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 Mar 20. 2016

겨울은 갔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나무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에 의해 상처를 입었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무는 조금씩 메말라갔고, 잎사귀가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가 되었다. 추운 겨울이 다가와 나무는 몸을 떨었지만, 곧 봄이 오면 따뜻해질 거라고 믿으며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죽은 가지에 봄이 올 리 없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새하얀 눈과 살을 베는 듯한 추위는 어느 새 동장군과 함께 물러났고, 대신 따듯한 햇살과 선선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찾아왔다. 거리의 사람들은 더 이상 두꺼운 패딩과 코트를 입지 않고, 한결 가볍고 편안한 복장을 취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괜히 기분도 좋아졌고, 밖으로 나가고픈 날이었다.


사실 봄은 2월 4일에 시작되었지만, 당시 기후는 체감상 늦겨울과 초봄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날씨가 그만큼 변덕스러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따뜻한' 봄을 손꼽아 기다렸고, 최근에는 마침내 맨투맨을 입고, 셔츠를 걸치고, 또는 반팔티 한 장을 걸치고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공간을 찾아 나들이를 나가고, 꽃밭의 꽃 한 송이 한 송이도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날씨 좋고, 꽃과 나무와 풀도 더욱 푸르게 생기를 찾아가니, 이것이 얼마나 풍요로운 봄일까. 하지만, 나는 단지 봄 날씨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봄이 찾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 하나와 짧지만 깊은 위로 한 마디를 건네주고 싶다.



겨울은 너무 추웠고, 쌀쌀했기에 마음속 상처는 더욱 시렸다. 어서 봄이 와 따뜻해지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버텨내기엔 작년 겨울은 너무나 길었다. 몸과 마음이 차가워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방치해두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는 말은 항상 옳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것은 존재했고, 시간만 믿고 기다리는 건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히려 흉터로 남는 상처. 그것이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는 것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올봄부터는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는 거야!'라는 마음가짐을 다지기 전에 우선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지금껏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이 무엇인지, 그냥 덮어두려고 쌓아놓은 상처 꾸러미가 몇 개나 되는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조금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건드리는 일이니만큼 냉정한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어쩔 수 없다. 설렁설렁 넘어가 상처를 계속 질질 끌고 간다면 편안한 봄은 물론, 당장 내일의 편안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도피를 그만두고 상처와 대면하는 것, 그것이 편안한 봄맞이 첫 단계이다.


파악을 마쳤다면, 이제 그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 또한 힘들 수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 추억이 담긴 사진과 선물들을 버리는 일부터, 나빠진 대인관계에서의 수많은 관계를 재조정하는 일 등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녀왔던 상처를 떼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군가 장난으로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나에게 깊은 상처가 되는 것처럼,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한번 생긴 상처는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 이상, 덧나거나 흉터로 남는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내가 단 한 가지의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이다. 의지 없는 행위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오래가지 못한다. 단순히 연인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눈에 띄지 않게 모두 버렸다고 해서 완벽하게 상처가 지워진 것은 아니다. 사랑의 깊이가 깊을수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꾸만 떠오를 테니까. 여기까지가 두 번째 단계이고, 마지막 한 단계가 남았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상처를 완전히 극복해내기 위해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서는 단계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와중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상처는 더 이상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게 된다. 행복을 내 손으로 쥐려는 의지. 이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약이다. 약을 복용한다고 해도 곧장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조금씩 시간과 곁들여 인내심을 가지고 약을 복용한다면 언젠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 병은 허물어진다.



봄은 따뜻하고 편안한 계절이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며, 이유없이 들뜨고 설레는 계절이다.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친구와 함께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가기에도,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즐거운 여행을 떠나기에도 알맞은 계절이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행복한 추억을 마음껏 새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듣기만 해도 풍요로워지는 계절, 봄에, 기분 상한 채로 우울하게 지내며 한 해를 시작하는 것보다 이왕이면 훌훌 다 털어버리고 더욱 아름다운 '나'로 변신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우 쉬울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나 자신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강한 '의지'와 '끈기'가 있다면 어느 누구든지 따뜻하고 편안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대 가슴에 꽃이 피지 않았다면,
온 세상에 꽃이 핀다고 해도 
아직 진정한 봄은 아닙니다.

-이외수, 사랑외전 中


슬픔, 외로움 모두 털어버리고

마음 따뜻한 진짜 봄이 오길.


벚꽃엔딩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게.

작가의 이전글 당신은 신뢰를 잘하는 사람입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