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3] 거쳐야 하는 과정

by 클로토

정체성을 찾는 시기가 부모님 세대에는 아마도 십 대 시절이었나 보다.

에릭슨의 사회심리적 발달과정이나 인생과업을 보면 청소년 시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며 어떤 방향성을 찾는 시기라고 돼 있다.

이 발달과업이 요즘 시대에도 과연 맞는 말일까?

나 또한 중학생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전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할 시간과 여건이 아니었다.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와 야간 자습은 정해져 있었고 그 틀안에서 개인적인 사유를 한다는 자체를 알지 못했다.

책도 교과서만 봐서인지 학생이 공부할 시기에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대학생이 되어 겨우 니체의 책을 읽으며 감상에 빠져보고 철학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느꼈다.

철학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나 이런 책도 읽는 사람이야' 하고 흉내도 내봤다.

남들 시험공부할 때 도서관에서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자라투스트라를 읽으며 나만의 고민에도 빠져봤다.

어쩌면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한 흔적이지만 내 삶에 침투되지 못한 몸짓에 불과했다.

깊이 있게 파고들 방법을 몰랐고 내 심연의 마그마를 흔들지 못하고 졸업했다.

남자친구와 대화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갈급함이 있었고 그와의 교통도 8할은 육체적인 관계가 더 많은 범위를 차지했다.

스스로 남자친구에게 한계를 두어 '더 이상 이 사람은 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상대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굳혀버렸다.

혼자 끙끙거리며 속앓이를 하고 마음의 빗장을 걸아 잠가가며 혼자 고립되어 갔다.

외로움의 감정을 감싸고돌며 "외롭다 외롭다"만 외쳐보았다.

그럴수록 남자친구에게 집착하게 되고 그만이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왜 20대가 되어 이처럼 나 자신에 대해 알 방법을 찾아 헤맸지만 제대로 길을 찾아들지 못했을까?

어떻게 했어야 했나?

뭔가를 알고 깨달아 간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본다.

싯다르타가 아닌 이상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이 온다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입 벌리고 서 있는 상당한 우연에 기대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며 대화하고 세상과 소통했다면 좋았으리라.

현인들의 책을 통해 좀 더 끈기를 가지고 방법을 찾아 마음 문을 열어갔다면 좋았으리라.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그 시기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에 과거를 되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고생했어. 00야"

"애썼다. 00야"

"얼마나 속앓이 하느라 아팠니"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2025년 5월

거쳐야 하는 과정

클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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