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사인 시 '오누이'를 읽고 눈물이 펑펑 났을까.
저녁 요가를 다녀와 무심히 책상에 앉아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을 들쳐봤다.
시집을 뒤적거리다 펼쳐든 오누이는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밀려와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왜 이리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질까.
내 마음에 서러움이 있었을까?
이 작은 것들을 핑계로 실컷 울고 싶었을까?
책상 위 이리저리 나뒹구는 화장지를 한쪽으로 슬며시 밀어 치우며 노트북을 끌어당겨본다.
어제오늘 많은 생각이 오가고 글을 쓸 때 노출 범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적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며 수위를 정하되 글이 피상적으로 겉돌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 건지 고민했다.
에세이 쓰는 작가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느 깊이까지 하는지도 궁금했다.
글은 내 개인적인 이야기도 되지만 관계에서 도출된 이야기가 삶이므로 타인의 이야기도 분명히 들어간다.
내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누군가는 불쾌할 수도 있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하지 않을 텐데 의도치 않게 다른 뜻으로 해석되어 실망하고 분노한다.
누군가가 푸념 섞인 이야기를 하고 불만을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자체 검열이 되어 글이 쉬 써지지 않았다.
글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것이 누군가의 말대로 한 단계 도약을 위한 길목일까 생각도 해본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들어왔다.
눈시울이 붉어진 엄마를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묻길래 '오누이' 시가 너무 눈물 난다 했더니 시 한 번 읽어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음을 터트린다.
어느 부분이 그렇게 서럽더냐고 책상에 수북이 쌓인 화장지는 뭐냐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 표정.
"참 감성이 풍부하시네요" 하며 아빠에게 전화한다.
"아빠, 엄마가 펑펑 울어요"
"또 유튜브 보고 울고 있지. 핸드폰 뺏어라"
<오누이> 김사인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 생 손 끌어다 의자 등에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 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짝 당겨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