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그 첫날부터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제외 된 것은 제외 된대로.

by 윤진진




정말 대단하세요.

전 정말 못 할 것 같아요.


약간의 상기된 목소리로 어여쁜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느끼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비행기를 나섰다.

그녀가 하는 말에 동정이나 거짓은 한올도 걸려있지 않았다.

수천 킬로를 몇 번이고 왕복하는 그녀에게 나는 그리도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

당시에 친오빠가 미국에 박사학위를 따러 가 있었기에 계획한 여행이었다.

이 여행 계획에서 남들은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당연스레 없었다.

그건. 남편.이었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우리의 여행 계획에서 남편은 항상 제외였다.

쉬는 날이 없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찌어찌하면 하루쯤은 쉴 수 있을 듯도 한데

시부모님이신 사장님 내외분에게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하고,

일은 젊어서 놀 생각 말고 부지런히 해야 한다. 며

공장 현판이라도 걸 기세셨다.

어쩌다 같은 일을 하는 회장님의 조카는

여행 한번 다녀왔다가 두고두고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는 그저 타 업체의 사장일 뿐인데도.



어쨌든 나는 남편 없이 미국 여행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애 둘과 캐리어 두 개를 들고.

하나의 캐리어에는 새언니가 부탁한 한약이 가득 들어있어 꽤 무거웠고 다른 하나에는 우리 셋의 열흘 치 옷과 장난감, 비상식량 등이 들어있어 또한 무거웠다.

나중에 이 짐은 공항 면세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간편식을 사느라 봉지에 봉지가 더해져 더 불어났다.


광명역의 도심 공항 터미널에서 캐리어를 부치고 아이 둘만 챙겨서 공항버스를 타고 룰루랄라 갈 생각이었다.

영화 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지금 한국에 있지만 몇 시간 후면 공항에, 몇 시간 후면 비행기 안에 있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미국 땅을 밟을 테지.

마음이 들떴다. 두렵기도 했지만 신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에 딸의 이마가 뜨거운 걸 안 순간부터 머릿속 연필이 동그라미를 마구 그려대기 시작했다.

뻗어나가지 못하는 생각의 제자리걸음.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아이의 상태를 듣고 도움을 줄 수 없는 모든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친오빠는 웨스트 캐롤라이나 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리와 미국 서부 여행을 하러 비행기를 타기 직전이었고

이미 출근해서 일을 하던 남편은 혼자 괜찮겠냐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해결해야 했다.

국내 여행도 막판 뒤집기는 힘든 법인데 이건 몇 달을 계획한 열흘짜리 미국 여행이었다.

머릿속 연필을 흔들어서라도 지그재그든 뭐든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했다.


일단 집에서 조금 더 서둘러 나가서 광명역의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수속을 하고 캐리어를 부친 후, 택시로 소아과를 다녀오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자차로 이동하기에는 주차하는 시간을 너무 뺏길 것 같아 택시를 선택했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광명역이 공항 로비인 것처럼 가로질러 내려갔다. 공항 카운터와 비슷하게 꾸며 놓은 듯한 곳에 익숙한 스카프를 두른 공항직원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직 이용하는 사람이 그리 많치는 않은 건지 손님이 없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여권 3개부터 내밀었다. 뒤에 서있는 따끈한 내 아이를 한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빨리 캐리어를 부치고 병원으로 달려갈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 예쁜 미소의 직원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미주 노선은 6월 1일부터 수속이 가능합니다.

2018년 5월 11일이 그때 날짜였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광명역의 공항 서비스가 너무 좋다며 그리 칭찬을 했는데 그중 정작 미국을 다녀온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본 적도 있었는데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주노선 제외.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지만 아이 둘 앞에서 다리가 풀린 채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캐리어를 끌고 광명역 앞으로 나왔다.

괜스레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났지만 쓱 닦고 걸어갔다.

내 아이들 디즈니랜드에 데리고 가고 만다 내가!


광명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서 캐리어 하나는 트렁크에 하나는 뒷좌석 아래 넣고 나는 앞자리에 앉아 소아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목이 부어서 열이 난다고 하셨다. 단순 목감기이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폐렴에 걸려서 지방에서 입원한 전적도 있는 아이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열흘 치 약과 해열제도 따로 챙겼다.

선생님은 영문으로 약이 아이의 목감기 약이라는 증명서도 한 장 써주셨다.


다시 광명역으로 가야 했다.

원래 계획에서 살짝 이탈했으니 다시 제경로로 돌아가야 했다.

룰루랄라는 아니더라도 광명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캐리어를 실은 뒤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래도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



지금 같았으면 발열상태의 아이는 비행기 탑승 자체가 거부되었을 텐데 그때는 코로나라는 밤송이 같은 바이러스가 없었을 때였기에 1회분의 약만 챙겨서 탑승했다. 아이는 정확히 6시간이 되어가자 다시 따끈해졌고 챙겨 온 약을 먹였다.

아이의 약을 먹이면서 나는 또 내 실수를 깨달았다. 도착까지 6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아침에 약을 먹이고 오후 2시 40분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두 번째 약을 먹였다. 비행기를 타고 6시간쯤 후에 기내에 챙겨 온 1회분의 약을 먹였으나 총 비행시간 11시간 10분이니 비행기 착륙할 시간쯤에 약을 먹여야 했다. 비행기 착륙시간이 다가 올 수록 아이의 열은 더 올랐고 지켜보던 나는 기내의 승무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혹시 타이레놀 같은 해열제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아이가 열이 난다는 것을 안 승무원은 놀라며 황급히 약을 가지러 가는 듯했지만

다른 승무원이 와서는 내게 양해를 구했다.


“기내에는 어른용 타이레놀뿐이라 아이용 해열제는 없습니다. “

“그럼 그 어른용 타이레놀 하나를 주시면 제가 잘라 먹일 수 있을 것 같아요. “

“규정상 어른용의 약을 아이에게 주는 것이 기내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금지되어 있습니다. “


나는 가지고 온 물티슈를 아이의 이마에 붙여가며 얼른 착륙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미국에 도착하여 하루 만에 약을 먹지 않아도 열이 나지 않을 만큼 회복되었다.




이건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게 대단하다는 말을 한 승무원은 이 비행기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탑승한 승무원이었다.

그 비행기는 갈 때와는 달리 미국으로 가는 단체관광객도 없었고 자리가 꽉 차 있지도 않은 조용하고 여유로운 비행기였다.

비행기 안에서 내 아이들은 내게 기대 잠을 자거나 좌석의 앞에 달린 영상을 무한 시청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장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내가 그리 대단해 보였나 보다.

가는 비행기 안의 그 난리를 보았다면 그녀는 내게 괜찮냐고 울먹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그 한마디가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쓴다.

수많은 승객들을 만나는 그녀가 나에게 한 그 말이,

퍽 오랫동안 나를 뿌듯하게 했다고 전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조금 있으면 중학생이 되는 아이의 엄마가 되고,이 코로나가 끝나면 훨씬 수월하게 아이 둘을 데리고 어디든 여행 갈 준비가 되어있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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