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일기 Prequel
마케팅은 필요의 어머니다.
몇 해전 생과일주스 판매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반 커피전문점이나 카페에서 판매를 하는 과일주스들이 상대적으로 고가였고 웰빙 음료 열풍까지 더해져 이를 파고든 저가형 주스 프랜차이즈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최근에는 시들해졌는지 주스 전문점이라고 열었던 가게들이 커피도 팔고 건강차도 판다. 일반 카페들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밀레니엄 세대들이야 과일주스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라면 주스는 아무 때나 먹는 음료가 아니었다. 집안에 아픈 환자라도 있어야 병문안 온 손님들이 사 온 주스를 맛볼 수 있던 게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과실의 즙을 짜서 마시는 행위는 오래되었지만 시중에서 판매를 할 수 있는 대량 생산은 미국의 F.버를리가 순간살균법을 통해 보존성이 좋은 주스를 만들고 제너럴 푸즈가 특허권을 사서 생산하기 시작한 1938년부터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들어왔다고 하니 채 50년이 되지 않았다. 주스 중엔 오렌지 주스가 대표주자인데 한때 광고시장을 점령한 따봉 열풍으로 시장이 성장했지만 이후에 100% 오렌지 과즙 주스는 그냥 농축액이 100%였을 뿐 물과 섞은 혼합음료라는 것이 알려지고 웰빙 열풍에 따라 건강한 음료의 위치를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타고 사람들의 관심을 한순간에 사로잡은 상품이 있었으니 원액기라 불리는 상품이다. 휴롬이라고 하면 더 많이 들어봤을 거 같은데 저속 압축 방식 원액기의 선두주자다. 휴롬의 성공을 보고 갤럭시 같은 미투상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웬만한 집은 이런 원액기를 한대씩은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런데 원액기 이전에는 집에서 주스를 마시지 못했을까? 아니다. 이미 원액기가 나오기 전에 각 가정마다 믹서기라는 것이 있었고 이 믹서기는 주방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효자 상품이었다. 믹서기의 바른 명칭은 믹서(Mixer)인데 사실 믹서는 주스 전용은 아니고 다용도로 사용하는 혼합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집에서는 주로 과일을 갈아먹는 용도나 멸치 같은 마른 제품을 갈고 김치 양념을 만드는 일에 쓰였다. 믹서가 귀한 시절에는 동네 가게에 있는 김치 양념용 믹서를 이용하기 위해 양푼을 들고 심부름하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웬만한 가정엔 믹서라 불리는 혼합기, 도깨비방망이로 유명한 핸드블렌더, 휴롬으로 잘 알려진 원액기 정도는 갖추고 산다. 그럼 믹서는 뭐고 블렌더는 뭐지? 참 원액기가 유행하기 전에 녹즙기라는 게 유행했었는데 녹즙기로는 주스를 만들 수 없나? 갑자기 주방용품 전문 칼럼처럼 되어가는데 다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하나다. 원시 농경시대까지 가면 절구나 맷돌까지 언급해야 하니 각설하고 전기를 이용하게 되면서부터 생긴 믹서부터 그 쓰임새를 보자. 믹서는 이름 그대로 mix+er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믹서로 불리지만 미국에서는 Blender로 영국에서는 liquidizer라 불린다. 믹서는 혼합기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맞지만 우리나라에서 믹서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가는 일의 대부분을 하는 만능 조리기라고 보는 게 맞겠다.
그러면 믹서가 웬만한 일을 다 하고 있는데 원액기, 녹즙기, 주서기 등은 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일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물론 많은 제품들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와 진 게 인간의 역사다. 하지만 공급과잉 시대에는 이 말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세상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총 균 쇠>에 이런 단락이 나온다. 기술 혁신과 발명은 한 사회가 아직 충족되지 못한 어떤 필요을 느낄 때, 즉 어떤 기술이 불만스럽거나 부족하다는 인식이 만연할 때 이뤄지며 발명된 이후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 그리고 상당 시간 사용된 후에야 비로소 소비자들은 그 발명품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 단락이 있는 챕터의 제목은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다. 즉 믹서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필요가 발명을 나은 것이 맞지만 녹즙기, 주서기, 원액기는 필요를 부추겼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사람들은 이를 마케팅이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좋은 제품도 마케팅 없이 생존하기 힘들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믹서로도 충분히 주스를 만들 수 있는데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를 먼저 발명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갈아서 만들면 영양소가 파괴되고 목 넘김이 부드럽지 않은 단점들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소비자 언어로 믹서기와 다른 점이 무엇이고 어떤 편익이 있는지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원액기의 선두주자 휴롬은 배우 이영애를 모델로 하여 광고를 제작하였다. 이영애는 "똑같은 재료 다른 주스. 왜일까? 차이는 갈거나 휴롬으로 짜거나 정말 다르네~~" 한다. 이영애가 말하면 맞겠지^^ 화면 하단에는 네이버에 주스의 진실을 검색해보라고 나온다. 두 가지 색깔이 다른 주스, 가는 것보다 짜는 것이 주스에 본질에 맞다고 고객을 설득하고 있다. 이 광고를 보고 설득당했다면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는 말에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주스의 필요가 아니라 주스인데 다른 주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는 것과 짜는 것 중 진짜 그 효과를 검증받고 마시는 사람이 있을까? 믹서기에 대한 필요는 가는 것에서 갈아서 짜는 것으로 그리고 쥐어짜는 것으로 콘셉트가 바뀌어 온 것이다. 그 콘셉트에 맞게 제품을 설명하는 언어가 바뀌고 이미지를 바꾸면서 고객에게 새겨진 기존의 콘셉트를 벗겨내고 새로운 콘셉트를 파는 것이다.
마케팅에 있어서 콘셉트란 매우 중요하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은 IBM의 사이먼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의 대명사는 바로 애플의 아이폰이다. 그리고 아이폰은 여전히 스마트폰 시대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기본 상품과 대표상품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전화기를 기본 상품이라고 한다면 현재 전화기를 대표하는 상품은 스마트폰이다. 현재 전화기의 대표상품은 스마트폰이다. 그러면 전화기의 다음 대표상품은 무엇일 될까? 점쟁이가 아닌 이상 알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콘셉트의 전화기가 대표상품이 될 날이 올 것이다.
휴롬이라는 원액기를 하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기본 상품과 대표상품의 변화와 제품에 있어 콘셉트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믹서라는 기본 상품이 존재하고 시대가 흐르면서 대표상품은 녹즙기, 핸드블렌더, 원액기 등으로 변해왔다. 물론 지금은 각 영역이 많이 세분화되어서 무엇이 무엇을 대체한다는 의미는 많이 사라졌지만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낼 때 기존의 상품이 해결해 주지 않는 필요를 찾아서 제품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믹서기의 파쇄 방식에서 오는 여러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압즙방식이 생겨났고 압즙 방식도 회전 속도에 따라 더욱 세분화되었다. 즙을 만들어 마시는 행위 하나에서만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다. 휴롬은 믹서기 시장에서 버려진 요소들을 다시 살펴보았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불편한 목 넘김, 갈아먹는 주스의 영양파괴, 믹서의 단점을 보완한 녹즙기가 가진 단점을 바탕으로 원액기라는 새로운 시장과 대표상품을 만들었다. 이는 선점효과(Qwerty효과:특정 제도가 불합리한 면이 있더라도 널리 퍼져 있어 바꾸기 어려운 현상)를 가져왔고 이런 선점효과를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상품개발과 프로모션 등으로 대표상품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항상 필요에 의한 것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과 생활의 변화는 필요 이상의 것들을 만들고 소비하게 만들었고 마케팅은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생존에 필요한 것은 필요를 만들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필요가 발명을 만드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마케팅은 점점 힘든 작업이 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러면 현재의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케터들은 어떤 태도를 준비해야 할까?
첫째, 새로운 필요를 찾아 나서야 한다. 새로운 필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발명만큼 어려운 일일 게다. 하지만 이미 있는 필요를 새롭게 만든다면 그것은 새로운 것과 같을 수도 있다. 넘쳐나는 상품과 서비스 사이에서 새롭게 보이려면 똑같은 상품도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믹서기의 맹점 중에 하나가 과일이나 채소를 갈 때 물이 부족하거나 하면 걸려서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믹서 통에서만 믹싱을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 강력한 모터의 힘을 빌거나 칼날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상품이 칼날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핸드 블렌더였을 게다. 핸드블렌더는 1954년 로저 페링자크가 개발하였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상품이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순 없다. 분명 새로운 필요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새로운 마켓이 될 것은 자명하다.
둘째. 버려진 필요도 다시 보자.
1877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만들었을 때 이 제품의 용도를 제시하는 글을 발표했는데 음악 재생은 상위권에 들지도 못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가 아닌가? 세상의 많은 기술들이 개발된 때보다 항상 뒤늦게 빛을 보게 된다. 물론 상용화라는 것이 리소스의 투입이 많이 들기 때문에 때를 기다린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많은 상품들이 과거에 이미 만들어져 있던 기술이나 필요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최초의 두루마리 화장지는 1879년 영국의 사업가 윌터 올콕이 내놨는데 이 화장지는 사치품이라 여겨지거나 더럽다는 이유로 1891년에 비로소 특허 신청을 했다고 한다. 필요는 때가 필요하다. 때를 잘 찾는 것은 새로운 필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셋째, 존재하는 필요도 리뉴얼을 하자.
미국의 믹서기 회사 블렌텍은 한 광고로 갑자기 일약 스타 회사가 되었다. Will it Blend? 시리즈를 유튜브를 통해 올리면서 그저 그런 믹서기 회사에서 엄청난 성장의 아이콘이 되었다. 2011년 자사의 믹서기로 대리석을 갈면서 700%의 성장을 이룬 회사로 이후 아이폰을 갈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 회사는 핸드블렌더나 원액기로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기본 상품인 믹서의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올린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고성능 믹서기의 대표주자가 된 것이다.
새로운 필요를 만들거나 버려지거나 흘려진 필요를 찾는 것도 좋지만 이미 존재하는 필요를 리뉴얼하는 것도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필요를 찾는 방법 중에 하나인 것이다.
tvN의 간판 프로그램인 삼시 세 끼에서 이서진이 맷돌을 사용해서 커피를 갈고 내려마시는 장면이 있었다. 맷돌은 커피를 내려마시는데 필요한 기능을 다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대표상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맷돌을 여전히 사용하는 집도 있고 비즈니스로 활용하는 식당들도 있다. 이것은 또 다른 필요의 이름이다. 맷돌이 주는 상징성이나 현재에 잘 보이지 않는 맷돌의 주는 의외성 또는 친환경성 등은 과거의 필요에 현재의 필요가 덧써진 것이다. 마케팅이 어려운 이유는 필요를 찾는데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갈아먹는 배라는 상품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직접 갈아먹는 것이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숙취해소 음료로 인기라고 한다. 필요도 세월에 따라 변함을 증명하는 아이템이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필요를 발굴하고 리뉴얼하는 일이 마케팅의 시작이다.
간들 어떠하리, 짠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은 원래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