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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Dec 22. 2021

도자기를 빚는 물레, 부모의 손이란.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가 돌아간다

빙글빙글.

부모는 아이가 예쁘게, 단단하게 빚어지길 바라며

조심스레 손을 대었다 떼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도자기의 아랫부분이 모양을 잡기 시작하면

부모의 손이 닿는 횟수가 줄어든다.

대신 다른 손들이 생겨난다.

친구의 말랑한 손, 선생님의 매끈한 손.

부모의 손은 점점 신중함을 띠어가지만

다른 이들의 손은 더욱 자유로워진다.

도자기는 어느새 몰라보게 길어진다.


도자기는 틀에서 떠나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붙어있지만

사실은 한 줄의 실로도 쉽게 떨어져 나간다.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여전히 도자기를 떠받치고 물레를 돌리고 있는 건

부모이다.  




아들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바이엘 1권이 3주가 되기 전에 끝나고 2권이 시작되었는데 학원에 다녀올 때마다 진도 나갔냐고 묻는 저를 보더니 남편이 말합니다.

"다 소용없어. 자기가 좋아해야지 남는 거야.

나도 체르니 30까진가 40까진가 쳤는데 하나도 못 치잖아."

'잘났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삼켜봅니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어서

키도 중고등학교 되면 다커, 공부도 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다해.라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제 남편은 그 범주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사람임을 익히 알고 있는 터이고요.

하지만, 가끔 핵심을 찌르는 얇은 바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에 마냥 못 들은 척할 수만은 없습니다. (흥!)


피아노든 공부든 실상 하는 건 아이들입니다.

바이엘이나 체르니 몇 번까지는 부모가 학원에 보내니 해오겠지만 그다음은 본인의 몫으로 놓여집니다.

백지로 돌아갈지 아니면 한 번씩이라도 들춰보는 취미생활로 가져갈지 말입니다.

공부도 초등 때야 부모의 말에 따라 이것저것 해보고, 조금만 공부해도 백점이 이어지니 할 맛이 납니다. 하지만 공부가 어려워지고, 친구는 좋아지는데 공부했니, 숙제 다했니, 꼬박꼬박 물어보는 부모의 말은 애정 어린 관심이 아니라 지나친 간섭으로 느껴질 테지요.

오래 공들여 키워낸 함함하기 그지없는 내 자식의 배신이, 종이 한 장 뒤집듯 가볍게 찾아오는 때가 이때입니다. 부모는 어린 시절 귀여웠던 아이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랬었는데. 하며 그리워할 때 아이는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는 친구와 깔깔대며 문자를 주고받을 것입니다.


화를 내야 할까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이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흥미를 끌만한 것에 대한 정보를 흘려야 합니다. 아이가 먼저 방문을 열고 나와 “엄마, 그게 뭐야?” 하고 물어 올 수 있게요.

인터넷이나 책을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꽤 흥미로운 내용이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요량으로 메모해둡니다. 얼마 전에 올리브영이 all live young이라는 것을 알고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꺼냈지요. “너 올리브영이 무슨 뜻인 줄 알아?” 하고요.

책에서 나온 단어를 기억해놓기도 합니다. “바다가 반짝반짝하는 것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윤슬’이라고 해. 엄청 이쁜 이름이지?’”

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듣고 슬쩍 따라 부르면 “엄마는 이 노래 어떻게 알아?” 하며 놀라워합니다.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가수의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선심 쓰듯 엄청난 음악영화를 보여주겠다며 거드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공감 밀당'이랄까요?

화젯거리를 계속 만드는 것이 부모의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거나, 문을 열고 밖을 나갈 때 서로 건드리지 않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관계는 점점 소원해질 것입니다.





물레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지만

도자기는 그 자리에 빛을 내며 서있다.

무너질까 염려되어

눈을 떼지 못할 테지만

도자기는 이미 어떤 무늬를 넣을지

고민하고 있다.

무늬가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가장 아름답게 보아줄 이는 부모이다.





picture by Earl Wilcox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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