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일기 Prequel
마케팅은 STP를 버리지 않는다.
달인 김병만의 원조는 생활의 달인이다. 2005년 4월부터 방송을 시작했으니 만 13년을 맞이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방송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장수의 방해물들인 여러 가지 이슈와 문제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방송 중인걸 보면 버리기 아까운 카드인 것이 분명하다. 초창기에는 생활인들이 업을 통해 얻은 노하우나 진기한 기술 등을 주로 소재로 삼았다면 요즘은 먹방 쿡방 트렌드에 따라 맛집에 대한 이야기들이 메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생활의 달인에 나온 집이라면 다음 날부터 그 집 앞 도로는 긴 행렬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니 생활의 달인 영향력은 가히 핵폭탄급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오랫동안 자신만의 레시피로 사랑을 받아온 맛집의 사장님들이 다른 프로그램에는 출연을 고사하다가도 생활의 달인이라고 하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일까?
큰 틀에서 생활의 달인에서 다루는 아이템은 우리 삶 속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옆집 아저씨나 아랫집 할머니일 수 있고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직업을 위해서 쌓아온 세월과 노력이 기반한 아이템들이다. 어떤 라이선스 기반의(물론 자격증들을 가지신 분들도 나오지만 대체적으로 자격증도 없이 스스로의 연구와 노력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삶을 개척하신 분들이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소위 사자라 불리는 전문가들의 영역도 아니고 먼 나라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접근하기 힘든 곳을 찾아가거나 그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을 우러러보거나 부러워하는 아이템들이 더 먹힐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내 삶이 내 생활이 더 중요하고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내 자존감과 일상이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모든 분들이 진정한 전문가이면서도 내 친구이자 가족이자 이웃이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고 관심이 가는 것이다. 즉 생활이라는 부분을 메인 아이템으로 가지고 왔고 그것이 사람들이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임으로 해서 그 생활을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프로의 세계로 만든 절대로 비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바꿀 수 없고 바꿔서도 안 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이 브랜드의 정체성이자 아이템의 기준을 만들었다.
생활의 달인에서 다루는 아이템은 최근 들어 2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맛집으로 대변되는 식(食)에서 Cooking과 Baking이고 나머지는 의(衣)와 주(住)에서 주로 찾는다. 거기에 더해 의식주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삶의 윤활유 같은 취미활동이나 소위 덕질까지를 포함해서 우리 생활 속에서 매일 보거나 듣거나 체험할 수 있는 아이템이 선택된다. 아이템적 영역으로 보면 위와 같고 출연자 영역으로 가면 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많은 식당의 주인들이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식당들이 모두 맛집이거나 달인이 있는 집은 아니다. 이미 생활의 달인은 그 브랜드에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달인이어야 하고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정체성을 부정하는 순간 13년을 이어온 프로그램은 막은 내리게 된다. 그래서 달인이 될만한 사람들만 찾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맛집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많이 소개하고 있지만 진짜 잘하는 집들은 굳이 방송에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지금도 충분히 매출이나 인지도에서 인정받고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방송의 힘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달인이라고 증명해야 하지만 나오지 않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미 주변에서 인정해주는 달인이라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좀 깊이 들여다보면 최근에는 은둔의 재야고수를 찾아다니고 있다. 이들을 찾는 과정을 보면 먼저 취재와 제보를 통해 가야 할 곳을 선정하고 먼저 확인단을 보낸다. 이 맛집을 찾아다니고 인증을 해주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다. 자칭 타칭 4대 문파 또는 호텔이나 유명식당의 주방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달인을 심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게 한다. 이는 맛집 타이틀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이 진정 찾고자 하는 진짜 맛집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던지고 시청자들이 은둔, 재야라는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밑간 작업이다. 낚시로 치면 밑밥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연말에 생활의 달인 중에서도 더욱더 고수를 만들고 타이틀을 준다. 그리고 많은 피나는 노력과 땀이 다 소중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상패도 준다. 이 심사는 권위 있는 이들이게 맡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신뢰를 주고, 받는 이들도 그 희소성에 생활의 달인에는 나가는 것은 주변의 인정뿐 아니라 스스로도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물론 과거에는 유사한 업종끼리 대결을 보이는 과정도 있었으나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오버한 측면이 있어 보이지만 방송은 리얼리티를 원하는 것이지 리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의 여러 장치들을 다른 프로그램이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그 권위를 대신할 수 없다. 왜냐면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맛집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기 위해 업체가 내야 할 돈이 상당하다는 것은 이쪽에 계신 분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출연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섭외한다는 것은 최소한 거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정확한 것은 PD와 작가만 알겠지만...)
마케팅은 STP를 버리지 않았다는 말을 서두에 두었지만 쭉 글을 써내려 오면서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왜냐면 누구나 저 용어를 몰랐어도 이 글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생활의 달인들은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굳이 마케팅의 STP의 개념적 정의를 모른다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STP전략에 따라 달인이 되었고 PD도 그렇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STP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대략 순서대로 정리해서 썼구나하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이는 STP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 누구나 시장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고 환경과 상황이 다르고 이해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은 마케팅 전략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STP에 따라 돌아간다. 어떤 이들은 요즘 누가 촌스럽게 STP를 사용하냐? 혹은 요즘은 취향의 시대, 덕질의 시대이기 때문에 과거의 공식적인 그리고 전형적인 STP가 어울리지 않는다 말하기도 한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는 굳이 용어적 정의를 하지 않다라도 그 정의가 Old Fashioned 하더라도 기저에 깔려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살아가야 할 필드를 나누고 그중에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고 그 속에서 나를 정의한다. 이것이 생활의 달인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방송을 만드는 원리이고 마케팅의 기본원리이자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