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거윅의 영화 <작은 아씨들> 리뷰
어느 시대나 예술가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 같다. 언젠가 유명해질 수도 있다는 기약 없는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창작 활동을 하는 건 고행에 가깝다. 19세기 말 뉴욕, 여류 작가를 꿈꾸는 '조'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원고가 채택되길 기다리면서 편집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조는 잔뜩 긴장한 상태다. 썩 만족스러운 딜은 아니지만 최초로 자신의 원고가 팔리자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동생 베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렇게 영화 <작은 아씨들>은 시작된다.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읽은 책 중 하나가 '작은 아씨들'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 수도 없이 읽어서 너덜너덜 해진 책을 손에 들고 투명 테이프로 꼼꼼히 부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그렇게 이 책을 좋아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딸들에게 한 없이 따뜻한 어머니에 대한 끌림? 아님 각기 개성 강하고 아름다운 네 자매들에게의 매혹? 그것도 아니면 잘 자라나 각자의 삶을 멋지게 개척해 나가는 여성을 향한 동경? 이유야 찾으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찬찬히 돌아본 후에 내린 결론은 가끔은 힘들고 답답한 시간들도 있지만 생애를 거쳐 가장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의 소녀들 이야기가 나를 매료시켰기 때문인 거 같다.
셀 수 없이 많이 읽어 문장 하나하나까지도 외울 정도인 이 이야기가 다시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기존의 영화들처럼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수준에 머물러서 어떤 새로움도 없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내 관심사는 온통 나의 영원한 헤르미온느인 '엠마 왓슨'에게만 꽂혀 있었다. 여기선 또 얼마나 아름답게 나올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기존의 리메이크작들과는 달랐다. 영화의 감독도 어린 시절 내내 '루이자 메이 올콧'의 이야기에 나처럼 빠져 살았던 때문인지,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시간의 순서가 아닌 조가 떠올리는 장면들을 가져다 붙인 듯한 플롯은 잘 알고 있던 이야기를 낯설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큰 틀에서 액자 형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영화는 실제 작가로 성공한 '루이자 메이 올콧'의 이야기에 작품 속 조를 랑데부시켜서 몰입감을 한층 높여준다. 무엇보다도 부분 부분 새로운 스토리를 첨가하여 신선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기존의 <작은 아씨들> 영화는 작가로 성공한 조와 옆집 부자 오빨 로이와의 결혼에 골인하는 에이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원작 소설처럼 네 자매 삶에 똑같은 비중을 주려 했다는 점이 좋았다. 조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작가로서 대 성공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큰 틀은 같았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에선 네 자매의 삶, 어느 쪽에도 경중을 두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로 모든 남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메그가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힘들게 가정을 꾸려 나가는 건 결코 실패가 아니다. 그녀가 꿈꾸는 삶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한평생 서로를 아끼며 사는 거다. 그런 면에선 메그는 누구보다도 꿈을 이룬 사람이다. 결혼 전날 같이 도망가서 배우가 되라고 설득하는 조에게 한 메그의 말이 감독의 생각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매그는 십 대에 눈이 맞아 풋사랑을 앓는 소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사랑을 선택할 정도로 주체적인 여성임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이웃의 아기를 돌봐주다 성홍열에 걸려 그 후유증으로 죽은 셋째 베스 또한 가엾기만 한 소녀로 그리고 있지 않다. 죽어 가기 전 베스가 어린 시절 네 자매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바닷가를 찾아가 조에게 들려주는 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신의 뜻은 막을 수가 없어. 썰물처럼 사라지는 거야, 천천히. 그렇지만 멈출 수 없어."
베스 역시 자신의 신념과 꿈 대로 삶을 살았고 그 결과 죽음이란 불운이 닥쳤지만 그 죽음마저도 그녀를 후회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가치관을 가졌다. 죽어가면서까지 무명작가의 설음에 빠져 있는 조를 도와 그녀가 성장하게 만드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다.
막내 에이미는 어떨까? 기존의 작품들에서 에이미는 허영심과 질투심이 많은 꼬마가 이쁘게 자라서 조에게 실연당한 로리와 결혼하는 게 큰 틀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에이미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조 언니를 샘내고 부자와 결혼해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성향은 똑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에이미는 굉장히 독립적이면서도 로리를 휘어잡을 만큼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돈 많은 고모의 후원을 받아 유럽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있지만 똑똑한 에이미는 자신에게 예술적 재능이 없음을 금세 알아차린다. 에이미는 부족한 재능을 부여잡고 고뇌하는 대신 다음 단계의 삶을 설계하고자 한다.
다행히도 에이미에겐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했던 옆집 오빠인 부유한 로리가 있었다. 실연의 상처로 방황하던 로리는 강한 여성을 좋아하는 취향 덕분인지 조처럼 주관이 확고한 에이미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에이미는 사랑하는 남자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자신을 그토록 숭배하던 로리가 에이미와 결혼하는 걸 보고 내뱉는 조의 대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끌어 낼 수밖에 없다.
"여자들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재능도 가지고 있어요. 나는 여성에게 있어서 사랑만이 중요하다고 강요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파요."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던 시대에, 결혼을 못하면 실패한 여성으로 낙인 찍히는 현실을 조의 대사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결말 장면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해서 편집장과 설전을 벌이는 조의 모습이 그래서 더 인상 깊다. 여자 주인공이 결혼하지 않고 끝나는 책은 아무도 사서 읽지 않는다는 편집장의 고집에 조를 결혼시키는 대신 인세를 올리는 흥정 장면은 코믹하면서도 왠지 서글펐다.
영화는 우리 모두 다 각자의 소설(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인생도 덜 소중하다거나 더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이의 꿈이 더 위대하다거나 덜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도 없는 거다. 이게 그레타 거윅 감독 버전의 <작은 아씨들> 영화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진실이다. 모두가 다 똑같은 삶을 살 수 없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할 수다. 이런 자세야말로 진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닐까.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이 네 인생보다 웅장하지 않다고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