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긴 뭘 빼!
그랜드 캐니언을 보겠다고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주로 넘어가던 길이었다.
오고 가는 도로 두줄을 빼면 어딜 둘러봐도 허허벌판이던 곳에 은색 할리데이비슨 같은 오토바이가 가득 세워진 주유소가 나타나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한 거대한 놀이방이 있는 2층짜리 햄버거 가게가 덩그러니 나타나기도 했다.
운전하는 동안 도로에 지나가는 차는 한두 대가 전부였는데 햄버거 가게의 주차장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가게 안도 마찬가지였다.
가게 밖의 외부 테이블을 어렵사리 선점한 우리 가족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지친 그들을 대신해 내가 나서서 주문하기로 했다.
위쪽에 걸린 메뉴판에 햄버거 그림과 그 번호가 큼지막하게 써져 있어서
“Number one, two. Number two, two!”
정도의 영어로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걸 주문할 수 있는 햄버거 가게였으므로.
햄버거를 사려고 늘어선 사람들의 줄처럼, 주방에서도 일렬로 늘어선 직원들이 같은 동작을 반복해 줄 끝에서 햄버거가 완성되었다.
햄버거 만드는 모든 과정이 훤히 보이는 지라 이 줄이 주문 줄이 아닌 견학 온 사람들의 줄처럼 느껴졌다.
(자자, 보이시죠? 햄버거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은색의 조리테이블 위에서 재료가 하나씩 쌓입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나는 주문을 했다. 당당하고 멋지게.
“Number one, two. Number two, two, please!”
“OKAY”
직원이 나의 주문을 한번 반복하고, 예스라는 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오케이라고 답해줬다.
나는 얼른 카드를 들어 올려 내밀었다.
주문이 성공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그때 직원이 내게 어니언? 하고 물었다.
어니언? 그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어니언? 두유 니드 애니띵 엘스 가 아닌 어니언?
오케이 했는데 왜 어니언? 사이드를 묻는 건가?
튀긴 양파? 양파링? 양파칩?)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왓 두유 민 어니언? 이 아닌
그와 똑같이 어니언? 하고.
그러자 직원이 코팅하여 묶은 종이 묶음을 들어 올리더니 한 장씩 넘기다 내게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큼지막한 양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알아!!! 나도 어니언이 양파인건 안다고 근데 왜????
나는 YES, WHY? 했고
직원은 다시 어니언을 빼줄까? 라고 온전히 문장으로 물어왔다.
나는 그제야 노, 잇츠 오케이 라고 답하고 카드를 내밀었으나 그는 앞쪽의 카드 단말기를 가리켰다.
번호가 적힌 영수증을 들고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있으니 힘이 쭉 빠졌다.
옆에 앉아 있던 백인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서는
크래이지 히어, 허? 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예스.라고 답했다.
(달리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냐며..)
햄버거에 양파를 빼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영화 같은 곳에서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일일이 물어볼 만큼 중요한 것이었나? 햄버거에 든 양파나 양상추가 한 번도 햄버거와 별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따로는 먹지 않는 토마토도 햄버거 안에 들어있으면 토마토가 아닌 그저 햄버거 자체로 생각된다. 햄버거는 햄버거 안에 든 재료가 어우러져 그런 맛있는 맛을 낸다고 생각했다.
뭘 빼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 나는 갑자기 나온 어니언에 영혼이 탈탈 털려버렸다.
번호가 한참 뒤라는 걸 확인하고선 일행이 있는 외부 테이블로 걸어갔다. 무사히 주문은 했으나 햄버거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출입문에서 키가 180은 넘어 보이는 백인 남자가 익스큐즈미 하며 날 불러 세웠다.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그는 거대한 여행가방을 햄버거 가게 출입문 앞에 세워놓고 서 있었다. 훈남 이미지가 철철 흘러넘치는 백인 남자가 내게 물었다.
두유 해브 애니 코인스?
그 순간에 나는 가장 필요한 완벽한 영어로 말했다.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시!
오케이.
그가 웃으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