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클로토

어제 아들과 성격과 예민함에 대해 그리고 공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봉사를 하는 단체에서 여성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여자들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며 이끌어가는 것이 정말 어려웠노라고 말했다.

자기는 아무래도 성격이 T에 가까운지 업무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갈 때 한사람 한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보다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 동료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상황 봐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질책하니 본인은 사소한 감정 문제로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 거다.

여성 동료는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리더는 사소한 것은 스스로 해결하고 일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동상이몽의 평행선이다.

그러면서 결혼하게 되면 결혼 상대자로 어떤 여성을 만나고 싶은지도 이야기했다.

여성스럽지만 감정이 쉽게 흔들리고 스스로 조절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보다 약간은 무뚝뚝해도 감정의 동요가 심하지 않는 여성이 더 괜찮게 느껴진다고 했다.

공감 부재에 대한 아들의 어려움 이야기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그런데 공감에 대한 이야기가 아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근무하면서 오랜만에 직원의 아픈 강아지가 요즘 어떤지 문득 떠올랐다.

강아지가 오래전부터 많이 아팠고 한 달에 백만 원가량의 돈이 들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했으며 호스피스에 가까운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 참, 강아지 좀 어때?"

"몰랐어요? 죽은 지 2주 정도 됐어요"

"그래? 몰랐네. 어떻게 된 거야?"

"밤 근무 끝나고 집에 가보니까 죽어있더라고요"


얼마나 놀랬을까 싶어서 위로한다는 의미에서


"마음이 어땠어?"

그랬더니 벌컥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 기분이 어떤지 감상을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아니, 울었어?"

"그럼 15년을 함께 살았는데 눈물이 안 나겠어요?"


순간 아들의 공감 부족과 엄마의 공감 결여가 겹쳐졌다.

어느 학생이 공감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니 어느 교수가 "사람을 사귀어보고 실연의 경험이라도 하라"라고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미안했다.

아직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마음.

아픈 반려동물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없어도 "많이 슬프지"했어야 했나 하는 미안함.

똑같은 경험이 아니더라도 자식을 키워본 부모라면 알만한 슬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

강아지와 15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다면 자식처럼 느껴질 텐데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말투가 상처되었나 하는 생각.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한 걸까.

공감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어서 이런 오해가 생긴 걸까.

어쩌면 자기애가 강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그로 인해 나 스스로 내 안에 고요히 머물러 본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일하는 내내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으며, 착할 때도 있지만 악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이타적이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지만 비겁하기도 하며, 내 생각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해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해도 시키며,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의도적이지 않으며, 단호할 때도 있지만 눈물도 많은 나는 이 자체로 존재가치가 있고 사랑받는 존재라고 위안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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