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찰을 불렀다.

by 윤진진

여행은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다.

그 유한함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고 간직하게 한다.

우리의 여행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친오빠네 가족을 만난 것 만으로 마음이 한결 놓였었는데 두 가족이 만났으니 여행 내내 작은 다툼이 없을 리 만무했다. 미국 운전을 겁낸 내가 국제 면허증을 발급해오지 않아 긴 여행 내내 운전을 해야 했던 오빠의 수고로움을 시작으로 두 집 아이들의 겹치는 취향에 종종 눈물바다가 펼쳐졌다. 일정을 시작하는 아침 시간도 잠이 많은 우리 집과 부지런한 오빠네와는 조금씩 끼긱거리는 소리를 냈다.


씨월드에서는 우리 집 둘째가 자신의 누나에게 자꾸 이름을 부르는 사촌 아이를 제재하면서 울음이 터졌다. 1년간 미국에서 생활한 아이에게 어느새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있었으나 누나에게 자꾸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리 듣기 싫었는지 따박따박 태클을 걸었다. 조카아이가 누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누나 해야지! “

내게 높임말을 쓰지 않으면

“요! 해야지”

라며 꾸중을 했다.

결국 오빠네 외동딸은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나대로 자신의 아이 편을 드는 오빠를 보고 속상하여 잠깐 따로 다니자고 하고는 자리를 뜨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최소 1년은 못 볼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애가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마지막 일정을 정하고 캘리포니아로 달려가면서 모두 아쉬운 마음 반, 홀가분한 마음 반으로 각자의 여정을 정리하고 있었을 테다.


반대편 차선도 뚝 떨어져 있는 미국 땅의 외로운 도로를 달리고 달리다, 갑자기 나타난 햄버거 가게에 환호하며 주차장에 차를 세웠더랬다. 그 큰 주차장에 우리 차 말고 딱 두대가 더 세워져 있었고 넓디넓은 햄버거 가게에 커다란 실내놀이터까지, 마치 마법사가 휑한 공간에 마법을 부려 만든 것처럼 생뚱맞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햄버거 가게를 놀이터처럼 한바탕 뛰어논 아이들과 잠시 맘 편히 앉아 콜라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한숨 돌린 우리는 모두 만족스럽게 가게를 나왔다.



이제 캘리포니아의 바다를 보러 가자며 들뜬 마음으로 차에 탔다. 여전히 휑한 주차장을 차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동안 벨트는 다 맸니, 응 맸어, 내 스케치북 어딨지, 거기 의자 뒤에 있어, 거북이는 어디 갔지, 우리 이제 간다, 등의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차가 일순간 흔들렸다.

카강!

뭔가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뭐야? 뭔데? “

얼른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내게 오빠가 말했다.

“하아… 차가 부딪혔어. “

앞을 보니 차량 한 대가 아주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멈추었다.

“옆으로 대봐 오빠. “

오빠도 천천히 길가 옆으로 차를 댔다.

오빠가 차에서 내리자 앞차 운전석에서 전화기를 귀에 댄 여자 운전자가 내렸다. 어렸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정도 나이로 보였다. 오빠가 가까이 다가갔지만 운전자는 전화기를 계속 들고 있었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다친데 없어요? “

오빠가 물어보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친데 없다고 대답했다. 차량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긴 했지만

바로 옆 주차장으로 차를 이동시키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여자 운전자에게 신고하겠다고 미리 말한 후, 경찰에 전화를 했다.

“교통사고가 났으니 와 주세요.”

가벼운 접촉사고라 한국이었으면 보험 처리하고 안녕하고 갔을 텐데, 미국인 데다 차는 렌터카였고 보험이 어느 정도까지 커버되는지도 확인해봐야 했다. 다소 긴장되어 보이는 여자운전자와 동양인 여섯 명은 매우 어정쩡하게 서서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보다 그녀의 가족이 먼저 도착했다. 엄마, 아빠로 보이는 사람과 오빠까지 세명이 도착하고 자신의 아이를 다독인 후에 우리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해왔다.

20분쯤 더 기다리자 또 한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차량에서는 여자 운전자의 친척들이 6명쯤 내렸다. 사촌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주차장 바닥에서 돌을 찾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며 놀았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데다 아이들은 바다에 언제 가냐며 투덜대기 시작해서 가뜩이나 굳은 얼굴의 친오빠 옆에 둘 수가 없었다.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경찰차가 들어왔다. 한국이었으면 환호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무서웠던 경찰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경찰은 오빠의 이야기와 여자 운전자의 이야기를 들었고 5분 만에 결론을 말했다.

“여운전자가 직진 차량이었으니 당신의 잘못이다. “

경찰은 길고 긴 두장의 종이를 주며 말했다.

“하나는 당신이 갖고 하나는 렌터카에 제출해야 한다.

그럼 난 이만 안녕”

경찰은 올 때와 달리 쌩하니 가버렸다.

여자 운전자 친인척들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북적이던 주차장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과속 딱지를 끊은 것도 모자라 사고까지 나다니, 뭐 이런 X 같은 경우가 다 있을까?! 눈치 보느라 오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힐끔거렸다.

그런데 경찰의 쿨함이 옮은 것인지 여행 마지막에 정신이 혼미해진 건지 차에 타자마자 오빠가 말했다.

“이제 가자, 바다!”

화답하듯 아이들이 소리쳤다.

“예에~~ 바다 간다~!!!

어이없는 웃음이 번졌다.

그래 가자, 미국 바다는 처음이잖아.

협곡도 가고 사막도 갔으니 바다도 가야지.

한국에서 여행 와서 벌금만 엄청 깨 먹고 가는

우리가 간다!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


여섯 명의 우리는 하나같이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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