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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린 Jun 23. 2022

시간의 끊임없는 변주, 영화 M

이명세 감독의 영화 M 리뷰

가끔 너무 잘 만들어졌지만, 시대를 앞서 가거나, 시대 정신과 일치하지 않아서 묻혀 버린 영화들이 있다. 영화 M이 그런 영화다. 다양한 실험 정신이 구현되었고 잘 짜인 미장센으로 완성도가 높았지만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성적은 실로 처참했었다. 이명세 감독이 미국에서 인정받은 후에야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그나마 제대로 이루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관객이 찾지 않는 영화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기억을 해야 할 영화 같아서 조심스럽게 리뷰를 해 본다. 



거울 속의 내가 진짜 나일까?


M은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영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히 요약된다. 최연소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자, 전도유망한 베스트셀러 작가(강동원)가 부유하고 능력 있는 약혼녀(공효진)와의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떠오른 첫사랑(이연희)을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M 역시 내러티브 구조보다는 선명하고 대조적인 이미지에 치중한 영화다. 그래서 서사 구조는 최대한 제거되고 실험적인 영상의 변주들로 영화를 끌어간다. 그리고 그 영상의 변주들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꿈과 현실, 이미지와 실재를 도무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거울을 사용하여 피사체를 투영하고 왜곡시키는 기법은 몽환적인 M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주었다. 마치 거울 속의 내가 진짜 나인지, 거울 밖의 내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던 어느 시인의 독백처럼 말이다. 



첫사랑이 사무치는 건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다. 


영화 속 강동원이 잃어버린 기억은 첫사랑이었다. 무수한 영화에서 찬양하고 복제된 그 첫사랑 말이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첫사랑에 대해 새로운 해석으로 접근했을 뿐 아니라 불편하리만치 낯선 영상들로 표현해 놓았다. 첫사랑이 사무치는 건 왜 일까? 이루어지지 않은 아쉬움 때문에? 아니면 인생이란 게 늘 그렇듯 처음에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각인 때문에? M은 잃어버린 시간(시절) 때문이라 말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은 늘 아쉽기 마련이다. 그 시간 속엔 뭔가 미흡하고 서툴러서 되돌아보면 얼굴 붉힐 일들도 가득 담겨 있다. 그래서 종종 지나간 시절은 정말로 잊혀 버리기도 한다. 잊고 싶은 인간의 염원 때문이리라.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린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건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아쉬움 속에서 잊혀갈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들과 첫사랑을 나누는지 모른다. 


어쩌면 우린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매 순간들과 첫사랑을 나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말이다. 유년시절과의 첫 만남, 십 대와의 첫 만남, 이십 대와의 첫 만남.....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겪었던 무수한 첫사랑을 삶의 뒤안길에서 잃어버리고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급기야 그 시절에 느꼈던 감흥과 꾸었던 꿈들을 아주 잊어버린다. 그러다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을 넘기다, 혹은 여름날 비명처럼 들려오는 매미 소리를 듣다가 그렇게 우연히 잊혔던 기억의 한 조각을  다시 꺼내 들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그때의 그 아련함과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 그것이 영화 M에서 말하는 첫사랑이다.



현재의 삶은 과거의 변주이고 미래의 삶은 현재의 변주다. 


영화 M의 또 하나의 커다란 특징은 단순한 대사의 반복과 이미지의 변주에 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첫울음을 터트린 그 순간 이후 계속 반복, 변주되고 있음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매번 새로운 시간과 첫 대면을 하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온전하게 새롭지만은 않다. 십 대가 유년시절의 변주된 삶이고, 이십 대가 십 대의 변주된 삶이다. 결국 현재의 삶은 과거 시간의 변주이고 미래의 삶은 현재 시간의 변주된 삶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 첫사랑(이연희)이 하는 대화와 약혼녀(공효진)가 하는 대화가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과거도 중요하지만 머지않아 잃어버릴 현재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깨달음 주고 있으니까. 잃어버려서 소중했던 과거 때문에 좀 더 분발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라는,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 말이다. 영화 속 강동원이 온전히 이연희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막힘 없이 소설을 써나갈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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