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마케팅 이론 13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었다. 내가 아는 도배지가 침대가 아니었다.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이런 우라질... 오늘은 출근하는 토요일(주 5일제가 정착하기 전 격주 토요일 근무 시절)이었다. 회사를 Skip 한 것이다. 그런데 가방도 없다. 헉 가방에 집 열쇠가 있는데.. 핸드폰은 어디 있지?
한참 마케터로서 직장인으로서 일을 하던 연차였다. 회식자리도 즐겨야 했고 회사에서 자리도 잡아가고 있었다. 마케팅도 재밌고 고객 분석이니 고객관리 프로그램 개발도 재밌던 때였다. 하지만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
물론 월요일 출근 잘 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들 제자리에서 반겨주었고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물론 가방도 찾고 핸드폰도 찾았다. 요즘처럼 핸드폰을 주으면 팔던 때는 아닌지라 택시기사에게 2만 원을 주고 가방과 핸드폰을 찾았다. 하지만 큰 생채기가 남았다. 우선 과도한 음주와 흡현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혼자남의 체력과 정신력은 점점 쇠약해 갔다. 뭔가 변화가 필요해...
담배를 끊었다. 13년간 피웠던 담배를... 술을 줄였다. 직장인이니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회식자리를 피하진 않았지만 나를 컨트롤할 수 없을 만큼 마시는 것을 자제했다.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육체적 변화와 정신적 변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물론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나오던 가래와 두통이 사라졌다. 술을 줄이니 일하는 동안 맑은 정신이 유지되었다. 어느 시점이 되자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게 되었다. 다만 침대 시트를 변색시킨 니코틴이 빠지는 데는 5년 이상이 걸린 듯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좀 더 예민해졌다. 까칠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마케터로서의 촉이 더 살아났다고 할까? 묵직하던 머리로 고민하던 때보다 훨씬 집중력도 좋아지고 지구력도 좋아졌다. 마케터로서 살아갈 세상을 고민하면서 마케터가 가져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 시점의 시작이 바로 이때였다.
마케터가 가져야 할 덕목
1. Ready to Change
세상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자연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하지만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최고의 덕목인 사랑도 변하는데 뭔들 변하지 않을 것인가 싶다. 마케터에게 가장 큰 덕목은 변화에 대한 자세다. 마케팅은 세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할 경영학 분야이다. 다른 인사 재무 회계 등등 많은 것이 변해도 기본이 잘 변하지 않는 분야에 비해 마케팅은 세상의 변화에 기본이 송두리째 바뀌는 분야이다. 마케팅의 4P 뭐 불변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변수와 요소들이 등장하고 4P는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분야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고 일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주관이 뚜렷하고 취향도 변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케팅보다 다른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낫다. 조변석개하는 곳이 마케팅 필드다. 어제는 정답 같던 프로세스들이 하루아침에 구식이 되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한다. 기술의 발달과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곧바로 받는 곳이 바로 마케팅인 것이다.
어쩌면 모든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나 모두가 이런 덕목을 가져야 하겠지만 마케터는 스스로 변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마케터가 스스로 트렌드 세터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트렌드 와처가 되어야 한다. 유행은 트렌드와 다른 것이다. 유행은 우연적이어서 전망하기 어렵지만 트렌드는 필연적이어서 전망이 가능하다. 마케터는 미래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미래를 읽기 위해 변화에 민감하고 변화에 능동적이어야 한다.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변화에 편승하는 기업들은 많이 사려져 갔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거기엔 트렌드를 읽지 못한 마케터들의 탓이 크다. 물론 의사결정권자들의 책임이 더 크겠지만.
2. Be Sensitive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예민함이다. 회사가 우량하냐를 떠나 이제는 예민하냐 둔감하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정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로 둔감했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다. 쥐가 꼬리를 갉아먹는데도 그를 아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는 대형 기업들이 내부의 문제를 모른다는 예시에 이용되기도 하고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다는 류의 얘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변화하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해 망해간 글로벌 회사들이 부지기수다. 짐 콜린스가 위대한 기업으로 꼽았던 기업들 중에 10년 만에 사라진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S&P 500대 기업의 존속 기간이 1950년대의 50년에서 10년 미만으로 축소되고 있단다. 까칠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예민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예민함이 사라지면 자만해진다. 예민함은 자만함으로 가는 길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까다롭다고 평가하기 쉽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것은 바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조변석개가 아닌 초변초개하는 시대를 살아가려면 예민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예민한 기업들이 살아남는 시대다.
3. Have an Open mind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열린 자세라는 것은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스스로 방어하려는 기제가 있다. 방어하려는 마음은 곧 닫힌 자세를 자연스럽게 만든다. 오픈마인드를 가진다는 것은 내 것에 대한 자부심도 일부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마케터에게 자신의 것이란 없다. 특허를 가지는 것도 아니고 마케터는 시간과 돈과 사람으로 일 하는 사람이다. 기술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다. 사실에 입각하여 실험에 의해 성과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자신의 것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픈 마인드는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수집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오픈 마인드는 계속 재생산을 하는 공장과도 같다.
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마케팅이다. 콜라보레이션을 가능케 하고 이슈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문 앞으로 기회가 계속 지나가는데 그 기회를 잡으려면 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4. Sense of Reality
눈 오는 날 영화 러브 스토리가 생각난다면 이상적인 사람이고 밀리는 도로가 생각난다면 현실적이다. 마케터는 이상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현실감각이 떨어져서는 안된다. 이상적인 소비자를 현실세계로 끌어들여주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케터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소비자와 함께 꿈꾸기만 할 수는 없다. 마케터는 시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자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결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어떤 비용이 어떤 손익을 가져오는지도 알아야 진정한 마케터가 되는 것이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단정 짓는 것은 나는 꿈꿀 테니 너희는 나가서 물건을 팔라고 하는 것과 같다. 꿈만 꾼다고 물건이 팔리고 서비스가 팔리지 않는다. 문을 열어 변화와 기회를 받아들인다 해도 현실화시키는 작업은 결국 현실의 문제다. 가장 이상에 가깝게 현실화하는 것은 결국 현실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케터의 자질은 이외에도 도전정신이나 창조적 아이디어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 모두 손에 만져지지 않는 것들이다. 손에 만져지지 않다 보면 똥볼 차는 소리만 할 수도 있다. 현실도 모르고 똥볼 차는 소리 하는 마케터는 몽상가일 뿐이다.
내부적인 힘으로 변화를 실행할 수 있다면 가장 베스트 케이스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외부의 힘을 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변화를 위해선 계기가 필요한데 그 계기는 스스로 만들 수도 있고 외부적 환경변화에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다만 마케터의 자질을 키우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순간 나타나지만 변화를 유지하는 역할은 프로세스의 정립니다. 마케터도 엔지니어나 과학자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공식도 만들고 프로세스도 만들어 실험해보고 결과를 감정해봐야 한다. 마케터는 머리로 꿈꾸고 다리로 실행해야 하는 피곤한 직업이다. 어느 회사나 마케팅팀이 늦게 퇴근하는 부서중 하나일 게다. 마케터가 되려면 피곤함을 에너지로 바꾸는 컨버터도 필요하다. 피곤함을 피곤함으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리프레쉬할 수 있는 스스로의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자극적인 것보다는 담백한 것을 선호해야 한다. 담백해야 다른 것들의 맛을 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절제가 필요한 일이 마케터의 일이다. 힘든 일이나 또한 매력적인 일이다. 이런 매력적인 일을 하기 위한 마케터의 자질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