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유지비

허영은 여성의 본능임으로

by 채플힐달봉


한 50대 중반의 남성이 자신의 아내를 약간 비하하면서 말했다.

”내 아내는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좋아. “

그날의 분위기와 앞선 이야기들의 흐름상 그의 발언에, 모인 모두가 하하 웃었지만 현장에 있던 몇몇은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결국 그의 발언은 뒷이야기가 되어 사람들이 모이는 곳곳에서 논쟁을 불러왔다.

바로 그 현장에서 그의 목소리와 그 아내의 표정을 모두 목격했던 나의 지인이 내가 함께 한 모임 자리에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날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니,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자기 아내를 그렇게 폄훼할 수 있어? “

그녀가 격앙된 이유는 그 남성이 보인 아내에 대한 태도에 존중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그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전한 이야기를 100% 신뢰할 수는 없다. 모든 전해진 이야기 속에는 전하는 사람의 해석과 약간의 왜곡이 섞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기점으로, 그렇다면 과연 ’ 아내 유지비‘란 어떤 영역까지를 포함하는 것인가? 에 대해 짧은 견해들을 나누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지인들은, 아내 유지비에 대해 피부과 시술, 골프 모임을 위한 지출, 명품 구매, 화려한 집안 장식장 등이 해당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의견들을 취합하면 결국, 아내 유지비는 ’ 사치‘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날 그 남성의 발언은 우리가 성급하게 추측한 대로 자신의 아내를 비하하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사치하는 다른 여성들을 비하하기 위한 도구로써 자신의 아내를 은근히 치하했던 것일까?



아내 유지비는 대부분 그녀들의 남편들이 지불하는 것인데 남편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내 유지비는 순전히 아내들의 선택에 달렸다. 보여지는 삶에 가치를 두게 되면 삶의 모습은 대개가 비슷한 모양을 띠게 된다.

남들과 비슷해지려는 노력, 나이 듦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 반짝이는 것들로 치장하려는 허영.

그러한 추구는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서 늘 허기진다.

여성의 허영은 창조 이래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웬만큼 올라왔다고 하는 지금의 세대에도 여전히 기세가 등등한 것은 한편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거라는 사탄의 꼬임에 별다른 저항 없이 선악과를 따 먹은 하와의 원죄는 여성들이 죽는 날까지 떨칠 수 없는 원초적인 허영의 본능이다.


폴 투르니에의 책을 도장 깨기 하듯 한 권씩 읽어내고 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여성, 그대의 사명은]이다.

작자는 그 당시에 불처럼 번지는 페미니즘의 건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여성들의 인격 감각을 치하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여성들은 지난 300년 동안 옆으로 밀려나 있다가, 이제는 남성을 닮으려고 즉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여성이 해 낼 수 있음을 입증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같은 동등성을 확보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할 능력이 있음은 이미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다음 단계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함으로써, 즉 사물에 대해서뿐 아니라 인격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성 특유의 자질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문명에 더욱 인격적인 기여를 하겠다는 결단일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것이 여성의 사명임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그의 호소에 고개 끄덕이며 가슴 뜨거워지고 있던 한 여성으로서, 갑작스럽게 끼어든 ‘아내 유지비’에 대한 고찰은 사고의 괴리를 느끼게 만들었다.

여성으로서 아내로서의 나는 ’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 쪽에 서 있기를 바라본다.

치열하고도 혹독하게 허영과의 싸움에서 부디 승리할 수 있기를!


*’ 제목‘의 배경으로 쓴 일러스트는 ‘문화일보‘ 기사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