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사랑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무용함이 이루어내는 유용한 아름다움
여기 낭만과 사랑 없인 못 사는 한 사람이 있다.
아아, 낭만과 사랑이란 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굳이 시간을 내어 의미없는 무언가를 하고, 누군가가 보고싶어 나의 하루를 다 쓰며 그 사람과 만나고, 사랑을 나누며 싸우며 나의 소중한 시간을 다 쓰는 일.
낭만과 사랑, 효율성을 추구하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어찌보면 불필요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그런 것들, 나는 그런 것들을 갖고 살고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비효율 인간으로 살아왔던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이유는 무용함이 이루어내는 유용한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이다.
시대가 혼란하고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쓸모 있음의 가치, 유용함의 요구에 집착한다. 쓸모가 없어지면 생존과 생계에 위협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 삶을 직시하게 하는 것은 문득 발견한 꽃그늘 아래서 살아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무용해 대수롭잖게 보아 넘기는 매일의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속에서 영위하는 삶 말이다.
우리는 알게모르게 항상 사소한 것들의 도움 및 방해를 받고 있다. 강아지가 꼬리만 흔들어도 웃을 수 있고, 미세먼지만 심해도 우울하고, 소음만 심해도 떠나고 싶고 그렇지 않은가.
또한,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온기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한 사람의 다정함이 내게 다가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사랑이란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무용해보이는 많은 것들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유용함의 가치를 제공해주고, 하나의 멋진 무용이 되어 춤을 추며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밤이 되면 낮과 다른 일교차를 느끼며 서늘한 밤 공기를 마신다. 불규칙적으로 불어오는 밤 바람을 맡으며 강아지와 함께 밤 산책을 나선다. ‘톡톡-’하는 들릴 듯 말 듯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나의 아기 호랑이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빨리 걷고 있었던 나의 발걸음 또한 늦춰본다. 들릴 듯 말듯한 톡톡-거리는 그 발자국 소리와 색색- 거리는 나의 가족이자 작은 생명체의 숨소리는 나의 마음 한구석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자연스럽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오르고 있는 입꼬리를 애써 붙잡아낸다. 길을 걷다가 실실 거리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누가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그렇게, 작은 생명체와 조금 더 큰 생명체인 내가 함께 걷다보면, 어느새 우리만의 안식처에 도착한다.
안식처에 도착해서 벤치에 앉아, 우리는 잠시 일시정지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멈춰있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느린 속도로 흘러간다.
눈 앞에 흐르는 하천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빼곡하면서도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울창한 나무 숲을 바라본다. 졸졸졸 흐르는 하천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다보면 마음속이 고요해짐을 느낀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고요한 하늘속에 가장 반짝임을 내는 노오란 빛을 내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어, 오늘은 반달이네’, ‘오늘은 달이 꽉 찼네’, ‘오늘은 초승달이네’ 등 어제와는 달라진, 몇일전과는 달라진 달의 모양을 눈에 담는다. 그 후 시선을 양옆으로 돌려 두번째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본다.
오늘은 몇개의 별이 있는지 주의를 집중해 별을 찾아보며 별의 갯수를 세어본다. 어제보다 더 적은 별들이 있는지, 더 많은 별들이 있는지.
그렇게 한참을 달과 별을 눈과 마음에 담은 뒤, 마음에 고요를 찾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본다.
한시간 가량 소요되는 이 행위들은 몇년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의 일상 속 루틴의 한 장면이다.
이외에도, 동네에 새로 생긴 술집이 있으면, 술을 좋아하는 동네친구에게 연락해 술먹자고 제안한다. 우린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만나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삶의 고단함을 술과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계획에 없던 우리의 만남은, 새로 생긴 가게에 의해 생기고, 그 만남은 우리에게 힐링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나는 일종의 나만의 낭만을 찾아 하루하루를 보낸다. 낭만과 누군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삶에 활력을 가져다준다. 나는 그런 삶이 너무 좋다.
낭만을 추구하는 삶은 나만 살고 있는 게 아님을, 현대사회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삶이 아직도 있음을 약 몇주전에 갔던 크루즈에서 발견했다. 그러면서 나는 황홀해졌다.
약 3주동안 해외출장이 있어 통역사로 크루즈에서 일했다. 나는 특수경우로 약 3주간 크루즈에서 일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보통 크루즈 승무원들은 8개월동안 배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근무한다. 대신 4개월의 휴가가 주어진다. 한국에서 일하는 삶은 주말에 쉬는 대신 장기간 휴가내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지만, 크루즈의 장점은 장기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는 점이고 단점은 주말도 없이 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 8개월간 같은 부서에서 같은 사람들과 일하기 때문에 빨리 친해지고 정이 순식간에 쌓인다.
각자 계약날짜가 다르기 때문에, 8개월간의 계약이 끝나고 휴가를 가는 시기들도 다 다른데, 8개월간의 근무가 끝나고 휴가를 가는 동료에게, 내가 속해있던 부서의 직원들이 롤링페이퍼를 정성껏 만들어 서프라이즈로 전해주는 걸 봤다. 또한, 생일을 맞은 동료에게도 정성껏 만든 롤링페이퍼를 서프라이즈로 전달한다. 롤링페이퍼를 전달한 뒤 그날엔 다함께 크루바에 모여서 생일파티를 한다.
인터넷도 잘 통하지 않고 인터넷을 하려면 1분당 비싼 가격을 내야하는 탓에 크루즈의 세상은 아날로그 세상과 같다. 따라서 생일축하를 해주는 방식도, 이별의 아쉬움을 고하는 방식도 아날로그 세상에서 그랫듯이 낭만이 잔뜩 묻어있다.
동료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하나씩 다 프린트하고, 가위로 예쁘게 잘라, 예쁜 색지에다가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붙인다. 색지 또한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예쁘게 자르고 꾸민다.
사진을 하나하나씩 붙인 뒤에 그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을 편지처럼 수기로 사진 옆에 적는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낭만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생일축하 선물을 카톡으로 보내고 축하의 말도 카톡으로 보내는 게 아닌, 타자를 타닥타닥 쳐가지고 나의 스마트폰 화면에서 상대의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내는 축하가 아닌, 손수 사진을 인쇄하고 오리고 꾸미고 손글씨로 적는 편지라니. 정말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직원들의 행동에 로맨틱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 중 그 또는 그녀와 함께 찍은 예쁜 사진을 골라내 종이 위에 붙이고 예쁘게 재편집한다. 오로지 상대를 향한 애정으로 행하는 일이다.
정성으로 가득 찬 그 이별 롤링페이퍼와 생일 페이퍼를 주고 받고 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멋있고 아름다워보였다. 낭만을 알고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그들의 다정함과 애정에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나 또한 미약하게나마 그들의 낭만과 함께했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그들에게 보내 인쇄를 한 뒤에 옆에는 생일축하의 말을, 때로는 이별의 아쉬움과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언제나 행복하길 바란다는 축하의 말을 동봉했다.
한국으로 귀국을 하기 위해 하선을 하는 날 전날에는 가져간 공책에 손수 편지를 써서 미약한 선물과 함께 전달했다. 그들로부터 3주동안 받은 친절함과 배려, 따뜻함을 전하기엔 턱없이 모자랐지만 그럼에도 나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따라서 나 또한 그들의 방식에 맞춰 아날로그 식으로 감사와 애정을 전달했다. 그런 나의 미약한 정성표시에도 그들은 너무도 좋아했다. 본인의 방, 캐빈에다가 붙여놓겠다며 너무 고마워하던 예쁜 미소의 그녀가 생각난다.
나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너 일 끝났냐며 젤라토 먹으러 가자던, 내게 직원가로 젤라또를 사주고 같이 젤라또를 나눠먹던, 처음왔을때부터 나를 좋아해줬던 또다른 그녀 또한 생각이 나고, 나의 말을 애정을 담아 들어주고 이거 말하는 거 맞지?라며 본인의 에너지를 들여가며 내 이야기를 이해하려 노력하던 또또 다른 그녀도 생각이 난다.
이제 하선을 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너를 못본다고 내게 이야기를 해주며 아쉬움의 눈빛을 보이고 나를 껴안아주던 부매니저의 그녀도 생각나고.
5월의 3주, 2월까지 합치면 약 한달동안 함께 했던 그들이었지만 내게 남긴 잔상은 10년이상을 함께 한 친구들 못지 않게 강력하다.
그립고, 또 그립고 보고싶다. 그게 바로 낭만과 로맨틱함이 남기는 잔상이 아닐까.
애정과 고마움을 당연하게 여기고 잘 표현하지 않는, 해봐야 모바일 sns를 통해 이뤄지는 이 현대사회에서, 아날로그식 방식으로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내게 아주 깊은 애정을 남겼고, 강력한 힘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사람이 사람사이에 주는 치유와 다정함이 남긴 잔향이었다.
이처럼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로맨틱과 낭만을 택하고 누려가며, 어쩌면 사회와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그런 비효율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 가치 없어보이는 것을 그저 재밌게 하는 것, 사실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내게 스며들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자그마한 기적’이 아닐까.
주체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인간다움’이고 주체성으로 움직이는 인간인 나는 이 자그마한 기적을 믿는다.
이것이 내가 그간 비효율 인간으로 살아왔던 이유이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픈 이유이다.
무용함이 이루어내는 유용한 아름다움, 주체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자그마한 기적, 나는 그런 것들을 믿는다.
유용한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며 무용한 것이 도태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 시대를 큐레이팅하며 내게 주어진 무용함과 다정한 낭만을 오늘도 어루만지며 갈고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