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십 대와 이십 대 초반 나는 늘 터널에 있는 거 같았다. 끝도 없이 이어진 시커먼 터널 속을 목적도 없이 달리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빨리 나이가 들길 바랬었다. 나이가 들면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명확해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 보니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인생의 방향이 뚜렷해지는 건 아니였다.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니 말이다.
여기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한 여인이 있다. 함께 작업하던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영화 프로듀서란 직업도 잃고, 꿈만 향해 정신없이 달리느라 연애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찬실(강말금 분)씨가 그 주인공이다. 돈이 안 되는 예술 영화만 고집한 덕분에 산 꼭대기 단칸방으로 이사하는 장면은 찬실 씨의 현실이 얼마나 암담한 지를 긴 말 없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집주인 할머니(윤여정 분)는 좀 괴상하다. 이사 온 찬실 씨를 묘한 눈으로 훑어보는 가 하면, 그 집에는 절대 문을 열어선 안 되는 금지의 방이 있음을 알려준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찬실 씨는 아끼는 후배 배우 소피(윤승아 분)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거기서 김영(배유람 분)이란 불어 과외 선생을 만나게 되고,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그와의 연애를 꿈꾼다.
이 영화가 특별히 빛나는 부분은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찬실 씨의 일상을 구구절절 장면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찬실 씨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어린 시절 좋아했던 배우 장국영을 닮은 환영(김영민 분)을 가져온 참신한 구성은 재치 만점이다. 귀신인지 찬실의 환상인지는 명확이 알려주고 있지는 않지만, 장국영과의 대화들을 통해 찬실 씨의 고민들과 힘듬을 구질구질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방식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맞이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란 후회의 순간을 말이다. 십 대라면 친한 친구와 싸우거나 성적이 안 좋을 때, 이십대라면 직장을 못 구하거나 이별을 마주칠 때, 삼십 대 이상이라면 실직을 하거나 혹은 정성껏 키운 아이가 자신의 뜻대로 나아가지 않을 때......
그럴 때 우린 절망에 찬 낙담을 하면서도 뭔가 그 시간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탈출구를 찾게 된다. 그게 사람이건 일이건 말이다. 그래서 쫓기듯 사랑을 찾고, 소홀히 던져두고 홀대했던 꿈을 찾고, 새로운 취미를 찾기도 한다. 찬실 씨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대화가 잘 통하는 김영이란 남자를 만나자, 그에게로의 도피를 꿈꾼다. 그렇게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시나리오 작가 겸 불어 강사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시를 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민망한 거절......
얼굴이 화끈거리는 뻘쭘한 시도였지만 그 덕분에 찬실 씨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자신의 암담한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선 누군가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뭔가를 갈구하듯 쫓는 사랑이나 꿈은 결국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갈 뿐이란 걸....
찬실 씨가 영화 일을 하게 된 건 오래전 '집시의 시간' 이란 영화를 본 게 결정적인 게기였다. 그 영화를 보고 이미지에 취해서인지, 아님 영화라는 목적을 이미 정해 놓고 꿈을 찾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 시절 트렌드를 따르고 싶은 지적 허영을 쫓았던 거였는지, 지금도 찬실 씨는 정확히 모르겠다. 무슨 의도로 영화 일에 뛰어들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꿈도 사랑도 자기 자신부터 성찰한 뒤에 쫓아야 진정으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그녀는 이젠 알 것 같다.
인생은 매 순간 꽉꽉 채워야만 행복한 게 아니다. 가끔은 사람도 일도 애써 비워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찬실 씨에게 그런 깨달음을 주는 캐릭터가 집주인 할머니이다. 사실 그 할머니에겐 딸이 하나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아마도 젊은 나이에 그 딸은 죽었다. 할머니의 딸도 영화를 좋아했었고 온갖 영화 관련 자료들에 파묻혀 살았다. 옛날 비디오테이프들과 영화 관련 자료가 고스란히 놓여 있는 방이 절대 문을 열어 서는 안 되는 '금지의 방'이었다. 그런 방을 찬실 씨에게 오픈해 주는 장면에서 꾹꾹 누르고 살던 할머니의 슬픔을 엿볼 수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선 그 어떤 것 보다 자신을 비워내는 게 먼저란 걸 느끼는 장면이었다.
사라(사람)도 꼬처러(꽃처럼)
도라(돌아) 오며느(오면은)
어마나(얼마나) 조케쓰니까(좋겠습니까)
까막 눈 할머니가 한글을 배워 숙제로 시를 쓰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삐뚤빼뚤 맞춤법이 다 틀린 글을 찬실 씨가 읽으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아올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어린 시절 내 인생은 어두운 터널 같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캄캄한 터널 속을 헤맬 때가 많다. 하지만 그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달려가는 곳이 터널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 들판이라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곳엔 나무도 꽃도 강물도 눈부시게 맑은 호수도 있다. 그 수많은 가능성의 세상에서 무엇을 만날지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마지막에 찬실 씨가 보름달을 보면서 기원하듯, 각자 개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 그게 인생인 거 같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작품은 '현진권'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이다. 두 작품 모두 아이러니한 우리네 인생을 반어적 제목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운수 좋은 날>이란 행복 충만한 제목을 가져와 비극을 극대화했듯, <찬실이는 복도 많지> 역시 긍정적인 제목을 가져와 암담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매 순간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재치와 해학미가 넘쳐흐른다. 그게 이 영화의 감독(김초희)이 지닌 가장 큰 재능 같다.
어느 시절이든 삶은 힘듬과 괴로움에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힘을 내어 계속 살아내야 한다. 인생길에서 간간히 맞닥뜨리는 소소한 행복들 때문이라도 말이다. 게다가 삶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도 '단 한 번'씩만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니까.
1. 난 대다수의 한국 영화감독들에게 좀 불만이 많았다. 왜냐면 너무 자신만이 옳다고 관객에게 강요하는 영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찬실 씨가 '크리스토퍼 놀런' 영화를 좋아한다는 불어 강사를 이해 못 하는 장면이다. 예술 영화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찬실 씨의 태도 또한 사실은 자신만의 아집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태도다. 하지만 찬실 씨는 기특하게도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인다. 그게 찬실 씨가 고난을 통해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2. 동시대에 열광한 배우분이 아니라 난 윤여정 배우에 대해서 잘 모른다. 분명한 건 그 나이 동료 배우들 중에서 처음부터 원탑은 아니셨다는 거다. 하지만 50년여 년의 세월을 연기라는 한 길을 걸은 덕분인지, 지금은 당당히 말해도 될 거 같다. 동료 배우들 가운데 '탑 오브 탑'이 윤여정 님이란 걸. 역시 장인의 길로 가는 방법은 꾸준한 실천과 반복 밖에 없는 거 같다.
끝으로 나도 인상 깊게 봤었던 영화 <집시의 시간>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졌다. '복도 많은 우리의 찬실 씨'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