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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광 Oct 25. 2018

죽은 마케터의 사회

마케팅일기 -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날씨:추버져

판교에서 4시간의 일을 마치고 가로수길에 위치한 디파지트에 도착했다. 지난주에는 강연자로 이번 주엔 청강자로 들렀다. 오늘의 강연자 스토리젠터 채자영 님의 <진짜 나를 위한 말하기>란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시작 전에 테니지먼트의 장영학 대표님과 채자영 님 그리고 에이블 랩스 윤준탁 대표님과 담소를 나누다 마케팅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마케팅은 죽었다"라고 했더니 니체의 "신은 죽었다"같은 뭔가 있는 거 같다고 몇 마디 나눴다. 직장에서 16년간 마케터로 살고 독립해서 3년째 재야 마케터로/마케팅 잡부로 지내온 내 입에서 스스럼없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이후로 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돌아오는 버스에서 페북을 보다가 이런 문구를 보았다. "이제 마케팅하지 말고 컨셉팅을 하라."-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썼을까라는 반감도 없진 않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 같아 그러려니 생각했다. 2019년 트렌드 코리아 표지에 쓰여 있는 말이었다.

<돼지꿈이라 꿈이 있는 세상인가 싶지만... 출처 : https://miraebookjoa.blog.me/221383379996>

왜 마케팅은 사방에서 공격받는 천덕꾸러기 되었을까? 필립 코틀러 형님이 들으면 참 슬퍼할 이야기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마케팅이 이런 대접을 받을 정도로 이제는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는 것인가? 아니면 내 몸을 희생하여 후생을 살리는 역할을 맡은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저기에서 마케팅이란 단어가 환영받지 않는 건 맞는 거 같다. 이런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1. 파편화 사회

위의 이미지에도 나오지만 사회가 점점 분절되고 파편화되면서 과거 집단적 사고가 행동이 이제는 큰 영향력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장에서 마케팅의 영향력은 커질수록 마케팅의 위상은 약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케팅적 마인드가 비즈니스 전반에 필요한 것이 되었듯이 다른 말로 하면 각 영역에 마케팅이 녹아내리고 이제는 마케팅이란 말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마케팅이란 말은 정의하기도 힘든 키워드가 돼버린 것이 이유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케팅이란 용어가 이제는 올드하고 새로운 힙한 단어들로 대체되거나 아예 올드한 다른 영역에 녹아서 마케팅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어진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마케팅은 너무나 범접하기 어려운 그리고 정의하기 어려운 배울게 너무나 많은 그리고 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키워드로 전락한 게 아닌가 싶다.


2. 영역의 Blurred

기존에도 블러 이코노미란 말을 언급했는데 이제는 산업 간 업태 간 업종간 공급자와 소비자 간 미디어와 공급자와 소비자 간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있다. 2019년 트렌드 코리아에도 언급되었지만 소비자의 세포분열은 매스 마케팅의 종말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고 CPS(Cyber Phsical System) 상에서 공급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방법은 매우 직접적이고 개인화될 것이니 마케팅이란 말이 다른 용어들로 설명이 가능한 환경이 온 것으로 보인다.


3. 공급자의 설계보다 소비자의 경험

마케팅이란 말의 근본적 문제는 공급자가 만든 일정한 패턴이나 영역에서 이뤄진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개개인의 경험이 공급자가 설계한 대로 발산되지는 않는다. 더더욱 개인 간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기존 기업의 마케터들이 일하는 방식으로 계속 소비자에게 푸시하는 마케팅 방법은 점점 매력이 떨어진다. 공급자도 이제는 소비자의 눈으로 소비자의 마음으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의 진정성을 가진 기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마케팅의 위기란 말은 시장 자체가 매우 정의하기 힘들고 급변하는 데다 개인화되어 효율화란 이름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점점 안 먹히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케팅이란 용어는 공급자 중심의 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힘이 약화된 것이라고도 하겠다.

이런 마케팅이란 말이 마법처럼 쓰이기도 하고 시장에서 마케팅의 힘이 통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마케팅이란 용어가 가진 노화를 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어떤 용어가 아직 대체되지는 않고 있고 시장에서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개념적으로 보면 그리고 선구자들이 모여있는 시장에서는 이미 사라진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케팅은 죽었다란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시대에 마케터로 사는 사람들은 그리고 소비자들은 마케팅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과거에는 이 양 사이드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인처럼 한 방향을 보고 미래를 설계하고 살아가야 하는 때로 보인다.


1. 모두가 마케터가 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정보를 제공받고 자극받고 움직이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다.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트렌드를 이끌고 직접 공급자가 되기도 하고 공급자의 판단 미스를 잡아내는 역할을 하는 등 과거 마케터가 하는 일을 같이하고 있다. 정보가 늘어나고 시장에서 주도권은 소비자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마케터도 이제는 과거 마케팅이 하는 일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소비자가 원하는 일을 하는 잡부가 되어야 하고 소비자도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었으니 책임 있는 소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고 영향을 미치도록 어느 사이드에 상관없이 머리를 맡대야 하는 시절이다.


2. 변화가 기회이자 나락인 시대에서 생존하라.

최근 택시나 유치원 사태를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변화를 막을만한 힘이 공급자들에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변화는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공급자는 기존의 문법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너무 잦아지니 전략을 세우거나 소비자에게 어떤 기회 제공을 해야 할지 난감하고 소비자도 공급자의 붕괴나 급격한 변화는 마냥 환영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공급자이고 소비자인 시대, 파편화된 시대이자 한 덩이처럼 연결도 되어있는 이상한 모습을 갖춘 세상인지라 더욱 그렇다.


3. 내가 원하는 것이 공급자가 원하는 것이 된다.

개인의 취향과 영향력에 어울리는 필요와 욕망을 채워주는 먹이사슬이 새로 만들어지는 생태계가 점점 확대되는 거 같다. 과거의 단순한 먹이연쇄의 모습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펼쳐진 판 위에 올려져 있다. 공급자와 소비자는 이제 서로 화살을 주고받는 사이이고 레드썬 해서 일방적으로 공급자가 만든 이미지를 소비하는 모양새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도 이제는 자신이 정확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공급과잉이 선택을 어렵게 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공급자는 무한 성장의 유혹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자꾸 상품이나 서비스에 붙였다가는 이제 선택받지 못한다. 서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제는 소통할 수 있는 여건과 기술이 마련된 시대이니 서로 더 애정으로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나의 역할을 할 테니 너는 너의 역할을 해라라는 산업화 시대 명제는 덩어리가 점점 나뉘면서 작은 단위까지 나와 너의 역할이 동시에 등장하고 피아식별이 힘드니 너나 구분말고 역할을 고민해라로 변하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이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틀리고 바보 같아 보여도 시도해보라고, 자신만의 길을 걸으라고 말이다. 죽은 마케터의 사회에서 마케터는 말한다. 소비자는 마케터라고 모두가 마케터라 마케팅이란 말이 의미가 없다고 마케팅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이제 자연현상이라고 기업이나 비즈니스나 이제는 인위적으로 만들기 힘들고 소비자들의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그들의 경험과 삶의 현장에 어울리는 그들의 삶을 제안하라고 말이다.

오늘은 마케팅 개똥철학으로 마케팅 일기를 휘리릭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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