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 돌봄 로봇 '봄'
만복은 팔십 평생 겪은 모든 일들을 오른쪽 귀로만 기억했다. 왼쪽 귀는 월남의 어느 포탄 소리와 함께 영원히 닫혀버렸다. 50평짜리 최첨단 아파트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졸고 있을 때 아내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의 귀에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반쪽으로 잘려 작게 들렸지만.
"밥 줘! 배고프다고! 아이고 날 또 굶기네."
소리에 놀라 퍼뜩 눈을 뜨니 돌봄 로봇이 '오늘의 복용약'을 들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아내가 약 먹을 시간이었다.
"봄아, 밥도 준비해 줘. 아내가 배고프다고 우네."
"네, 주인님. 하지만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은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도 저리 울고불고 난리 치니 어쩌겠어. 지금 줘야지. 저 성질 머리에 약은 밥을 먹은 후에 줘야 안 뱉고 잘 삼킬 거야."
만복의 한숨소리를 뒤로, 봄이는 점심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조실부모한 만복은 십 대 후반까지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갖은 구박과 농사일에 시달리다 못해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가출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서울이라고 딱히 그에게 친절하진 않았다. 중국집 서빙부터 시작해서, 재래시장의 새벽 배달까지 갖은 노력을 다해도 편히 누을 방 한 칸 마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 그때 마침 베트남 전 파병이 한창이었을 때였다. 그 시절 파병 병사들은 참전하면 한몫 벌 수 있다는 정부의 선전에 혹해 베트남전에 스스럼없이 자원했었다. 하지만 전쟁의 실상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폭격과 총탄 앞에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옆에서 죽어나가는 동지들을 보면서 매일밤 운 좋게 살아남았음을 기적으로 여겨야 했다.
만복은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 채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돌아온 그는 온갖 잡일부터 고물상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도 파병으로 받은 약간의 목돈이 도움이 되어 주었다. 고물상을 하려 해도 터를 마련해야 했으니 말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고물과 폐지를 수거해 와서 팔았다. 피땀 흘린 노력 덕분이었을까, 사업은 점점 성행했고 마침대 커다란 제지 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고아나 다름없던 만복은 그렇게 자수성가를 이룩했다.
젊은 시절 너무나 가난했기에 돈만 벌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올 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자수성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록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젊은 시절 여기저기서 부족한 사업비를 조달해 오느라, 갖은 고생을 했던 아내는 이제 살만하자 치매가 오고 말았다. 요양원에 보내라는 아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만복은 치매든 아내를 오 년 가까이 집에 두었다. 다행히 돌봄 로봇 '봄'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끔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만복을 볼 때면 돌봄 로봇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연주곡 '10월의 노래'를 틀어 줬다.
"주인님,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이 연주를 들으면 노년의 회환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혹시 주인님도 지금 그런 심정이신 건가요?"
만복은 그저 씁쓸한 웃음만 흘렸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음악을 찾아 준 로봇에게 만복은 클래식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 클래식은 만복에게 고상한 계층의 사치일 뿐이었다. 하지만 로봇은 만복의 심정이 만족스러운 건지, 아니면 불편한 건지 아직 표정만으로는 잘 읽어 내지 못했다. 오 년의 시간이 흘러도 사람의 얼굴에서 감정을 정확히 읽어내는 건 기계에겐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 돈이 아까워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안 보내시는 거예요? 요즘엔 요양 급여가 나와서 부담이 많이 줄었다던데요. 나도 보태드리고 싶지만 요즘 애들 학원비니 뭐니 월급 받아 남는 게 없어요."
"됐다. 언제 내가 너한테 손 벌린 적 있었냐? 난 그냥 네 엄마가 요양원에서 쓸쓸히 혼자 있을 게 딱해서 그러는 거다. 요즘 돌봄 로봇이 잘 나와서, 간병인도 따로 필요 없고. 넌 신경 꺼도 돼. 언제 시간 되면 와서 작동법이나 가르쳐주던가."
그렇게 만복은 아내도 돌보고 외로움도 달랠 겸 최신형 돌봄 로봇을 구매했다. 작동법이 복잡해서 혼자는 로봇을 세팅할 수 없어서 아들에게 집에 들러 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었다. 하지만 아들은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얼굴 한 번 비추릴 않았다. 결국 손주 녀석들 학원비를 빌미로 부르니 그제야, 겨우 시간을 내주었다. 어떻게든 돈만 뜯어낼 생각을 하는 아들을 떠올리면 늘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툴툴거리면서 이리저리 로봇을 세팅하던 아들은 잘 돌보라는 의미라며 로봇에게 '봄'이란 이름을 명명해 주었다.
'봄'은 이삼십 대 정도의 인간 수준을 본떠 설계된 로봇이다. 매끈하게 번쩍이는 고강도 합금으로 이루어진 팔다리를 움직여 바쁘게 일을 하는 모습은 꽤나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주인님, 심박수가 평소 보다 3% 높으십니다. 낮은 강도의 가벼운 산책이나 음악 감상을 권해드립니다."
'봄'이는 언제나 완벽했다. 만복의 모든 의료 기록, 선호도, 심지어 과거 참전 기록까지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었다. 아내의 치매 증상가 대응 방법까지 완벽하게 숙지하곤 간병인 못지않게 아내를 잘 돌봐주고 있었다. 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마트에 들를 때면 쏟아지는 사람들 시선에 뿌듯했다. 삼천만 원이나 하는 로봇을 거느리고 나타난 나를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때면 우쭐해지기까지 했다. 예전엔 강아지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만복은 많이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아내 돌보는 것도 힘든 상황에 반려견은 무리였다. 로봇을 구매한 이후엔 반려견과 함께 걷는 사람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돌보고 씻겨야 하는 반려견과 달리 로봇은 나를 돌보아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복은 그 완벽함이 가끔은 불편했다. 냉철한 완벽함이 가끔은 엉성하지만 온기를 담은 인간의 위로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봄이랑 있으면서도 혼자 있을 때만큼이나 외로워지곤 했다. 만복은 이럴 때 딸아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런 걸 바랄 주제도 안되지만 말이다. 이젠 딸아이 얼굴도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착하고 똑똑한 딸이었건만 아내는 한순간도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딸은 살림 미천이라면서 늘 부려 먹기만 했었다. 부모 없이 나이 차이 많은 언니 오빠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탓이리라. 그래서 자식을 아끼는 법을 전혀 몰랐다. 사업 자금을 여기저기서 끌어오느라 늘 돈이 궁했던 아내는 대학에 합격한 딸에게 입학 포기를 종용했었다.
"네 오빠 등록금 대기도 빠듯하다. 이제 그만큼 키워줬으면 너도 돈이나 벌어서 생활비에 보태."
딸 지숙은 눈물을 잔뜩 머금은 채 안타깝게 만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기대했던 딸은 아버지의 눈에서 어머지랑 뜻이 같다는 걸 읽어내곤 조용히 물러났다. 그리고 그 길로 집을 나가 소식을 끊었다.
"지 밖에 모르는 그런 딸 없는 셈 치면 그만이에요. 세상 사는 게 힘든 거 알면 곧 돌아오겠죠."
아내의 지독한 말이었지만, 새벽부터 일하느라 바쁜 나는 언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지나서, 어느덧 삼십오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딸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어디에 살아는 있는 건지, 결혼해서 가정은 꾸렸는지, 늘 가슴 한편에 끈덕지게 눌어붙은 회한은 만복의 심장을 병들게 했다. 그래서 조금만 흥분해도 심장에 무리가 왔다. 격한 운동도 자극적인 일도 이젠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 칩거하는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나마 돌봄 로봇이 말벗이 돼줘서 덜 외로웠다.
우습게도 그렇게나 자식에게 위악을 떨어대던 아내는 치매가 온 뒤로는 딸만 찾았다. 남편도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정신이 조금이라도 온전해지면 스무 살의 딸을 찾으며 펑펑 울었다.
"지숙아, 어디 니? 엄마한테 언제 올 거니? 잘못했다. 엄마가 잘못했어. 엉, 엇어."
어쩌면 내가 없는 방에서 그 시절의 아내도 이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자기 대신 딸을 찾아보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