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우주, 나를 담은 우주

빠르게 재생산,소비되는사회에서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by 밍봄

나는 대체불가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나만의 색채가 뚜렷해서, 그 누구도 나를 따라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도, 사랑도, 사람도, 내 삶에서도. 나는 그 모든곳에서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제든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나만의 견고한 자리를 한 몫 단단히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만의 매력으로 나라는 우주를 꽉 채우고 싶었다.

세상의 소리들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가진 빛을 잃지 않으며 발광하는 그런, 별자리가 되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의 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고, 나는 점차 사라져만 갔다.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다가 디지털은 모든 것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럼으로 세상은 이제 모든 것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손에 쥐었다. 클릭 한 번으로 사진은 사진은 수십번 저장되고, 음악은 끊임없이 재생된다. 영화는 손바닥만 한 화면에 펼쳐지고,지나간 기억마저 클라우드 속에 압축된 채 수십 기가바이트 속에서 잠들어 있다. 심지어 이제는 AI기술을 이용하면 없는 것 조차 만들어 낼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안겨줬다고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 편리함 속에서 묘한 공허를 느낀다.

무엇이든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진짜는 어디에 있는 걸까. 진짜라는건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없는 걸 만들어낼 수도 있는 세상에서 진짜를 가짜로 만드는건 너무나 손쉬운거 아닌가? 우리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능력은 있는가?

무엇이든 쉽게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면, 그 순간의 무게는 어디에 있을까.

그 누구도 쉬이 답을 내려줄 수 없는, 그런 심오한 질문들은 꼬리를 물고 나의 머릿속을 부유한다.


모든 것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세상에서,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가치는 바로 '대체불가능'이다. 기계가 똑같이 찍어내는 음성과 영상 속에서도, 한 번만 스쳐간 웃음소리, 한순간의 떨림은 결코 복제되지 않는다. AI가 창작물을 대신해 창작해줄 수 있는 경지로 발전하고 사람의 감정을 지피티라는 이름으로 흉내내고 있으면서도 결코 따라할 수 없는건 그 사람의 고유성이다.

NFT라는 이름으로 디지털조차 희소성을 부여하려 애쓰는 이유도, 결국은 똑같다. 무한복제의 세상에서 ‘단 하나’라는 감각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을 지탱하는 대부분의 것은 본질적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어릴 때 받았던 생일선물이었던 스위스산 시계, 정확하지 않은 초침 소리조차 유일무이하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같은 모델을 구입할 수는 있겠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그때의 느낌까지 복원할 수는 없다. 연인이 건네던 “괜찮아”라는 짧은 말, 그 순간의 목소리 톤과 눈빛은 평생 다시는 재현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비슷한 것들을 얻고 잃으면서도, 사실은 대체할 수 없는 조각들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시대가 발전할수록 이 진실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동일한 것을 수십 개 만들어낼 수 있는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손때 묻은 것,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것, 단 한 번뿐인 경험에 목을 맨다. 복제의 시대일수록 ‘단 한 번’이 주는 감각은 더욱 값비싸진다. 기념품보다 여행에서 찍은 흐릿한 사진 한 장이 더 소중하고, 완벽한 음질의 녹음보다도 현장에서 들었던 삐걱거리는 기타 소리가, 가수의 갈라지는 목소리, 숨소리가 오래 남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도 그렇다. 세상에는 수많은 얼굴과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뿐인 나로 존재한다. 누군가에게서 떠나간다면 빈자리는 채워질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던 내가 사라진 자리는 끝내 같은 모양으로 복구되지 않는다. 바로 그 공백이, 우리가 서로에게 대체불가능한 존재라는 증거다. 그래서 내겐 추억과 감정이 소중하다. 그 추억은 다른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나 자신이 타인과 함께 만들어낸 추억이니까. 같은 것을 봤어도 나만의 필터로 걸러내고 남게 된 나의 감정이니까.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대체불가능한 순간을 축적한다는 의미다. 어쩌면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유일한 시간이다. 복제할 수 없는 오늘의 공기, 눈앞의 빛, 내 손끝의 온기.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하고, 살아내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려 한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삐걱거리고, 조금은 서툰 모습일수록 더 대체불가능하다. 기계가 따라 할 수 없는 결을 가진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존재. 그것이야말로 이 무한복제의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역설적 진실이다.


모든것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사고할 힘을 빼앗겨가고, 나만의 고유성을 잃어가는 것 같은 두려움도 느끼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것을 남기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비록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많을지라도, 나만의 언어로 필터링해 나만의 흔적을 남긴다. 이 모든 순간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유일한 시간이자, 나의 고유함을 축적해나가는, 대체불가능한 순간일테니까.

이런 순간들이 축적되다보면, 지금은 희미해진것처럼 느껴지는 나만의 별자리가 언젠간 다시 눈부시게 빛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 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내 별에 나만 알 수 있게 흔적을 색칠한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도, 그게 내 별인지 알 수 있도록.

눈부시게 빛날 그 날을 위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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