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ONA HIGHWAY PATROL.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났다.
뒤돌아 보니 경찰차가 우리 차 뒤에 있었다.
하지만 사이렌 소리는 금방 멈추었고 우리는 계속 쭈뼛거리며 주행했다.
100미터쯤 갔을까, 사이렌 소리가 다시 울렸고 다시 멈추었다. 여전히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던 우리에게 경찰이 차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옆으로 대래."
"옆에 대봐, 오빠"
운전하는 오빠가 모를 리 없건만 긴장감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도로 옆에 우리 차는 다소곳이 멈춰 섰다.
경찰이 우리를 따라 뒤쪽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여유 있는 팔자걸음은 그의 덩치를 더 커 보이게 했고, 그가 쓴 선글라스는 눈이 알려주는 예고를 차단해 마음을 더 조급하게 했다.
"왜 그러지?"
"전부 벨트 맸어?"
머릿속에서 미국 경찰이 총을 들고 동양인을 제압하는 장면이 떠올랐고,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카메라를 켰다.
경찰은 아주 느긋하고 재밌다는 듯이, 조수석 문짝에 손을 올리고 이야기했다.
내가 알아들은 말은 very fast와 very expensive ticket 정도이지만 과속단속에 걸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면허증을 가지고 그가 그의 차로 돌아간 동안 조카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에 겁이 나서 그런 줄 알고 아이를 달래다 보니, 아니다. 조카아이는 그저 내 아이가 가진 거북이 모형이 가지고 싶었을 뿐.
평소라면 아이가 우는 시늉만 해도 달랜다고 이 말 저 말을 마구 쏟았을 오빠 부부인데 둘 다 말이 없었다.
어깨에 아이 3명을 비롯하여 영알못인 나까지 대롱대롱 매달고, 방어막을 펼치는 동시에 혹시 모를 상황에 자세를 낮추며 경계하는 둘의 모습이 겹쳐졌다.
차 안만 아니라면 아이들을 이끌고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피해있고 싶었다. 그들이 좀 더 수월한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지만 문을 열기에는 미국 경찰이 너무도 무서웠다.
경찰은 한참 후에 돌아왔다.
손에 커다랗고 파란 종이를 들고서.
여기는 35마일 도로인데, 57마일로 달렸다. 티켓은 367달러이다.
You need to slow down.
마지막 충고와 함께 경찰이 준 과속 딱지는 무려 40만 원짜리 였다.
오빠는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으나 그는 범죄자를 체포하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듯, 속도와 벌금, 납부 방법, 이의 제기 방법 등을 한 번에 나열하고는 쌩하니 가버렸다. 나는 그의 퇴장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저 다행이다 여겼지만, 당시 미국에 거주 중이었던 오빠 부부는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의 지원금에 기대어 유학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그 금액은, 너무도 큰돈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고속도로에서 애리조나주로 들어오는 국도 입구에 차를 숨기고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한국인이 애리조나주에서 속도위반으로 구속된 기사가 맨 위에 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텅 빈 국도에 들어섰을 때 제때 속도를 낮추지 못한 한국인들이 많은 듯했다. 텅 빈 도로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으면 계속 달려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유독 한국인 뿐인 걸까?
차 안은 혼자 화를 내며 운전하는 오빠의 목소리만 왕왕 울렸다.
"이럴 거면 좋은 숙소에서 잘걸. 경비 아끼려고 저렴한 데서 잤더니 한 번에 다 날아갔네."
“애리조나주 법정에 출두해서 이의 제기하라니.. 여행 온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
오빠는 조금 진정되려나 싶으면 화가 다시 올라오는지,
‘미국에서 산지 1년이 넘었는데 처음 끊는 딱지’ 라며 또 한 번 씩씩댔다.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 그랜드 캐니언에 왔다는 우리의 흥분은 경찰이 건네준 파란 종이 한 장에 차갑게 식어버렸고
우리는 말없이 조카아이를 달래 줄 거북이를 스케치북에 그리고 또 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파란 하늘에 텅 빈 도로에서,
갑자기 나타나 사이렌을 울리던 그를 만난 것이, 전부 나의 상상인 것만 같다. 미국에서 여행을 하고 있을 때에도 ‘정말 내가 미국에 있는 것일까’ 하며 종종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는데 마법처럼 갑자기 나타난 미국 경찰의 존재는 시간이 갈수록 내 머릿속에서 신비로운 휘장을 둘렀다.
아이를 동반한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경찰을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우리는 바로 다음날,
낯선 주차장에 앉아 불러도 오지 않는 경찰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