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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Apr 22. 2022

학교 동아리에 없던, 밴드부를 만드는 아이.

내가 쓰는 글은 결과 보고서가 아닌 과정의 기록이다.

어떤 것을 바꾼다던가, 어떤 일에 반대를 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은?

내게 그런 일들은 항상 내적인 상상만으로 가능한 일이었고 내가 아닌 어떤 위대한 이들의 몫이었다.

나는 항상 '대부분'이라는 편에 속해있길 원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명이 가는 대안학교나, 몇 명이 하는 비인가 학교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은 너무 특별해 보였고 어려워 보였다.


내 아이는 올해에 중학생이 된 1학년 신입생이다.

아이는 학교와 친구들과 선생님을 좋아한다.

해서 코로나로 인한 줌 수업을 꽤나 힘들어했다. 학교에 가고 싶어서.


아이가 진학한 학교는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중학교인데 작년에 뉴스에 나왔었다.

학교 예산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운동장에는 축구 골대 하나 없고, 음악실에 악기는커녕 책상도 없어서 맨바닥에 책이 놓인 채로 수업하는 모습이 비쳤었다.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교사 중 몇 명이 양심선언하듯이 제보를 했다는 소문이 두둥실 떠돌았다.

교장 선생님은 바뀌었고 운동장에는 축구 골대가 섰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는 덩그러니 서있다.


아이는 입학 전부터 초등 때 있던 토론 동아리가 있을까, 기타 동아리가 있을까 기대했었다.

가끔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가 기타를 메고 가는 걸 본 적이 있는지라 기타 동아리나 밴드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에 정식 동아리는 방송반이 전부였고 아이는 자기가 밴드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동아리 신청서를 받으러 동아리 담당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자리에 안 계셔서 몇 번을 헛걸음했다고 했다. 드디어 만난 선생님께 A4용지 한 장과 ‘밀어주는 응원' 아닌 '잡아끄는 응원'도 함께 받아왔더랬다.

“뭘 만들어~ 그냥 있는 거 하지"

학교에서 받아 온 자율학기제 홍보 팸플릿에는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중학교 교육과정’이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자율 학기제는 교과 활동 외에 자유학기 활동 네 가지로 구분되어있고 주제 선택 활동, 진로 탐색 활동, 동아리 활동, 예술 체육 활동이 있다. 하지만 팸플릿에 보이는 수많은 ‘활동’은 학교별 편차가 커 보인다.


아이는 동아리 모집 포스터를 만들어 각 반과 복도에 붙였다. 아이가 받은 동아리 명단 칸은 딱 8칸이었고 그 아래는 '이하 여백'이라는 글자가 찍혀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해 7명의 학생만 선착순으로 받기로 했다. 동아리를 만들 수는 있지만 같은 학생으로서 학생을 평가할 수는 없다며 오디션이 아닌 선착순으로만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포함해 기타 4명, 보컬 4명의 동아리가 순식간에 꾸려졌다. 아이는 월, 수, 금 방과 후 30분 정도를 기타 동아리의 연습시간으로 정하고 음악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자신이 매우 바쁘긴 하지만 동아리 담당 선생님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허락해 주셨고 아이는 팔짝팔짝 뛰며 신나 했다. 아이들과 함께 연주할 곡을 정하고 악보를 뽑아서 연주파트도 정했다.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지만 아이의 동아리가 딱히 어떠한 결과물을 내는 건 없어 보인다.

학원 일정으로 연습에 빠지는 아이도 있고, 잠깐 연습하다 오래 놀다 오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하지만 나는 무거운 기타와 가방을 앞뒤로 메고 가는 아이가 어리석어 보이지도, 걱정스럽지도 않다. 아이의 공부는 시간에 따라 돌아가는 시계 속의 톱니바퀴처럼 털컥털컥 돌아간다. 매끄럽진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털컥털컥.




얼마 전 내가 쓴 글 중에 아이가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쓴 내용이 있었는데 그 글이 다음의 메인에 올라갔었다. 조회수가 높아져서 신기해했었는데 악플이 달렸다. 아이가 한 행동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처음 받아보는 악의 가득한 글이 내 아이를 향해 있다는 것에 몇 시간을 고민했었다. 내가 이 글을 왜 써서 올렸을까 하는 후회부터 아이에게 화살이 가게 했다는 죄책감,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 마음 맨바닥에서 부웅 소리를 내며 떠오르던 화. 이런저런 생각에 브런치에서 악플 대처에 대한 글 검색도 하고,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님께 조언을 구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그 댓글을 삭제했다.

브런치에 댓글 삭제와 차단 기능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브런치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내가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생각의 차이를 줄여보기 위해서,

조금 더 떨어져 생각할 수 있고 정리해 볼 수 있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글로 쓰다 보니 나와 다른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신기해 보일 때도 있고 어른인 나보다 더 나아 보일 때도 있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자신의 아이를 이해해 보려 한다면, 아이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한 번 돌아보게 했다면 나는 무척이나 기쁠 것 같다.

조금 더 솔직해져 보면 아이라는 존재는 내게 끊임없이 글쓰기 소재를 제공해준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으니까.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육아관, 교육관을 가진 분들도 계신다. 전문가들끼리도 유아어를 쓰는 게 좋다는 분과 유아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나뉜다. 엄마는 아이의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는 분도 계시고 아이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교육은 절대 엄마가 하지 말라는 분도 있다. 수많은 의견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따를지는 개인의 자유이다.

내가 쓰는 이 글도 나의 생각과 같아서 공감해주시면 나는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공감이 1도 안 가는 글인 데다 시간 낭비인 글인 것 같다면 그저 지나쳐주셨으면 한다. 악플은 쓰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여전히 그 악플을 생각하면 글을 쓰는 손가락이 멈출 만큼 겁이 난다.


분명히 하자면 아이가 교장 선생님께 염색을 허용해달라는 편지를 쓰는 일도, 동아리를 만들겠다는 일을 쓰는 것도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시작만 하고 끝이 흐지부지하지 않냐고 닦달할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나 또한 그 순간을 참고 있다. 지나고 보니 그 찰나의 순간을 넘기면 조금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아이에게 말할 수 있다. 날을 세우지 않고, 나나 아이에게 무모한 생채기를 내지 않고.


악플에 적힌 ‘근시안적이고 짧은 식견과 낮은 경험치’라는 말에 반박할 말은 없다. 아예 틀린 말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게 아이는 이제 갓 중학교 교복을 입기 시작한 14세일뿐이다. 처음으로  엄마를 통해서가 아닌 친구들과 직접 연락을 하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배드민턴을 치러 가는 것에 신나 하는 아이. 나이에 대한 느낌도 상대적인 것이라, 자신의 아이가 유치원생이면 14살이 매우 큰 어른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군인 아저씨께’라고 쓴 위문편지를 받는 이들도 알고 보면 갓 성인이 된 스무 살 무렵의 어린 청년이었음을. 내겐 14세도 ‘귀엽게 봐주는 것’이 아닌 ‘귀여운 나이’이다.

넓은 식견을 가지게 이끌어주고 보고 배울 수 있는 실천적인 모습을 기대해야 하는 건 아이가 아닌 나,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충고가 아닌 칭찬이, 비난이 아닌 격려가 맞다.



부모가 내쉬는 한숨이

아이에게는 따뜻한 입김이 되어 닿기를.

그리하여 반짝반짝 윤이 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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