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이 담긴다. 어떤 이는 차분하고 어떤 이는 냉철하고 어떤 이는 설명적이고 어떤 이는 직관적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고, 좋고 나쁨도 아닌 그 다양함을 구경하는 일이 즐겁다. e-book이 등장하고, 오디오북마저 등장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팔리고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나같은)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누군가는 종이 위에 인쇄된 활자로 읽어야만 그 사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다.
나는 특히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좋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에게는 날선 비판보다는 부드러운 설명이 훨씬 더 묵직하게 와 닿는다. 비판은 때로는 가장 간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뭉뚱그리는 것은 별로다. 분명한 사실조차도 외면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작가는 책에 실린 어떤 사례에서도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비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나면 모든 게 비로소 제자리에 놓였다는 안도감을 준다. 두루 살피고 챙겨서 제자리에 가져다 둔 느낌.
가령 세월호 사건을 두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선장과 생존자 소년의 말을 들려주는 대목같은 것.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분하다는 것이었다. 자기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자기 입장이라면 당신도 똑같았으리라는 것, 그러니 이해해달라는 것, 그러지 않아주니 답답하고 분하다는 것. 이건 충분히 가능한 마음이리라. 어른들이 이런 가능한 마음을 꼭 붙들고 있는 동안, 그 소년은 어떤 꿈을 꿨다. (. . .) 가능한 마음들이 저마다 자기부터 이해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이런 세상에서, 소년은 그런 불가능한 꿈을 꿨다."
나는 언젠가부터 액션, 스릴러, 범죄 영화는 잘 보지 못한다. 이유는 하나인데, 내 기준에서는 폭력성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15세 관람가 영화에서도 (도구만 없을 뿐) 빈번하게 폭력이 등장하고, 19세 이상 관람가의 경우 칼, 망치, 톱, 도끼가 예사로 등장한다. 슬래셔 무비도 아닌데 인간의 신체를 훼손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너무 자주, 너무 여과없이 연출된다. (영화를 다 보지 못했으므로) 그게 영화의 흐름상 꼭 필요한 장면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그 많은 폭력이 '꼭' 필요할까. 폭력이 극에 필요한 '장치'가 아니라 극의 '장르'가 돼버린 느낌.
이런 피로감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범죄 현장은 낱낱이 재구성되고, 굳이 상세히 묘사할 필요가 없는 범죄 방식이나 피해자의 상황까지도 거리낌없이 방송한다. CCTV 화면에 찍힌 범죄자의 모습을 얄궂은 모자이크에 기대 여과 없이,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굳이 알권리를 존중한다는데, 나는 차라리 '(그것까지는) 모르고 싶은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시대에 살다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서 끝내는 무감각해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러울 정도다.
저자가 묻고 있는 것처럼 이런 현실에서 글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범죄의 현장을 선정적으로 재구성하지 않고도 일상과 인간성의 가치를 노래하는 것, 필요한 곳에 제대로된 서사를 부여하는 것, 4월의 차가운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소년이 꿈꾸었던 것처럼,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맘껏 꿈꾸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책은 단연코 이 세상의 잔인함을 닦아내줄 아주 강력하고, 부드러운 치유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