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에 꼬박꼬박 감성적인 글을 올리던 시절에(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진다.)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정해진 내 자리가 있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처음부터 정해진 내 자리라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여러 글들 중에 나는 저 글에 대해서만은 지금도 동의한다. 우리는 실은 정해진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지 않나. 차라리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망망대해를 건너는 중에 가깝지 않나.
살면서 두 세 번쯤 길을 잃어봤다. 어떤 길잃음은 반항에 가까웠고 어떤 길잃음은 괴로움의 몸부림이었고, 어떤 길잃음은 끝내 포기 하지 않기 위한 절박함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경험이었다. 내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놓치고, 때론 놓아버리고 나니 나는 고독했고, 전혀 새로운 아픔을 마주해야 했고, 때로는 절망해야 했다. 길잃음은 지독한 외로움을, 고독을, 고통을, 아픔을 주었고 그 모든 것들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내 삶에 들어와버렸다. 그 모든 길잃음 혹은 방황 혹은 자유는 나에게 이전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했다. 그건 안전함이나 따뜻함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쉽게 길을 좀 잃어도 괜찮다는 섣부른 낙관론은 말하지 않겠다. 길잃음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경험이면서 동시에 나를 모두 뒤바꿔버리는 일이니까. 그러니 <길 잃기 안내서>라는 제목은 꽤 마음에 든다. 길 잃기가 자의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길을 잃어버린 것이면서 동시에 길을 잃겠다는 마음이라고.
이케아 가구를 사서 조립해본 적이 있다면 내가 설명하려는 이 기분을 알거다. 완제품의 모양을 분명히 알고, 내 손에는 설명서까지 있는데도 막상 조립하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듯 조급하고 막막하다. 이 낱낱의 조각들이 도대체 제 모양을 찾아갈까 의심스럽고 a부터 z까지 순서를 매긴 볼트와 너트, 지지대와 상판을 따져보다 화가 치민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새로 접어든 길에서 지도를 꺼내든 기분도 그렇다. 요즘은 똑똑한 구글맵이 내가 가야할 노선을 조건에 맞춰서까지 안내해주는 형편이지만, 나는 왠지 정확하고 빈틈없는 길 안내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렇게 가면 정말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내려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안내에 충실히 따라왔는데도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하기도 한다. 난 대체 그 지도를 보며 어떻게 길을 찾는지 모르겠다. 화면 속 화살표는 내가 정한 목적지를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확신이 없다.
쓰다보니 어쩌면 나는 타고 나길 '정답' 같은 말을 의심하도록 돼 있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아무 의심 없이 설명서에 안내된 순서를 따르고,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좌회전, 우회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에 너트를 조이라고? 왜 하필 왼쪽부터?' '내 느낌엔 저 길이 더 좋아보이는데?' 하면서 쉴 새 없이 다른 쪽을 쳐다보는 그런 유형의 인간. 초등학교 때 내 학업 통지서에는 늘 이 말이 따라다녔다. "학업 성취가 높으나 다소 산만함" 참 골치 아픈 스타일이다.
그녀의 글은 이런 순간에 나타난 조력자 같다. 그런데 이 조력자도 좀 이상하다. 가구 조립을 도와주면 좋겠는데, 여러 가지 길 중에 이 길이 맞다고 알려주면 좋겠는데 빙글빙글 웃으며 우선 자기와 이야기를 좀 하자고 손을 내민다. 처음에는 '뭐야 대체' 하는 심정이지만, 나는 곧 그녀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되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그녀가 안내하는 골목골목을 두려움도 없이 걷게 된다. 여전히 방향을 잃은 채 널부러져 있는 조립식 가구의 부품들을 그대로 둔 채로 '참 쉽지? 거봐 넌 잘 할거라고 했잖아. 들어봐, 나는 말야.' 하면서 이어지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어느새 가구 조립은 잊고, 가구 조립 따위야 아무렴 어때 하면서 차를 끓이고 간식 거리를 내놓고 있다.
그렇게 글을 다 읽고 나면 비로소 나는 가구 조립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든, 걱정하지 말자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역시나 '정답'이 아니라 그저 삶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음을 깨닫는다. "지도나 설명서 같은 건 안봐도 되. 본다고 꼭 그 길로만 가라는 법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 무엇이 되든 나를 잃지만 않으면 어떤 도착도 괜찮다는 그런 마음. 그건 대충 포기해도 된다는 무사안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수많은 갈래길이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라는 든든함, 오늘 나사못 하나밖에는 박지 못해도 내가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뿌듯함 같은 것이다.
그녀의 다정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내가 다다른 도착지가 화살표가 가리키던 곳이 아니어도, 이케아 가구의 모양이 어설퍼도 끝내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끝내 나는 나를 사랑해내고야 말거라는 걸. 그리고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길을 잃은듯 보이는 이 여정을 끝내 걸어갈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