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사람과 운동하지 않는 사람

by 클로토

자아존중감은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그 자체로 소중하고 무슨 일을 잘 하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간혹 인기 있는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뉴스가 나올 때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고 사랑하는 팬들이 있는데 왜 그는 스스로의 생을 마감했을까 하는 생각.

어쩌면 그 저변에는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다.

마릴린 먼로의 미모를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고 멋진 여성이라 칭송했지만 당사자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장국영이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말한 것도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들이 바라본 자신을 사랑했으며 왜곡된 시선으로 만들어진 자기상은 인기가 떨어지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결코 사랑받지 못할 존재라고 생각했으리라.

자기 자신이 생의 중심임을 인지하는 자기존중감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특히 어린 시절 형성된다.


여행을 가기 위해 수영복을 사러 가게에 갔다.

어떤 수영복을 골라 입어봐도 볼품없는 몸을 가릴만한 수영복은 없었다.

비키니 스타일의 수영복을 입으면 절대적으로 빈약해 보여 반바지 스타일의 수영복으로 최대한 노출을 덜하는 것으로 골랐다.

삼십 대의 젊은 나이지만 몸은 삐쩍 말라 볼품없다고 스스로 느끼던 시절 이야기다.

어린 시절 지지 받지 못한 기억에 이런 신체에 대한 자신 없음이 정신세계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다 해주면서도 당당하게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는 것이 현모양처이고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요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요구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기애나 자기존중감이 부족했다.

거기에 배신당하고 울고 불며 상대방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을 당한 피해자인 나 자신을 더 질책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자신에게 분노하고 우울로 접어들었을 때 그래도 자기존중감이 바닥은 아니었나 보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자는 생각인지 삶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생채기에 요가라는 밴드를 붙였다.


요가하면 떠오르는 명상이 마음의 안정을 얻게 하리라는 기대로 시작했는데 운동하는 동안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평안을 선물했고 운동 후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기분이 업 되었다.

운동하는 동안 평온한 마음과 요동치지 않는 정신 덕분에 신체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이차적으로 우울도 치유되기 시작했다.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끙끙거리며 인내하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려고 했다면 결코 이 인생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몸이 건강해지니 웃음이 나오고 나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니 상처를 준 상대방을 과감하게 떠나보내게도 되었다.

다시 내가 그를 원했을 때 다시 만났고 그와 나의 마음의 경계를 확실하게 하며 의존하지 않고 홀로서기가 가능했다.


운동 종류 중에 달리기에 대한 예찬론도 많은 것처럼 잔잔한 요가의 명상 못지않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의 울분이 빠져나가는 경험을 한다.

숨이 차게 달리고 나면 마음 깊이 가라앉아 있는 마음속의 찌꺼기들이 뒤집어지고 거친 숨소리와 가쁜 입김을 통해 밖으로 다 뿜어내는 느낌이다.

고민이 있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을 움직이고 몸에 생각을 집중해 달려보면 마음속의 고민이 작아지고 머리가 산뜻한 공간으로 바뀜을 경험하게 된다.

결코 육체와 정신은 따로가 아니다.

육체가 곧 정신이고 정체성이다.


내 삶의 중심에 그가 아닌 나를 들여놨고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습관도 들일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운동이다.

몸이 망가지면 의지만 가지고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건강한 몸에서 나왔다.

그래서 사람은 운동하는 사람과 운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다고 본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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