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2년 하반기는 아주 바빴다. 9월부터 ‘목요일의 독후감’ 연재를 잠시 쉬어가기로 한 것을 듣기라도 한 건지, 그동안 미해결 상태로 어중간하게 유지되던 많은 일들이 종료의 상태로 이행하겠다며 들이닥쳤다. (미해결 상태일 때는 ‘해결’의 상태가 있다고 믿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자 그저 어떤 상태의 종료일 뿐 뭔가가 해결되는 건 아님을 알았다) 분명 기다렸던 상황이지만, 막상 그렇게 종료의 상태로 옮겨가는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며 드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란 ‘힘든 일’이나 ‘불편한 상황’에도 기댄다는 걸 배웠다. 단순히 이 일이 아직도 이 모양이라서 내가 뭔가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복잡하게는 그 안 좋은 일에도 조금은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해결되지 않은 어떤 일들에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핑계 대고, 그 부정적인 감정들이 맘껏 활개 칠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고. 그래서 막상 그 상황이 종료되려 하자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갈 곳을 잃어 황망해했다. 좋은 핑계가 사라졌으니 이제 그 감정들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가여운 녀석들. 그렇게 지난 하반기는 상황은 정리되고, 반대로 정리되지 못해 황망해하는 감정들은 방황하는 시간이었다. 그 감정들도 존재 이유가 있으니 어디든 조용히 살아갈 곳을 마련해줘야 했고, 그럴싸한 핑계에 기대 조금은 안일하게 두었던 그것들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 줘야 했다.
2. 그렇게 바쁜 나날들이 모두 지나고 며칠 늘어지게 쉬고 놀며 생각한 것이 있다. 내가 경계하고 싶은 것은 단지 삶에 너무나 강박적인 태도로 임하느라 전혀 쉬지 못하는 것, 또는 중요한 생각에서 도망치기 위해 지나치게 바쁘게 사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반대로 나는 좀 쉬어야 해, 나에게는 쉴 권리가 있어, 라는 생각에 빠져서 쉰다는 것 자체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별로라는 것. 쉰다는 상태에 대해서, 그러니까 어떻게, 얼마나, 언제까지 쉴지 역시 내가 깨어 있는 상태로 경험하고 선택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충분히 쉬고 싶고, 동시에 충분히 나의 시간을 쓰기를 원한다는 것. 31일과 1일을 그럭저럭 흘려보낸 후 나는 늘 그렇듯 아침 일찍 눈을 떴고, 책상 앞에 앉아 이 짤막한 글을 쓰고 있다. 더 쉬어야 한다는 것도, 쉬는 것이 두렵다는 것도, 모두 마음의 장난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달라 보이는 그 마음들은 어쩌면 한 쌍일지도 모르지. 마음은 언제나 극단으로 달려가고 싶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