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 생산성 없는 삶
어둠 속, 객석의 웅성거림이 가라앉고 무대 위로 한 줄기 조명이 떨어졌다. 윤아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숨을 죽였다. 그녀의 손가락은 클러치백 속 날카로운 유리 송곳을 더듬었다. 그것은 평범한 송곳이 아니었다. 며칠 밤을 공들여 빚어낸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깨지지 않는 특수 유리를 보석 세공 기법으로 깎아 만든 거다. 불빛에 비춰보면 빛을 머금은 듯 영롱한 크리스털 조각품이었다. 송곳의 뾰족한 끝자락부터 차가운 냉기가 윤아의 손으로 전해졌다. 송곳의 감촉을 느끼면서 윤아의 눈빛은 광기 어린 결의로 서늘하게 빛났다. 오늘,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이 완벽한 송곳으로 박제될 것이다.
윤아는 올해 마흔다섯, 이혼 5년 차의 특별할 것 없는 여자다. 다람쥐 챗바퀴처럼 반복되는 생활에서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연주회를 찾아다니는 거였다. 그것만이 삶의 유일한 위안이라는 듯. 최근 몇 년 윤아가 특히나 열을 올리는 공연은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우의 연주회다. 피켓팅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연주회 예매는 진짜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귀였다. 때로는 알음알음 인맥을 통해 초대권을 얻어냈고, 때로는 pc방까지 가서 1분 컷의 빠른 손놀림으로 티켓을 따냈다. 가끔은 웃돈을 엄청 올려줘서 누군가가 취소한 표를 획득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선우의 연주 스케줄에 따라 윤아의 한 해가 시작되고 또, 그렇게 저물어 갔다.
윤아는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것들에 굉장히 집착하는 성향을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고무줄이나 술래잡기를 하면서 뛰어놀 때, 그녀는 집에서 부모님이 사다 주신 색연필로 예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다채로운 색으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형태들을 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래서일까? 윤아가 보석 세공사가 된 이유가......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보석을 세공하는 일은 그녀에게 꽤나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회사원처럼 시간에 꽉 매인 스케줄도 아니어서 더욱 맘에 들었다. 이선우의 해외 연주회도 맘만 먹으면 바로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미 말했듯 윤아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려낸 자연광에 가까운 색채를 뿜어내는 그림들, 완벽한 형식미를 자랑하는 바흐의 음악들, 조선 백자의 절제된 흰색과 무결점의 곡선 등등을 사랑했다. 이런 것들은 늘 그녀의 영혼에 충만한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런 만족감이야 말로 윤아의 삶을 평온하게 유지해 주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그녀가 그토록 소중히 여겨왔던, 그 불멸의 아름다운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낭만적인 사랑을 기대했던 결혼 생활은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산성 부재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가져왔다. 배란 날짜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동침하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남편은 점점 환멸을 느끼는 듯했다. 결국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사랑은 무가치하다는 뼈아픈 깨달음만 남긴 채 파경을 맞았다.
그녀의 시선은 무대 중앙, 이십 대 아름다운 청년 피아니스트, 이선우에게 고정되었다. 그의 연주는 음악의 본질을 꿰뚫는 해석을 너머, 클래식을 사랑하는 연주자의 영적인 순수함 그 자체였다. 그의 손끝에서 흐르는 소리는 마치 바흐의 푸가처럼 완벽하게 직조된 논리와 구조를 가졌고, 쇼팽의 녹턴처럼 지상의 모든 속세와 때를 씻어내는 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녀는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뉴욕, 런던, 파리 등등 세계를 떠돌았다. 특히 수십 대 일의 티켓팅 전쟁은 그녀의 덧없는 인생에서 유일한 의미였다. 아니 불친절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문득 윤아의 과거가 차가운 회상으로 다시 떠올랐다. 그녀의 결혼 생활이 무너진 것은 아이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외도를 했고, 그 여자는 생산성의 징표인 생명을 품게 되었다. 같은 회사 직원이었던 여자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는 없지만 영원히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자던 남편이 변한 이유는 알고 싶었다.
“네 결혼은 빈 껍데기야. 애도 못 갖는 여자는 우리 집에 필요 없다.”
이혼을 종용하며 내뱉은 시어머니의 냉소가 윤아의 영혼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그녀가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사랑을 퇴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색을 잃어가던 결혼생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결국 생산성 부재가 낳은 허망한 고독만이 그녀를 휘감고 돌았다. 이선우의 음악은 그 폐허 위에서 피어난 유일한 생명력이었다.
그녀의 삶 속 나침반이 오직 이선우의 음악만을 가리키게 된 지 3년이 지날 무렵,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매니지먼트사가 이선우의 결혼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상대는 거대 재벌가의 딸이자, 팬덤 사이에서 이미 악명 높은 극성팬이었다. 그 재벌딸은 연주가 끝나면 매번 특권을 이용해 대기실에 찾아가곤 했다. 그래서 이선우를 피곤하게 만드는 '진상'이란 소문이 공공하게 퍼진 여자였다.
"저는 평생 음악을 위해 제 모든 삶을 바칠 겁니다."
라고 이선우는 인터뷰 때마다 종종 말했지만, 그녀의 만행을 들을 때마다 팬들은 불안했다. 윤아도 종종 이선우를 그 재벌가 여우에게 빼앗길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만인의 천재 피아니스트를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말이다.
'뻔뻔하고 더러워!'
윤아가 보기에 이선우를 향한 그 극성팬의 집착은 세속적인 욕망 그 자체였다. 사랑도 덧없는 세상에서 그런 욕망은 불온한 형태의 소유욕에 불과하다. 그녀가 그토록 숭배했던 완벽한 예술이 불순한 애정과 자본의 힘으로 더럽혀질 위기에 처한 게 분명했다. 이건 윤아에게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연기처럼 소멸될 위기에 놓인 것을 의미했다.
반평생 가까이 살아오면서, 윤아를 배신하지 않은 것은 보석 세공업자란 그녀의 직업이 유일했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0.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다듬고 조각하는 일은 꽤 괜찮은 작업이었다. 윤아는 자신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영롱한 완벽함을 바라볼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었다. 불임이란 진단을 받기 전까지.
그때부터였다. 가끔씩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던 게.
'혹시 너무 오랫동안 차가운 무생물만을 만져와서 내 몸에 따듯한 생명을 품을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불임의 원인을 찾지 못했던 과거의 진단은, 결국 자신을 옭아맨 탐미적 집착 때문이었다는 죄책감으로 둔갑해 버렸다. 그런 생각을 품고 매일 밤을 설치던 윤아는 점점 더 다른 아름다운 것들에 집착했다. 가령 이선우의 연주 같은. 그의 음악만은 절대로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러던 차에 그의 결혼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그를, 그의 음악을 오염시킬 수는 없어.'
점점 더 탐미적 집착에 매몰되어 가던 윤아는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떠올렸다. 책 속의 주인공은 완벽한 미를 영원히 남기기 위해 결국 파괴를 선택했다. 과거에 책을 읽으면서 너무 비약된 행위가 아니냐며 비난했던 윤아는 이젠 그 인물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 의해 점점 파괴되어 가는 금각사를 가장 아름 다운 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행위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활활 불타오르는 금각사를 바라보며 광기에 휩싸였던 소설 속 주인공을 떠올리며 윤아는 마음속에 서늘한 결심 하나를 새겼다.
'그래, 더 추해지기 전에 막아야 해. 박제(剝製)만이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는 거야!'
이선우의 순수한 영혼이 세속의 타락을 맞이하기 전에, 가장 완벽한 순간에, 그를 시간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했다. 그녀는 마지막 연주회 티켓을 예매했고, 자신의 모든 기술을 집약한 유리 송곳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