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 박제된 아름다움을 위하여
오늘 연주회 프로그램은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였다. 윤아는 맨 앞줄 의자에 앉아 유리 송곳의 날카로움을 손끝으로 느끼고 있다. 멋들어진 연미복을 입고 리드미컬하게 걸어 나온 이선우가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관객 모두가 숨이 멎은 듯한 고요 속에 첫 음이 연주되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 세상 모든 더러운 것들을 정화할 거 같은 이 완벽한 선율, 이런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윤아는 매번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티켓을 획득했던 거였다.
'이 문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가 지옥문 앞에 쓴 문구를 연상시키 듯, 처절하고 암울한 분위기의 멜로디로 '지옥'의 악장이 시작되었다. 격렬한 불협화음이 불러온 혼돈이 연주홀을 가득 매웠다. 윤아는 갑자기 밀려온 한기에 몸서리쳤다. 결혼생활의 결실을 맺기 위해 무수히 행했던 갖은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 반복적으로 맞던 배란 주사, 시험관을 하기 위해 실시한 불편한 시술들이.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번 느껴야 했던 허탈감이 마치 지옥불을 뚫고 올라오듯 강렬하게 윤아를 파고들었다.
의도된 불협화음들이 클라이맥스에서 크레셴도로 흘러나오자 윤아는 급기야 구토까지 느꼈다. 마치 멜로디 속에 악취가 배어 있기라도 하듯이. 오염된 천에서 흐르는 기름띠, 전쟁의 아수라장, 부패한 음식에서 우글대는 구더기, 탐욕으로 얼룩진 자들의 싸움판 등 온갖 추악한 사람들이 연주와 함께 소환되었다. 숨 막히는 경멸감에 윤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 '연옥(Purgatorio)' 악장이 시작되었다. 지옥보다 덜 고통스럽지만 고뇌가 깊이 담긴 이 선율 속에서, 윤아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아름다움과 선함은 반드시 같은 것일까?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악을 자행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윤아는 베아트리체를 찾아 헤매는 단테처럼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 아니 선악에 대해 별다른 자각이 없다 지옥 통과하며 새삼 깨달은 단테처럼, 윤아 역시 선악의 구분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렇게 그녀는 내면 깊은 곳에서 선악의 갈등을 치열하게 느꼈다. 연옥의 악장이 처연하게 연주되는 내내, 자신이 파괴해서라도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과 그런 행위는 죄악이라는 인식 사이에서 윤아는 격렬히 투쟁했다.
'나는 죄인인가, 아니면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수호자인가?'
인생의 목표를 잃고 헤매던 과거, 이혼 후 텅 빈 집에서 보석 세공 도구만 만지던 시간들이 연옥의 불길처럼 그녀를 감싸 안았다.
이윽고 '천국(Paradiso)'의 악장으로 전환되면서 순도 높은 완벽한 화음이 울려 퍼졌다. 혼란스럽던 윤아의 눈빛은 다시 결의에 찬 빛으로 돌아왔다. 온갖 아름답고 순수한 것들로만 가득 찬 세상에서 유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꽃이 만발한 정원에 앉아 달콤한 향기에 취하기라도 한 듯 잠시 현실을 잊고 있을 때, 어느덧 앙코르 연주가 시작되었다. 쇼팽의 에뛰드 '이별의 노래'가 애잔하게 흘렀다. 그 순간, 윤아는 클러치백에서 영롱한 빛은 반사시키는 유리송곳을 꺼내 들었다. 정말 완벽한 선곡이었다.
갑자기 윤아의 가슴이 날카로운 칼에 찔린 듯 아파왔다.
'그를 제거하는 것이 이 아름다움을 지키는 방법이 맞나? 어차피 이 세상은 여전히 혐오스러운 것들로 가득할 텐데. 어쩌면 그런 오만한 파괴야말로 순수한 예술을 더럽히는 가장 추악한 죄는 아닐까. 오히려 그가 아닌 내가 소멸하는 것이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는 탐미적 순간이 아닐까.'
앙코르 연주였던 '이별의 노래'가 연주홀에 스산하게 잠식되고, 감동에 잠식당한 정적이 한동안 감돌았다. 잠시 후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면서 무대 조명이 서서히 꺼졌다. 그렇게 무대와 객석 모두 완전히 암흑 속에 갇혀버렸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발소리가 홀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어둠 속, 윤아는 맨 앞줄 의자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홀로 남은 암흑 속에서 그녀의 손은 유리 송곳을 쥔 채, 그의 가슴이 아닌, 자신의 목으로 향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희미한 비상등이 켜졌다. 그 불빛 아래,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윤아의 흰 목선 위로, 선홍빛 피가 덧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대 위, 덩그러니 홀로 놓여 있는 피아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윤아의 마지막 염원처럼, 이선우의 마지막 연주는 영원히 순수한 상태로 그 자리에 정지되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고요한 연주홀에 오직 비극적인 아름다움만이 박제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