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by 규린


아, 이 붉은 피의 결정(結晶)이여,


너의 잔혹한 영혼이 박제된 잔인한 유물.


가장 깊은 색으로 타오르며


날마다 나의 눈을 멀게 하는 맹목의 미(美).



처음 너를 마주했을 때, 세상의 모든 빛이


이 아찔한 향기 속에 갇힌 듯했지.


달콤하고 치명적인, 한 모금의 독처럼


영혼까지 취하게 만드는 중독의 늪.


나는 멸망을 아는 불나방처럼 네 궤적을 맴돌았네.


마치 설탕 묻은 독배를 탐하듯


네 비단결 같은 뺨에 생명을 걸고 입 맞추려 했지.


심장이 멈출 때까지 갈망한, 영원히 목마를 사랑처럼.


그러나 네 아름다움은 가면이었다.


찬란한 붉음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가시,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의 모든 진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매혹에 취해 손을 뻗을수록


피 흘리는 상처만이 선명해지는 관계.


네 무수한 분노는 뼈를 깎듯 파고들어


내 미련을 찢고, 아픔을 각인시키지.


언제나 너를 꺾어버릴 수 없는 나의 무력함.


가장 사랑했기에, 가장 증오해야만 하는


이 잔인한 딜레마 속에서.


나는 오늘도 네 주위를 맴도는 나비처럼


너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처 입을 것을 알면서도, 그 아찔한 향수에 취해


파멸을 향해 한 걸음 오늘도 내딛는다.


붉은 향기여, 너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나의 아픔이자, 나의 증오 그 자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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