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진 Dec 01. 2022

책을 안 읽어서 그래.


엄마, 애들은 나보다 문법을 훨씬 잘 알아.

근데 점수가 안 나와.


왜 그런지 알아? 책을 안 읽어서 그래.

엄마가 오늘 수업을 갔는데 아이 책상 앞에 작은 학습지가 붙어 있는 거야. 그런데 학습지 선생님이 빨간색 색연필로 크게 글을 써났어.


조사.

받침 0. 을, 과, 은

받침 X. 를, 와, 는


이런 한글 문법을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가르치고 있는 거야. 물론 한 번 알려줄 수는 있지. 하지만 강조해서 써 줘야 할까?

‘가방을’이라고 쓰지, ‘가방를’ 이라고 쓰면 이상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잖아. 책을 읽어서 알고, 말을 들어서 알고. 그런 것을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써 붙여 놓는다면 아이는 가방 뒤에 ’을‘을 써야 할지 ’를‘을 써야 할지를 몰라서 입을 열지 못하겠지.


영어를 문법부터 배운 아이들이 말을 하지 못하고 글을 읽지 못하는 이유야. 국어든 영어든 책을, 글을 읽으면 되는데 말이야.


처음부터 책을 어떻게 읽냐고? 처음엔 들어야지. 처음엔 듣고 따라 하는 거야.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면 뭐부터 가르칠까? 다짜고짜 앉혀놓고 ‘가나다라’를 쓰라고 할까? 아니겠지. 입을 크게 벌려가며 손을 휘저어가며 ’ 안! 녕! “ 하고 말하겠지. 그리고 이게 뭐냐는 눈빛이나 손짓을 보면 또 큰 소리로 말하겠지

”의! 자! 의! 자! 이건 의자야!!!”

그럼 그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따라서 말해볼 거야.

“어자?”

 엉터리 발음을 들은 우리는 흥분하며 말하겠지.

“의!!‘ 자!!! 의!!! 자!!! 이건 의자라고!!! 의자!!!”

그럼 그 사람은 알겠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할 거야

“의자!”

그럼 우리는 세상 기뻐하며 잘했다고 칭찬해주겠지. 그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 옆의 물건을 가리킬 거야. 마치 그곳에 있는 물건 이름을 다 알아야 하겠다는 듯이.


우리는 아이에게 처음 영어를 가르칠 때 어떻게 해?

테이블. 디스 이즈 테이블. 체어. 댓이즈 체어. 애플, 북 하며 주변에 온갖 사물을 영어로 알려줘?

요즘엔 파닉스를 가르치잖아. 어떻게 읽는지 가르치는 거지. 왜 읽는 것을 가르칠까? 들은 적도 없고 주변 사물이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왜 읽는 걸 먼저 가르칠까?

모르지. 나야. 난 영어 선생님도 아니고. 그냥 이상하다라고 느낄 뿐이야. 왜 듣는 게 먼저가 아닌 건지. 그림책을 보며 사물의 이름을 듣고 그림과 이름을 짝 지어주는 건 너무 시시한가? ABCD를 대문자로 쓰고, 소문자로 쓰고, 소리 나는 대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한 걸까?


넌 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응? 엄마, 엑소 도경수가 말할 수 없는 비밀 찍은 거 개봉한대. 이거 보러 가야 해. 으아~ 경수야~ 엄마 진짜 도경수 얼굴 보면 눈물 난다니까.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내가 엄청난 양의 잔소리를  아이에게 하는 것이 미안해질 때쯤 아이는 매번 정적을 깨고 말한다. 내가 한참 동안 이야기했던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아이돌 덕질이나 영화, 드라마, 음반 이야기를.

그럼 나는 잠시 멍해졌다 다시 맞장구 쳐주는 본업으로 돌아간다.

“그래? 걔가 그랬대?”

아이는 신나 하며 말한다.

“우와! 엄마, 이거 진짜 대박! “


언젠가 들어주겠지 내 잔소리..



Main picture by ROAD TRIP WITH RAJ in 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대한민국의 흔한 중2와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