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바뀌는 이상한 나라의 인디언

엔텔롭 캐니언 Antelope Canyon, Arizona

by 윤진진


Antelope Canyon, Arizona

미국 여행에서 나와 아이들의 기억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엔텔롭 캐니언.

가 본 외국이 몇 개 되지 않아서인지 내게 미국 여행 기억은 매우 소중하고 선명한 편이라,

브런치에서 글의 표지 사진으로 엔텔롭 캐니언이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보면 매번 반갑다.


그랜드 캐니언은 그저 어디에서 보아도 그랜드 하다 로 끝난 감상평이라면 엔텔롭 캐니언은 모래 위를 달리는 자동차 체험과 아름다운 협곡, 신비한 인디언을 만나게 했다.


엔텔롭 캐니언을 찾아가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시계의 중요성을 느끼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예약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예정이었고, 여행하면서 흔치 않았던 여유에 다들 조금씩 들떠서 수없이 지나쳤던 미국의 자연경관에 새삼스레 극찬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차량의 시계가 한 시간 뒤로 바뀌었다.

시간이 갑자기 왜 이래!로 시작해서 각자의 핸드폰 시계를 확인 한 우리는 한참을 어리둥절해 있었다.

머릿속에서 까마귀가 까악. 까악. 까악. 하며 날아갔다.

이 침묵 뒤에는 으레 웃음이 터져야 하는데 누구 하나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야겠기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려는데, 미국의 도로 위 인터넷은 그 속도가 무척이나 느려서 한참을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어야 했다.


곧, 주의 경계를 넘어오면서 시계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아니, 나라를 넘어온 것도 아닌데 땅덩어리가 크니 같은 나라에서 시차가 생기는 이런 일도 있구나.

상황은 곧 어이없는 웃음이 섞인 말 몇 마디로 일단락되었으나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져서는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는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지나가는 길 한쪽 옆에 세워진 가건물 같은 곳에서

직원들은 매표를 하고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인원에 맞게 예매를 마쳤고 값도 지불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의 아이 셋을 보자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이들을 위한 카시트가 모자란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럼 우리 차를 이용해서 가도 된다고 나름의 친절한 멘트를 날렸지만

가는 길이 일반 도로가 아닌 모래로 된 길이라 일반차량은 진입이 어렵다고 했다.

그들은 잠깐 뭔가 의논하는가 싶더니 우리에게 직원용 차로 보이는 승용 트럭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다른 이들은 정해주는 대로 10명가량 한 팀이 되어 윗부분만 천막을 씌운 커다란 트럭 짐칸에 일렬로 앉았고,

우리는 문도 있고 유리창도 있는 차량에 우리 가족 6명만 탑승했다.


차는 흙먼지를 내며 출발했다.

파란 트럭 대여섯 대의 바퀴가 모래바닥에 큼지막한 홈을 내며 달리는데 그 뒤로 모래가 회오리치듯 일어났다. 트럭에 탄 이들은 저마다 눈과 입을 가리느라 분주해 보였지만 유리창 안에서 구경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멋진 볼거리였다.

아이들도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다 “우리 차가 제일 좋아!”하며 좋아했다.

시작부터 이런 신나는 관광지라니!




협곡의 입구에 도착하자 트럭 기사는 우리를 다른 이에게 소개했다.

엔텔롭 캐니언의 모래색과 비슷한 오렌지 색깔 카라 티셔츠를 입은 그는 자신을 인디언이라고 소개했다.

난생처음 만나는 인디언.

그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깃털을 꽂지도, 얼굴에 색을 칠하지도 않은 흔한 동네 청년 같았지만 한 번도 이 지역을 떠나본 적 없이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해왔다는 말에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전 세계에서 여행 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떠나가는 걸 보는 직업이라니.

정작 자신은 붙박이면서.


그는 협곡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설 만큼 친절했고, 협곡 안에서도 카메라 구도를 잡아줄 만큼 세심한 가이드였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홍수가 났을 때 이곳에 물이 가득 찼던 장면을 보여주었고 천장 꼭대기에 물살에 휩쓸려 가다 걸린 나뭇가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만큼이나 차는구나 물이. (스마트한 인디언일세)


아이들은 너무도 고운 모래를 만지고 또 만졌다.

(미국 여행에 주목적이 모래놀이인듯한 아이들)






협곡의 틈으로 더 들어가자 세상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비쳐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동굴 안은 밝게 빛나고,

고운 모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이 흘러가는 것처럼 부드럽게 자국을 내고 있었다.


동굴 안은 이리저리 급하게 꺾여있어 몇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장면을 연출해냈다.

빛과 협곡이 협작 하여 만든 작품을 인디언 큐레이터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듣는 기분이었다.


용의 눈 Dragon Eye.



곰 Bear.




동굴이 끝이 나자 작은 공터가 나왔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협곡 안을 통해 왔던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한참이나 모래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잠시 휴식의 자세로 돌아왔고

나는 인디언과 친오빠의 대화를 기웃거리며 주변을 감상했다.


오빠가 인디언에게 들은 대화를 통역해준 바로는 예전 이 엔텔롭 캐니언에는 낙서와 총알 자국이 무수했다고 한다. 지금은 복구와 보존을 위한 노력으로 다시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벽면에 보이는 총알 자국은 육안으로도 꽤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아들은 총알 자국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는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돌에 총알 자국’이 있었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들은 벽면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도 흉한 총알 자국을 남겼다는 걸 알기나 할까.




왼쪽 상단에 총알 자국이 보인다




친오빠는 내게 아이들과 함께 사진 찍어주겠다고 “서봐.”라고 했지만

나는 가이드 인디언에게 뛰어갔다.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이메일이라도 주고받고 싶을 정도로 나는 그가 맘에 들었다.

다들 웃으며 자기도 같이 사진 찍겠다고 난리가 났지만

친오빠는 못마땅해했다.

"자식, 조서방 없다고.."


사진을 한국에 있는 내 남편, 조서방에게 보내 자랑했다.

“나 이 사람 맘에 들어!”

남편은 내 말을 무시하고 “배가 좀 나왔네..” 했던가..




엔텔롭 캐니언의 협곡은 모래와 빛과 인디언이 어우러져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차원이 다른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그 협곡에서 인디언 모습을 한 영혼이 걸어 나온대도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햇빛은 조용히 협곡의 틈 사이로 내려오고

바람은 숨죽여 협곡 사이를 지나쳐가는데

모래만이 사아아아 흘러내리는 소리를 내는 협곡.

Antelope Canyon.


내가 들은 그 모래소리를

다른 누군가도 귀 기울이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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