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睡蓮)

by 규린

1


습한 타이베이, 그 열기 속의 고요한 섬,


낯선 연못에 불시착한 나의 억제된 시간.


첫눈의 파문으로 숨 쉬는 연못을 잠시 흔들던


당신은 물 위에 뜬 푸른 눈의 수련이었다.





2


당신의 뿌리는 지구 반대편의 차가운 흙,


나의 뿌리는 외로운 섬의 단단한 진흙.


우리는 같은 물속에 있어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별개의 생명이었다.





3


샹산의 밤, 도시의 불빛이 강물처럼 흐를 때,


당신이 건넨 돌고래 조개껍데기.


"모든 슬픔은 먼바다로, " 속삭였지만,


가장 큰 슬픔은 당신을 놓아야 할 숙명이었다.





4


꽃잎을 닫고 침잠하는 밤의 수련처럼,


나는 약속된 현실 속에 당신을 숨겼다.


경계와 연결, 당신의 도면 속 슬픈 정의처럼,


닿을 수 없기에 이토록 투명하게 빛났던 사랑.





5


지금, 나는 익숙한 연못으로 돌아왔지만,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남은 당신의 잔상


아침 해가 떠도 영원히 펼치지 못할 밤의 수련처럼,


아련하게 박제된 타이베이의 정지된 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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