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진 Dec 07. 2021

작가에 대한 상상


작가들은 수많은 표현과 생각을 책에 고스란히 써놓고 나면 텅 빈 껍데기가 될까, 아니면 비운만큼의 표현과 생각이 다시금 차오를까?


일상에서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놓고 적절한 문맥에 끼워 넣을 수는 있지만 책을 쓰는 중간에 이런 생각이 떠오를 것 같지는 않다고 딸아이가 말했었다. 나도 동감이고.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운전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룸미러나 백미러를 통해 후방을 자주 확인한다.
룸미러나 백미러를 통해 후방을 자주 확인하는 것은 뒤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고전을 읽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송재환 선생님의 [다시, 초등 고전 읽기 혁명]에서 나온 글이었는데 나와 딸아이가 경탄을 금치 못했던 비유였다.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해내는 거야’로 시작해서 한참을 감탄하며 몇 번을 읽었다. 머릿속이 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어느 날에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탁 하고 떠오른 비유일 거라고 우리끼리 결론지었다. 막힘없이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술술 써진 건 아닐 거라고. 이 비유를 써놓고 ‘음~탁월해’ 하며 스스로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하며 궁금해했었다.


작가의 노트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가지런히 메모 해 놓았을까, 엉망으로 키워드만 휘갈겨 놓았을까? 등장인물의 이름도 몇 개 써져 있겠지?

정세랑 작가가 tvn 예능프로 ‘유 퀴즈’에 나왔을 때, 꿈을 꾸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써놓는다고 말했다. 그걸로 단편 하나 분량은 나온다며. [달러 구트 꿈 백화점]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예지몽을 쇼핑하셨을지도 모른다. 설렘과 흥분을 지불하고. 물론 정세랑 작가의 책에 담긴 작가적 상상력은 예지몽으로 커버되기에 너무 광활해 보이는 것이 많긴 하다. 이해하기 힘든 곳까지 뻗어나가 있으니 오히려 ‘달러 구트’가 두 손 두발 다 들었을지도.


‘달러 구트’란 이름이 이미예 작가님의 노트에 들어 있었을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도 궁금하다. ‘달러 구트’란 이름을 보고서는 한국 작가의 책일 거라고는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달러 구트 꿈 백화점]의 원래 제목은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였다고 한다.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책 제목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상반된 두 가지를 넣어 제목을 쓰고 싶으셨다는데 [달러 구트]란 이름을 생각해낸 것만으로 작가님이 승기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너무 매력적인 이름이다.


이도우 작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겠어요]에서 ‘윤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처음 듣는 단어에 이런 걸 뜻하는 단어도 있냐며 친구와 한참을 얘기했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너 이 단어 알아?”하고.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면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설명이 뜬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옛날 국어사전에 그런 단어는 없다.

이도우 작가님은 그 새로운 단어가 국립국어원에 등재될 때부터 작가 노트에 써놓고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윤슬이라니. 너무 예쁜 단어를 독차지한 기분에 꽁꽁 숨겨놓고 다른 이에게 알려주기 싫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내 노트에도 쓰여있다. 윤슬!


한번 듣거나 읽게 되면 직접 써보고 싶은 표현이 있다.

느낌이 딱 오는데 외우기에 어렵지 않은 표현이다.

“엄마, 배가 계속 고프다는 말을 ‘제 속에 걸신이 상주하셔서’ 란 표현을 써. 천재적이지 않아? “

딸아이는 내게 저 말을 한번 한 이후로 배가 고프다고 할 때마다 저 표현을 써먹는다.

“또 배고파?”

“내 배에 걸신이 상주하셔서.. “

[갯마을 차차차]에서 나온 말이란다.


나도 써먹는다.

얼마 전, 9살 초2인 아이에게  문제집을 내밀며 멋진 척 말했다.

“엄마는 네가 천천히 걷길 바래. 뛰지 않아도 돼.

걷다가 뛰는 건 할 수 있지만, 멈춰있다가 뛰려면 힘이 많이 들어. “

이런 멋진 말을 작가는 만들기도 하는데 나는 외워서 하면서도 혼자 흐뭇해한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에 나왔던 표현인데 나는 매일 꾸준히 문제집을 풀자는 뜻으로 써보았다. 천선란 작가는 내가 아는 한 표현 제조기다. 책 한 권에 메모해 놓고 싶은 표현이 수두룩해서 띠지가 모자랄 정도이다.


작가들의 작업실은 사계절 풍경이 고스란히 내비치는 멋진 방이지 않을까.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책이 주인인 듯 꽉 찬 책장 속에 끼여 앉은 작가.

제인 오스틴처럼 셀본 숲을 산책하진 못해도 여의도의 그 좁은 길을 요리조리 다니며 사색하는 작가.

멋지다. 작가의 이름을 가진 그들이.

수많은 표현과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는 그들이.


나는, 그저 가까이하고 싶다.

다가갈수록 감동적인 그들을.






Picture by Marcos Paulo Prado i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울고 싶은 나는 내 가면을 띄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