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희 Dec 31. 2022

내 맘대로 뽑은, 2022 올해의 책


지은이: 대니 샤피로

옮긴이: 한유주

제목: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출판사: 마티

"계속 쓸 수 없는 이유를 찾고 있다면, 여기, 계속 써야하는 이유가 있다고."


지난 20여년 동안 나 자신에 대해 배우려고 노력한 결과,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상태가 좋을 리 없다는 건 안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면 주변 세계가 서서히 빛을 잃는다. 감각이 무뎌지고, 남편을 퉁명스럽게 대하고, 아이들에게 성질을 내고, 창밖으로 불타는 단풍나무나 현관진입로를 건너가는 거위 가족에 주목하는 대신 집에서 사소하게 잘못된 부분들(천장에 금이 갔다거나, 계단 벽을 따라 얼룩이 졌다거나)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글을 쓰지 않는 나의 심장은 무겁게 가라앉아 굳어진다. (27쪽)

냉정하고 고독한 삶에서, 모욕과 수모를 견디고 끝날 줄 모르는 고통스러운 거절을 겪으며 오래 인내하는 능력이다. 견디는 능력이 없다면 재능이나 갈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견디는 능력이란 재능이나 갈망과는 다른 자질이고, 이 능력이 없다면 아마도 작가로서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50쪽)



지은이: 정용준

제목: 내가 말하고 있잖아

출판사: 민음사

"경찰서 장면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한 번쯤 경찰서에서 만날 파티원을 모집중. . (그만하자)"


그 밤. 나는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올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았고 잠들고 싶지도 않았다. 책상에 앉아 스탠드 불빛 아래 노트를 펴고 하얀 종이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일. 사람들. 표정들. 오고 가던 말들과 사실과 진술. 거짓도 아니고 사실도 아닌, 어떤 진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선인장 화분을 손에 들었을 때의 할머니, 메마른 우물 같던 텅 빈 눈동자에 차오르던 까만 물과 날카롭게 반짝이던 빛. 그걸 표현할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한숨을 내쉬며 할머니 대신 경찰 앞에 앉은 원장. 왜 당신이 이걸 작성하냐는 물음에 제가 아들입니다, 라고 답한 원장. 그후로 한마디 말도 없이 웅크리고 앉아 꼼꼼히 빈 칸을 채워 가던, 할머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 예쁘고 착한 아들. 큰 몸을 둥글게 굽혀 경찰의 말에 답하고 설명하던 어둡고 쓸쓸하던 원장의 얼굴. 내 손을 움켜쥐고 집까지 단 한 번도 놓지 않던 엄마의 손. 그 손 끝에서 내 손으로 계속 전해지던 울컥울컥 떨림. 모두. 전부. 종이에 모두 옮겨 놓고 싶었다. 아들, 잘 지내지? 툭툭 등을 두드려 주고 사라졌던 이모와 처음으로 진짜 소설가처럼 느껴졌던 피츠. 호주머니에 베지밀 두 개를 깊숙하게 찔러 주던 자존감 아저씨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하나도 잊지 않을 거다. 어떤 기억도 희미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때문에 써야 했다. 기록해야 했다. (143~144쪽)



지은이: 캐시 박 홍

옮긴이: 노시내

제목: 마이너 필링스

출판사: 마티

"언젠가 한 번쯤은 소외되었던, 어쩌면 여전히 조금은 소외되고 있을 우리 모두를 위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 감사하다고 말하자 그가 내게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시를 읽어주기를 바랐습니다." 엄격한 말투였다. "치유하려면 시가 필요해요."

"저는 아직 치유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을 존중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에서 떠났다. (52쪽)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을 자극하는 고통은 일단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면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본다.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 덜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 한 번 입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 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 부정은 항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주지만, 그건 국소적 요법에 불과하다. 겪은 일이 꿈에 나오거나 다른 더 치명적이고 만성적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213쪽)


지은이: 이성복

제목: 불화하는 말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이 책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사실 이 책 전체를 옮겨야 하는데. . 이놈의 귀차니즘이. . (먼 눈)"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진실도, 거룩함도 다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세요.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데서 찾아보세요.

난간 끝으로, 뜨거운 물속으로 자기를 밀어 넣어야 해요. (21쪽)


언어는 삶 이상으로 고결할 수 없고, 삶 이하로 추악할 수도 없어요.


언어는 밥이며 똥이에요.

예쁜 척하지 마세요.

호들갑스러운 것은 아름답지 않아요.


                                                                                          바깥은 말장난처럼 하되 속은 쓰러야 해요.

                                                                                          나긋나긋한 말 속에 쓰라림을 숨기세요. (97쪽)


지은이: 비비언 고닉

옮긴이: 노지양

제목: 사나운 애착

출판사: 글항아리

"나의 엄마와 나의 이모들, 나의 친구들과 나의 뒤에 올 모든 여자들에게, 그리고 결국 나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


사회적 자아라는 외피와 남들이 모르는 자기 자신이라는 본질 사이에 넉넉한 공간이 있었던 엄마는, 그 안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상냥하면서도 냉소적이었고 예민하면서도 대범했으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서도 꼬장꼬장했고, 가끔씩 스스로 정이 넘쳐서라고 생각하는 거칠고 심술맞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사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약해지는 마음, 그것을 다잡을 때 짐짓 내보이는 모습이었다. (18~19쪽)

그 안의 공간이란 뭘까. 내 이마 한복판에서 시작돼 가랑이에서 끝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내 몸만큼 넓기도 하고 화살구멍만큼 좁아지기도 한다. 생각이 자유롭게 흐르는 날이면,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할수록 명확해지는 날이면 감사하게도 이 공간은 무한히, 아름다운 날씨처럼 확장된다. 그러나 불안과 자기연민이 치고들어오는 날이면 쪼그라든다. 얼마나 삽시간에 쪼그라드는지! 이 공간이 넓어져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나는 그 안의 공기를 맛보고 또 느낀다.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호흡한다. 마음은 평화롭고 기대감에 차서 사는 게 즐겁고 어떤 영향력이나 위협에서도 놓여난다. 그 어떤 것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지니. 나는 안전하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생각과의 전쟁에서 지면 경계선은 좁아지고 공기는 오염되고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사방이 수증기와 안개뿐이다.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159쪽)


지은이: 리베카 솔닛

옮긴이: 김명남

제목: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출판사: 창비

"전설이 나의 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녀 곁에 앉을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너무 어려워서 못 앉아봄. . "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행복한 가정 출신인지라 어른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할 일이 별로 없는 듯했다. 그런 이들은 그냥 배운 대로 살아간다. 말하자면 그들은 나무에 가까이 떨어진 도토리들이다. 그들이 걷는 길에는 갈림길이 없다. 길을 아예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출발하기도 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나는 그들의 그 확실성에 따르는 안락이 부러웠지만, 나이가 들고서는 스스로 발명하고 탐구할 필요가 적은 삶에 대한 감정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스스로 서는 데에는 진정한 자유가 있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데에는 일종의 평화가 있었다. (27쪽)

우리가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역경에서 살아남았거나 장벽을 부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을 근거로 역경이나 장벽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혹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다른 곳에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야 하고, 그래서 지치고 불안해진다. 나는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논픽션을 쓰고 책으로 펴내는 과정을 통해서 내게 진실과 정의를 가려보는 능력과 신뢰성이 있다는 점을 믿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이제 가끔은 나 자신을, 혹은 남들을 옹호하고 나설 수 있게 되었다. (218쪽)


지은이: 게일 콜드웰

옮긴이: 이윤정

제목: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

출판사: 김영사

"모두가 안다고 믿었지만 실은 누구도 잘 알지 못했던, 주인공이 짜잔하고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감춰진 시간에 대해,"


거친 것과 강한 건 물론 다르다. 이따금 병원 복도에서, 무덤가에서 혹은 응급상황에서 거친 기질은 강한 것처럼 보이기 쉽다.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며, 그때는 당신이 강한지 강하지 않은지가 전혀 중요치 않다. 삶이 하수구로 빠져든다고 느낄 때, 밑바닥의 외로움이 다른 모든 것을 잠식해 버릴 때. 그럴 때는 동물적 본능이 차고 나와 우리 대부분은 빛을 향해 기어간다. 모든 군인은 경험상 잘 안다. 아마 모든 포유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그걸 용기라고 부르면서도, 정작 신체는 그 용기를 인지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해서 앞으로 기어갈 뿐이다. (139쪽)

기적을 너무 믿지 않는다. 기적은 현란하지만 실증적 근거는 희박해 불빛을 오래 지속하지 않으니까. 대신 나는 느린 경로를 택할 것이다. 하루에 사과를 한 개씩 먹으며 다리 들어 올리기를 천 번 해낼 것이다. 당신은 하늘을 가르는 천둥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천둥에 동반하는 빛의 쇼를 보게 된다. 그렇게 당신은 광채의 증인이 되고, 기다리며 지켜보는 법을 알게 된다. (241쪽)


지은이: 앤 보이어

옮긴이: 양미래

제목: 언다잉

출판사: 플레이타임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살아 있음'이 아니라 '(아직) 죽지 않았음'의 상태로 존재하는 게 아닐지. ."


아픔에 관한 모든 것은 먼저 우리 몸 안에 새겨지며, 때로는 나중에 공책에 적히기도 한다. 암에 에로틱한 요소들이 허용되는 경우는 드물고 또 이 글이 소설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왕이면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사랑 또는 사랑이 불러일으킨 실망에 관한 글을 써 보려 한다. 치료가 시작되면 그 즉시 내 에로틱한 갈망은 보조 기구로 향한다. 휠체어와 그걸 밀어 주는 누군가, 환자용 좌변기와 그걸 비워 주는 누군가로. 그다음에 내 갈망은 몸을 움직여야 할 때마다 '움직이는' 행동에 대해 한 시간 동안 숙고하는 행위로 향한다. 이는 움직인다는 사건을 머릿속에서 시연해보면서 움직여야 할 각 신체 부위를 다른 부위들과의 관계를 감안해 준비시킨 다음,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보고 나서야 이 모든 마음의 준비가 움직이는 일의 고단함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57~58쪽)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자. 고통의 형언 불가능성을 말하는 목소리를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며, 고통이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대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진짜 기분을 표현할 언어를 공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236쪽)

소진된 자들은 본인이 원치 않을 때도 늘 안간힘을 쓰고, 안간힘을 안간힘이라고 부르거나 안간힘에 대해 생각할수조차 없을 만큼 소진된 상태여도 늘 안간힘을 쓴다. 소진된 자들의 안간힘은 애초에 그들을 쉼 없이 가동하도록 만든 기계에 공급하는 연료다. 꼭 행복해야만 삶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64쪽)


지은이: 최승자

제목: 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 일기

출판사: 난다

"일 년 내내 편애중입니다. 저는 여전히 이 책에 가장 좋아요."


원로 여성 시인이 무슨 상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추천을 위해서 김혜순과 내 시집을 어렵사리 구해 읽었는데, 김혜순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이놈 저놈 소리가 나오고 최승자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웬 배설물(그 시인은 차마 똥이라는 말도 발음하지 못하고 배설물이라는 단어로 대치했다) 타령이 나오는가, 그래서 자기 낯이 뜨거워져서 추천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나누면서 김혜순과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더랬다. (39쪽)

내 원고 읽기가 끝나고 질문과 대답 시간에 클라크가 내게 특별히 무엇을 위해서, 무슨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쓰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쓰지 않는다. 내가 쓴 것이 무슨 '이즘'이나 무슨 이데올로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이즘이나 이데올로기라면 내 시를 이용하는 것은 양해할 수 있지만 내게 무슨 이즘이나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쓰라고 한다면 나는 쓰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73쪽)

뭐냐하면, 그렇다면 그 여성 체험이라는 것은(이것은 나로서도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온 것이니까,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만 얽어매어야 하나의 사회적 의미로 환산되어 나오는 거냐,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는 얽어맬 수 없는 거냐, 페미니즘은 언제나 한 가지 시선만 갖고 있느냐 등등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내 스피킹 실력으로는 더듬거리다나 망신만 당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223쪽)

그 구절은 이렇다. "Lonely rivers going to the sea give themselves to many brooks" 이건 내가 슬며시 외로운 생각이 들때마다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되살려보곤 하는 구절이다. "바다로 가는 외로운 강물은 많은 여울에게 저를 내준다." (49쪽)




덧. 새해에도 글쓰기는 계속될테지만, 이곳에 연재를 하게 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우리 글을 통해 만나요! 한해동안 감사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끝을 기억해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