터 학생들을 괴롭혀서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 전력 덕분에 학부모들의 공분을 사게 된다. 학교를 그만두게 되어 억울한 앤드류는 학교 측에 설득 당해 교수에 분노한 학부모들의 편에 서서 이것저것 증언을 하게 된다. 



사람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그렇게 드럼은 잊은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내려 노력해 보지만 앤드류의 삶엔 어떤 빛도 없이 회색으로 가득한 나날들이다.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던 앤드류는 우연히 한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플레쳐 교수와 조우하게 된다. 교수와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는데 드러머가 필요하다는 교수의 말을 듣는다. 앤드류가 흥미가 있다는 걸 눈치챈 플레쳐는 메인 드러머 자리를 제안 하고 앤드류는 짧은 갈등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카네기 홀에 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공연에 임하는 앤드류. 하지만 사실 이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앤드류에게 앙심을 품은 플레쳐 교수가 앤드류를 골탕 먹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그런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앤드류... '위플래쉬'와 '카라반'만 연습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 두 곡만 연습했던 앤드류였지만, 플레쳐 교수는 오프닝 곡으로 밴드에게 다른 곡을 연주시킨다. 결국 앤드류의 드럼 연주는 엉망으로 끝나버렸고 교수가 복선처럼 말했듯 '카네기 홀에서 망친 앤드류는 영원히 재즈 바닥을 떠날' 운명에 놓이게 된다. 



열정이 광기로 변하는 순간


하지만 앤드류는 그대로 떠나는 대신 지휘자 플레쳐 교수의 지휘를 무시한 채, 앤드류 스스로의 주도로 '카라반' 연주를 시작한다. 황당해하는 교수와 밴드, 하지만 앤드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상관없다. 카네기 홀엔 그저 드럼을 치는 자신만이 홀로 존재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무서울 정도의 광기를 담은 연주가 시작되자 플레쳐 역시 묘한 열정을 느끼면서 앤드류의 주도하에 밴드를 지휘하기 시작한다. 결국 연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과 흥분을 쏟아내며 성공적으로 끝난다.  


플레쳐의 지휘와 앤드류의 신들린 연주 대결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단순한 연주 장면의 대결 구도로 이토록 스릴 넘치는 장면을 찍어낸 감독에게 다시 한번 감탄할 뿐이다. 광기에 사로잡혀 드럼을 치는 앤드류와 그를 매장시켜버리려고 했었으나 훌륭한 드럼 연주에 빠져들어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는 플레쳐 교수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앤드류와 플레쳐 교수는 서로 닮아 있었다. 사람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못한다는 점, 예술 이외의 삶엔 경멸을 보일 정도로 외골수란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어떤 노력과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독종들이란 점 등... 그래서 그 둘은 유독 서로에게 날을 세워 증오하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선 서로에 대해 인정하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말이 '이 정도면 잘했다' 란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말이 '이 정도면 잘했다.'란 말이라고 플레쳐 교수는 습관처럼 말한다. 나는 이런 플레쳐 교수의 교수법이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이런 가르침이야 말로 주눅 들어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트라우마를 줘서 키워가던 꿈마저 포기하게 할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예술가들에겐 일반인들이 왈가왈부하지 못할 뭔가 특별한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 


데이미언 감독에 따르면 예술적으로 성공하는 것과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사이엔 서로 공존하기 힘든 세계가 있다고 믿는 거 같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예술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건 내가 너무나도 지극히 일반인의 사고 체계를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ㅎㅎ


어쩌면 예술가에겐 그에 걸맞은 똘끼(열정)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감독은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과도한 열정 때문에 인생에서 평온한 일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길은 어렵고도 험난한 가 보다. 열정과 일상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말이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두 배우가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에너지 때문에 온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힘들다. 바짝 긴장해서 두 손을 영화 보는 내내 꽉 쥔 탓에,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팔다리에 힘이 다 풀려 쭈욱 늘어지게 된다. 영화와 함께 내 열정도 모두 공중분해되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누군가 그런 광기 어린 열정의 끝을 보고 싶거나, 스릴러 보다도 더한 광기의 향현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 "위플래쉬'를 꼭 추천한다. 당신도 알지 못했던 열정을 모두 끌어내어 뜨겁게 산화시켜줄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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