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 왜 모든 불행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걸까?
은수는 일 년 전 유방암 조기 진단을 받았었다. 다행히 건강검진에서 빨리 발견해서 1기였다. 방사선 치료만으로도 완치되었다. 은수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왜 암에 걸려야 했나, 너무 억울했다. 방사선 치료를 힘겹게 받으면서도 이런 일 업이 멀쩡히 잘만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다 보면, 불운을 맞이한 자신의 삶이 너무 억울했다. 누구는 아이들 가르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병이 걸린 거라고 했고, 혹자는 코로나 백신을 너무 많이 맞아서 걸린 거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무튼 은수는 느닷없이 암 진단을 받았었고, 일 년 간의 힘겨운 치료를 마친 후 이제야 학교로 복직했다.
요즘 신종 3D 직업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초등학교 교사가 그녀의 직업이다. 다시 돌아온 교실 풍경은 일 년 전이랑 비교해서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통제 불능의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었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훈계라도 세게 하다 잘못해서 밖으로 새나가면 예의라곤 밥 말아먹은 학부형들이 득달같이 쳐들어와 질타를 쏟아냈다. 그래서 요즘엔 학생들이 아무리 교실에서 나대고 다녀도 쓴소리 한 번 할 수 없다. 은수는 이런 교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항암 치료로 살이 빠져 원래 긴 은수의 얼굴은 더 길쭉해졌다. 그래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요즘 트렌드인 짧고 작은 얼굴을 가진 옆 반의 강 선생과 비교되는 것 같아 더 일할 맛이 안 났다. 은수는 몸속 암이 치유된 대신 마음속에 암덩어리가 퍼진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생긴 끝없는 ‘질투와 피해의식’이란 암덩어리가 더욱 깊게 뿌리내렸다.
"오빠가 먹을 반찬을 네가 다 먹으면 어떡하니?"
"계집애가 어디서 오빠를 이겨 먹으려고 해."
어린 시절 밥 먹듯이 듣던 힐난이 아직도 귀에 박혀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은수는 가끔 마음속으로 부모님을 원망했다. 여전히 장남이라고 오빠만 챙기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지만 은수는 한 번도 부모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오빠 대신 거의 주말마다 친정에 들러선 이것저것 불편한 데는 없는지 살펴드렸다.
“에휴, 네 오빠가 반만이라도 널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은수는 어린 시절 못 받은 사랑을 이제라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1순위가 오빠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래서 은수의 가슴엔 차가운 그늘이 늘 드리워져 있었다.
아직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탓인지 교무실에서 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은수는 늘 괴로웠다. 반복되는 교장, 교감의 발언들도 싫었지만, 회의가 끝나고 쏟아내는 동료 교사들의 자랑질은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직장인의 접대용 미소를 장착한 은수가 조용히 듣고 있자면 암이 재발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아니나 다를까 학년 주임인 1반 박 교사가 오늘도 또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우리 딸이 이번에 영재고에 입학했잖아. 공부도 별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네~네~ 천재 나셨네요.'
속으로 비꼬던 은수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를 떠올렸다. 그렇게 엄마를 찾으면서 직장에 가지 말라고 졸라 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엔 안으려 하면 얼른 방으로 도망가 버린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섭섭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은수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얼른 표정을 갈무리하면서 살짝 한숨을 내쉬자, 안 그래도 긴 턱이 더 내려앉았다. 이번엔 학교에서 제일 친한 최 교사마저 자랑 삼매경을 시전 했다.
"우리 남편이 주식으로 네 배를 벌었다네. 그러게 진작에 미국 주식을 했어야 하는데. 뭐 이제라도 늦진 않아서 다행이지 뭐야. 호호”
최교사의 자랑질을 듣고 있자니 은수는 심장이 뒤틀렸다. 매일 아침 회사에 가기 싫어서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자신의 남편과 너무 비교되었다. 왜 모든 행복은 자신을 비켜가는지, 억울했다. 왜 최교사도 박 교사도 아닌 자신만 암에 걸려 고통받았냐 말이다.
은수의 옆반은 20대 후반의 초보 교사 강민지 선생의 반이었다. 동글동글한 눈에 보조개가 예쁜 강 선생은 경험이 부족하다며 은수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다. 은수는 늘 선한 웃음을 장착하곤 그녀의 고민을 성실하게 들어주었다. 하지만 속으로 강 선생의 작은 얼굴과 야리야리한 몸매가 거슬렸다. 해맑게 웃으면서 수업하는 강 선생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은수는 더 그녀의 존재가 불편했다. 하지만 완벽한 가면을 장착한 그녀는 후배 교사의 고민 상담을 성심껏 해주는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 새 학기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5월도 다 지나갈 무렵, 4학년 전체가 단체로 체험학습을 갔다. 그리고 체험활동을 다녀온 바로 직후 사건 하나가 터졌다. 강 교사가 담임을 맡은 4반 아이가 학폭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준영이란 아이로 또래 남자치고 많이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학급에서도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랑 더 자주 어울렸다. 그런 준영을 일부 우악스러운 남학생들은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종종 놀리는 일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워낙 유순한 성격의 준영은 큰 트러블 없이 학교 생활을 잘해 나갔다. 민호라는 아이와 폭력 시비가 붙기 전까지.
문제는 가해자가 은수가 맡은 3반 아이라는 거다. 민호는 엄청 외향적이고 평상시 운동을 잘해서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민호의 주위엔 늘 친구가 많았다. 민호는 체험학습이 끝나고 하굣길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과 같이 가는 준영을 마주했다. 괜히 심술이 난 민호는 준영을 계집애 같다며 놀렸다. 한 무리의 민호 패거리들도 같이 놀렸다. 처음엔 조용히 피해 가려던 준영은 점점 선을 넘는 민호 무리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얘들아, 쟤 혹시 사실은 여자가 아닐까? 우리 한번 확인해 보자.”
아이들은 마치 민호에게 명령이라도 받은 듯 준영이를 양쪽에서 잡았다. 그리고 민호는 꼼짝 못 하는 준영에게 다가가 바지를 벗기려고 했다. 발버둥 치던 준영이 실수로 민호의 얼굴을 찼다. 그러자 화가 폭발한 민호가 준영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민호 무리들은 무슨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듯 민호의 모습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날 준영 어머니는 당연히 학교로 찾아왔다. 준영 어머니와 상담을 마친 강 선생은 놀란 마음에 은수에게 뛰어와 도움을 요청했다. 흥분한 학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깜깜해하는 강 선생을 보며 은수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속에 딴마음을 품은 걸 숨기면서.
“이 선생님, 아무래도 학폭위를 열어야겠죠? 저희 반 아이라 편드는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이번엔 민호가 잘못한 게 맞는 거 같아요.”
강 선생의 말을 듣던 은수는 짧은 순간 입가에 짜증스러운 비틀림이 생겼다 사라졌다.
"강 선생님, 많이 힘드시죠? 그런데 제가 작년에 준영이 담임이었어요. 아파서 잠깐 밖에 못 봤지만, 딱 봐도 좀 예민하더라고요. 그리고 휴직하고 저 대신 맡았던 선생님한테 여쭤 보니 준영이가 평소엔 아주 얌전한데 수틀리면 욱하는 성향이 있다더라고요. 작년에 그 선생님이 숙제를 안 해 와서 좀 훈계를 했더니, 준영이가 갑자기 책상을 쾅하고 내려치더라는 거예요. 그리곤 집에 가서 선생님이 자신을 때렸다고 거짓말까지 했대요.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이 다 목격한 사건이라 엄마가 꼬리를 내리고 조용하게 물러갔다네요.”
“정말이에요? 준영이는 지금껏 얌전하게 학교생활 잘하고 있었어서 전 전혀 몰랐어요. 지금껏 아무 문제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처음이라 잘 모르시는데 요즘엔 그렇게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들이 한번 사고 치면 크게 친다니까요. 민호한테도 물어봤는데 먼저 얼굴을 발로 찼다네요. 그래서 화가 나서 같이 때린 거라네요. 함께 있던 아이들도 확인해 줬고요. 그러니 이번 일은 조용히 쌍방 합의하는 선에서 넘어가는 게 제일 좋아요.”
사람 좋게 상냥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은수 앞에서 강 선생은 더 이상 뭐라고 반박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초보라 아이들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강 선생은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은수의 조언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강 선생이 돌아가자 은수는 민호 어머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민호 어머니, 민호가 장난이 심해도 착한 아이예요. 반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아주 많고요. 문제는 오히려 준영이 쪽에 더 많아요. 예민해서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욱 한다네요. 게다가 그 반 강 선생님이 초짜라 통솔력이 좀 없어요. 아이들 성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요. 학교에는 준영이가 민호를 먼저 때렸고, 젊은 선생이 미숙해서 일이 커졌다고 주장하세요. 저는 민호 편이에요. 아픈 몸으로 복직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이 일은 제가 잘 마무리할게요."
은수는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골칫거리로 암 투병이 마지막이길 바랐다. 안 그래도 힘들게 복직해서 학교로 돌아왔는데 자신에게 한 점의 피해도 돌아와선 안 됐다. 그러려면 철저히 강 선생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야 했다. 혹여라도 학교 폭력 징계 위원회가 열리더라도 모든 징계는 반드시 강 교사가 받도록 만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