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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Aug 29. 2022

딸아이가 롯데 자이언츠 야구팬이 되면 생기는 일 1.

이 나이에 부산에서 비 맞으며 야구 응원을 할 줄이야!



내가 나이 마흔 하나에 부산 사직구장에서 비를 맞으며 미친 듯이 응원을 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야구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롯데는 주변 백화점 이름일 뿐이었는데.

게다가 오후 2시에 광명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서면 호텔에 들린 다음 롯데 유니폼을 갈아입고 사직구장에 왔다. 어디가 구장 입구인지 몰라 그 큰 구장을 한 바퀴 뺑돌고는 겨우 내야석을 찾아 들어왔다.

경기는 한화에게 계속 지는 스코어였는데, 두 시간쯤 뒤부터 쏟아진 비에 왠지 모를 오기와 함께 비 맞은 롯데 팬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타 하나, 하나에도 미친 듯이 응원했다.

오늘 롯데가 승리한다! 롯데!      



아이가 응원할 야구팀을 롯데 자이언츠로 고른 건

자신의 연고지도, 승률도 아닌, 배우 남주혁에서 부산, 그리고 사투리로 옮겨간 애정 때문이다. 사투리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너무 귀여워 죽겠다나.


그렇게 아이는 롯데 자이언츠를 팀으로 정하고 매일 핸드폰으로 경기를 시청했다. 매일 저녁, 점수 브리핑까지 내게 하면서 그야말로 열혈 시청에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가 진심인지, 좋아하는 척하는 건지 구별이 안됐다. 그저 야구 룰을 몰라 번번이 왜 그런지 묻는 아이가 제 아빠와 신나게 대화하는 것이 보기 좋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구장에 직접 응원을 가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로 닫았던 야구장을 다시 열어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간다고 듣기만 했지, 여전히 사람 많은 곳을 피하던 때였다. 그런데 야구장이라니. 하지만 아이 아빠도 한 번쯤 아이들에게 야구장을 보여주고 싶었던지 다녀오자고 했다. 야구장 직접 관람, 요즘 말로 ‘직관’. 그때는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걸 전혀 몰랐던 거다.


수원 구장에 들어섰을 때, 사실은 마음이 웅장해졌다. 몇 년 만에 보는 구름 같은 인파에, 한 목소리로 부르는 응원가, 함성소리.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과 뒤섞인 안도감이 올라왔다. 나 스스로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는 목소리가 그리웠던 것일까. 아이는 너무 감동적이라고 했고, 둘째 아드님은 무서워 간식하나 입에 넣지 못하고 마스크를 꼭 잡고 있었다. 아이는 경기장을 다녀와서 떼창 응원에 감응하여 너튜브로 롯데의 응원가를 섭렵했다.


그 후, 잠실 구장에 응원을 가게 되었는데 두산 팬인 애아빠가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이번에도 지면 아빠와 두산팀을 응원하자고.  아이는 싫다고 했지만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날 잠실구장에서 두산의 응원은 정말, 멋졌다. 하얀 수건을 멋지게 이용했고, 사위가 고요해졌다 느낄 정도로 조용해졌다가 ‘어이’ 하며 천둥소리를 내기도 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응원단의 기세와 각 잡힌 응원은 보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났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는 그날 짜릿한 경기를 선물했다. 2점 뒤지는 4대 2. 베테랑 김강윤으로 투수 교체까지 한 두산을 상대로 9회 초 롯데 주자 1,2루 상황에서 고승민 선수가 홈런을 쳤다!!! 대박!! 9회 초에 역전이라니!!!

“이게 야구지!”


9회 말 두산이 점수만 내지 않으면 역전승인데 수비 실책으로 2루까지 진루한 두산이 결국 3루에 발을 디뎠다. 엄청나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는데 타자가 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글러브 속으로 들어갔다! 쓰리아웃!!!

롯데의 기막힌 역전승!!!

경기장은 난리가 났다. 그 적은 롯데 팬들이 두산 인파 저리 가라 소리를 내질렀다. 흥분의 열기가 식지를 않아서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응원가가 경기장과 나가는 통로까지 울려 퍼졌다.

승리의 롯데~ 어이! 어이! 어이!




롯데 홈구장에서 응원해 보고 싶다며 아이는 우리를 조르고 졸랐다. 그래도 롯데 팬이 되었는데 홈구장 직관을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냐며 어설픈 주장을 반복했다. 그리고 귀에 딱지가 앉을 때쯤, 우리는 부산에 와 있었다.


비 소식에 경기가 취소될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다행히 경기는 진행되었고 우리는 신나게 간식거리와 맥주를 샀다. 하지만 이내 시작된 비에 치킨과 감자튀김은 물에 젖었고 맥주는 빗물과 섞여 버렸다. 노아웃, 주자 만루 상황에서 1점 득점하고 모두 아웃되자 ‘롯테이’ 를 외치던 외국인 무리들은 자리를 털고 가버렸다.

어두워진 구장의 굵어진 비는 커다란 라이트에 비쳐 반짝거렸고, 내야의 흙은 물을 머금어 발갛게 달아올랐다. 빗 속에 공을 던지며 뛰고 또 뛰는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빨갛게 묻은 진흙이 점점 더 크게 번져갔고, 그걸 보는 우리는 절로 뭉클해졌다.


마흔 하나의 나는 아이와 함께 젖은 머리칼을 쓸면서 응원가를 부르고 또 불렀다. 비를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든든한 데다  묘한 희열을 동반했다.


롯데는 한화에게 계속 뒤졌고 결국 졌다.

하지만 아이는 재미있는 게임이었다고 했다. “머리가 더 짧았으면 우비를 벗고 응원했을 텐데”라며 아쉬워도 했다. 나는 해탈한 기분이었다. 이기고 지는 승패가 상관 없어지는 지점에서 두 팔을 휘저으며 서 있던 나는 무조건적인 환영과 응원을 펼친 후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구장을 나왔다.


경기가 끝나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호텔로 빠르게 돌아가 젖은 몸을 씻어내고 싶었지만, 택시는 그 넓은 삼거리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30분 넘게 서서 애타게 택시를 부르던 우리는 망연자실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 택시가 좌회전을 크게 돌아 우리 앞에 섰다. 택시 기사님은 우리가 타자마자

“아가 있어서 세운 겁니다이” 하셨다.

남편이 “부산에는 택시가 많이 없네요?” 하고 물었다.

기사님은 웃으면서

“오늘 여, 흠뻑쇼 했다 아입니까, 싸이 공여언”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흠뻑쇼는 사직구장에서도 했는데. 싸이가 아닌 롯데와 한화가. 그때, 택시가 코너를 돌았다. 길 가득 파란 옷을 입은 인파가 도로를 향해 팔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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