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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an 20. 2021

아직은 사랑이 아닌, 사랑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이 오래 마음에 남아서, 이 커다란 이야기에 각주를 달듯이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평소라면 인용하는 글을 간단히 요약해서 싣겠지만, 이 문장들은 자칫 잘못 요약하면 그 미묘한 내용이 곡해되거나, 중요한 부분이 누락될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전문을 싣게 되었다.)


"또 하나 제가 나무에게서 배운 것은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기주의란 말에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이기주의자가 문제지, 철저한 이기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기주의와 다릅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자에게 이기와 이타는 아예 분리가 안 됩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을 완성해야 남에게 어떤 역할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가 우리보고 와서 쉬라고 그늘을 만들었을까요? 우리보고 와서 감탄하라고 단풍이 들까요? 자기를 위해서 충분히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나무의 이기주의입니다. 그렇게 치열할 때만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내가 널 위해서 그랬다. 이렇게 말할 것도 없고 치열하게 살지도 않으면서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품어선 안 됩니다." (정혜윤, <여행, 혹은 여행처럼>, 난다, 162쪽, 강판권 교수의 말 중)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말을 두고 우선 '나'를 '완벽하게' 사랑해야, 그제서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우기기도 하는데, 그런 류의 완벽함이라면 아마 영원히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얼굴을 하고 나 조차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려 애써봤다면 알 것이다. 그건 단지 나에 대한 한정된 사랑만이 커지는 경험이 아니다. 내가 뭔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계속 늘어나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사랑앞에서 나와 타인을 엄격하게 가르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정말로 '무지무지 끝까지 애써'본 게 맞는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늘어난 것이 맞는가.


"인간 홀로 유별나게 가혹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 그루 나무와 비슷하게 기적과 우연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중단 없이, 무심한 자연의 섭리 아래서 걷고 있는 것이다. 나무의 기다림을 잘 관찰한다면 우리는 그 기다림이 반드시 노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시인들은 나무가 꽃 한 송이 피우는 데 들이는 그 노력의 반만이라도 인간이 한다면 개개인의 운명이 얼마나 달라질지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다림 속에 행하는 나무들의 노력은 결코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은 아니다. 바나나 껍질이 그렇게 생긴 것은 우리 인간이 벗겨 먹기 편하도록 식물이 배려한 것이 아니란 식물학자의 말을 굳이 예로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식물의 이런 노력의 결과물들이 우리를 황홀하게 한다. 강판권 교수가 나무를 이기적이라고 할 때의 그 '이기적'은 나무의 꿈을 완성시키는 방향이 자연계의 상호 이익 속에 놓여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멍청한 벌이 꿀 없이 공짜로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발라주겠는가? 그러니 그가 이기성을 들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섣불리 남을 위하는 듯한 가식이나 기만, 허위의식에 대한 경고이자 한 존재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충실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존재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생존과 종족 보존의 이기성 앞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무지무지 끝까지 애써보지도 않고 대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책, 164쪽)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무를 가리켜 '이기적'이라고 말할 때의 그 '이기적'은 나무의 꿈을 완성시키는 방향이 자연계의 상호 이익 속에 놓여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 내가 발딛고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일이라니. 나는 나를 사랑하므로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사랑'에 가까운 삶이 되는 셈이다.


자연스러운 연결이야말로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그 연결 안에서는 나를 추구하는 것이 곧 온 우주를 함께 자라나게 한다. 그 연결 대신에 가식이나 기만, 허위의식을 내세우며 무섭게 사는 것은 인간 만이 저지르는 과오가 아닌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순간, 이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이 아름다워진다. 그러니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는데도 세상이 조금도 아름다워지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좀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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