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면 우리 동네 역주변에 있던 ‘뉴욕 제과‘가 떠오른다.
나는 그때 수능을 마치고 2학기 수시(수시+수능 전형)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시간이 참 많은 때였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빵집에 알바 공고가 났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출근할 때 쯤이면 식빵까지 거의 모든 빵이 나와 있었고, 아직 김이 나는 빵을 식혀서 포장을 돕거나 진열을 도왔다. 그러고나면 파티쉐 분은 퇴근. 주인 부부도 주말이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러 퇴근. 나는 그때부터 저녁 9시까지 매장을 지키면 되었다.
작은 제과점은 내가 바쁠 만큼 손님도 일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언제든 빵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허락도 받아둔 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터라기보다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곤란한 일도 생기곤 했다. 초저녁부터 술에 취한 아저씨가 와서 자꾸 계산을 안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그러면 얼른 바로 옆 가게로 뛰어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어쩐지 과거에 주먹 깨나 휘두르다가 이제는 다 접고 마음 잡고 살고 계신 듯한 인상의 정육점 주인 아저씨가 등장하면 상황은 쉽게 정리됐다. 주정뱅이 아저씨는 갑자기 술이 깬듯 백원 단위까지 정확히 돈을 지불하고 갔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날. 싱글벙글한 내 얼굴을 보고 주인 부부도 파티쉐 아저씨도 합격을 확신했다. 파티쉐 아저씨는 좋아하는 케익을 말해보라고 했고 나는 모카크림 케익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퇴근 전에 나를 위한 케익을 따로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신촌에 가서 술만 마셔봤지, 그 동네 학교 다니는 사람은 처음 본다. 축하해.” 아저씨는 다리를 약간 저는 분이었는데, 그날은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와 달리 주방과 매장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그 발걸음이 케익보다 더 고마웠다.
9시가 되고 마감하러 온 주인 아저씨는 평소보다 더 큰 봉지에 빵을 바리바리 담아주었다. 아저씨는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는데, 축하한다는 말은 들릴듯 말듯 해도 자꾸 집어드는 빵이 그 말을 대신했다. 덕분에 케익 상자와 빵 봉지를 들고 오느라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던 나의 첫 사회 생활. 노란 조명아래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