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타고 흘러오는 나의 달콤 씁쓸한 초콜릿 같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
향이라는 건 참 신비한 성질을 가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현재 어디에 있든 그 향을 뿌렸던 그 시간 그곳으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간다. 여행지에 가면 하나의 향만 뿌려서 나중에 그 향을 맡으면 여행지가 기억나도록 하기 위해 여행지별로 새로운 향수를 뿌리고 그 여행지 이외의 곳에서는 전혀 뿌리지 않는다는 한 배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또한, 여행지에서 하나의 향수만 뿌렸고, 그 향을 맡으면 그때 그 공간으로 돌아간 것 같고 여행지가 기억이 나 너무 소중해 한국에서는 뿌릴 수 없는 향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언제 어디에 있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생생한 기억이 나도록 도와주는 성질을 가진 것이 또 있는데 그건 바로 음악이다. 음악 또한 향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추억을 현재로 끌어와 그때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
그 추억은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일 수도, 꺼내자마자 자연스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급격히 차오르는 아픈 기억일 수도, 달콤 씁쓸한 기억일 수도 있다. 우리의 추억은 다채로운 나날들을 품고 있으니까.
나에게도 노래가 불러올 수 있는 추억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추억들 중에는 너무도 행복해서 꺼내보기도 아까운 추억도 있고, 마음이 아프고 울컥하기도 하는 달콤 씁쓸한 추억도 있다.
그 달콤 씁쓸한 초콜릿 같은 추억 중 하나는 노래를 듣지 않아도, 노래방에 가는 것만으로도 자동으로 플레이되어버린다.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테이프 태엽을 감아 그때의 기억을 현재에 리플레이시켜버린다.
그 이유는 노래방 인기차트 100에 항상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고, 그와의 추억도 노래방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노래와 장소 그 모든 것이 통합되어, 나의 추억을 강제로 상기시켜 버린다. 나에겐 ‘추억’이라는 이쁜 이름을 붙여주기도 싫은 아픈 ‘기억’, 아픈 추억을.
나에게 몇 없는 아픈 노래 중 하나인, 김동률의 감사.
이 노래를 어제 노래방 차트에서 마주한 순간도 어김없이 그때의 추억이 다시 재생되며 나의 마음을 가슴 아프게 적셔버리는 마음의 비가 내렸다. 다행히도, 이제 눈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만 적셔질 뿐이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감사란 노래제목을 보며 태연하지 못한다. 태연한 척을 할 뿐.
그와 내가 만난 건 19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와 난, 같은 반이었지만 친하지는 않았었다. ’ 대학‘이란 것이 나의 삶에 중요가치로 자리 잡은 19살, 고3이었던 나는 남자에게 관심을 갖기보단 쉬는 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수학문제를 풀곤 했고, 그런 탓에 그와의 접점은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입시가 전부였던 고3에게도 숨 쉴 구멍은 있어야 했고, 그 당시 나의 숨 쉴 구멍은 친구와 석식을 먹은 뒤 야자가 시작하기 전에 가는 코인노래방이었다. 1000원에 5곡이던 시절, 우리는 2000원을 넣고 10곡을 신나게 부른 뒤,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석식을 먹은 뒤 친구와 함께 코인노래방에 갔다. 그곳에서, 그냥저냥 아는 사이었던 같은 반 여자아이 K를 만났다. K는 나와 친구에게 합석을 제안했고, 해맑은 얼굴로 ‘우리 그럼 합석하자. 어때?!’라고 얘기하는 그 아이를 친구와 나는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합석을 하게 되었고 그녀와 함께 방문으로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그녀가 동성친구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줄로 짐작하고 합석을 동의했던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당황을 공유했지만, 내향형이었던 우리는 그 당황을 전달하지 못한 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같은 반이었기에, 서로의 이름은 알고 있었던 우리는 통성명은 하지 않은 채 바로 노래를 부르길 시작했다. 낯을 많이 가리던 나의 친구와 나와는 다르게, K는 낯가림도 없이 거침없었고 그런 그녀가 첫 타자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 옆에 낯을 많이 가리는 것으로 보이던 그는 그녀가 노래가 끝난 뒤 바로 다음 타자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때 부른 노래가 김동률의 ‘감사’였다. 관심 없는 표정으로 그냥 노래방 기계를 쳐다보고 있었던 나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의 이상형은 노래 잘하는 남자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노래를 잘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는 ‘감사’를 듣고 있으니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고, ‘감사’를 부르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때부터 공부가 1순위이던 나에게 사랑이 1순위로 인사이동이 되었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금사빠’이자, 무언가에 꽂히면 그거에 돌진하는 성격을 가졌던 나는, 조심스럽게 플러팅 하는 법을 몰랐다. 사랑이란 자고로 조심스럽게 마음조각들을 하나하나 수집해서 사랑의 퍼즐을 완성해야 하는 것임을, 그때의 나는 어리석게도 그런 걸 몰랐다. 어리석었고, 과하게 순수했다.
사랑의 조각은 하나도 줍지 않고, 그에 따라 당연히 사랑의 퍼즐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모른 채 그에게 좋아한다고 돌진했다. 이전에는 관심도 주지 않던 애가 갑자기 같이 노래방 가자고 이야기를 하고, ‘안녕’하며 어색하게 인사를 하곤 했다. 내향형이고 소심하던 내가 이렇게나 저돌적으로 급발진할 수 있는지 이때 처음 알았다. 사랑은 사람의 다른 모습을 꺼내어 보이게 한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몸으로 다 표현했는데,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 ’H‘를 너무 좋아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했다. 나의 도움요청에 의리녀였던 나의 친구는 두 손 걷어붙이고 양방면으로 도와줬다. 내가 대시하고, 친구도 그에게 너 오늘 뭐 하냐고, 같이 놀자고 이야기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같은 내향형이었던 그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눈이 질끈 감겨질정도로 아찔하다. 어떻게 이렇게 좋아하는 티를 온사방에 다 냈던 건지,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엽고 순수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정말 어리석었고 미친놈 같았다.
그래도 착했던 그는, 눈을 도륵도륵 굴리더니 알았다며 같이 노래방을 가줬고, 그때도 어김없이 김동률의 ‘감사’를 불렀다. 그렇게 ‘감사’를 부르던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귀로 듣고 눈으론 노래 부르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사랑이라는 바다에 더욱 깊게 몸을 던졌다.
몇 번 나의 말, 행동에 응답해 주며 함께 해주던 그는, 그러다가 지쳤는지 싫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싫다고 이야기도 했고, 나를 양방면으로 도와주던 나의 친구에게도 싫다며 이야기를 했다. 그 말에 상처받은 나는 화장실로 도망쳐 눈물을 한껏 뽑아냈다. 그때가 처음으로 사랑 때문에 눈물 흘렸던 날이었다.
그렇게 눈물을 한껏 흘리고 난 뒤에도, 나는 마음을 접지 않았다. 한번 찍어 넘어가는 나무가 어딨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갔고, 그의 친구이자 나와 친했던 나의 친구 남사친에게 그를 데리고 노래방으로 와라, 같이 놀자고 이야기를 했다.
내 남사친이자 그의 친구 었던 B는 너무도 착했고, 그에게 고대로 그 말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어떤 말을 더 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니. 나와 친했던 그였기에 나쁜 말은 하지 않았으리라 예상이 되지만, 사실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내 남사친이 전한 말에 빡이 돈, 내 짝사랑남 H는 B에게 당장 나한테 전화를 걸라며 이야기했고, 그 친구의 폰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온갖 쌍욕을 한참을 퍼부은 뒤, 마지막엔, ‘적당히 해라, 진짜 개빡치니까‘라는 말로 마무리한 뒤 전화는 끊어졌다.
살면서 쌍욕을 좋아하는 이에게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바로 내가 그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그가 화나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서러운 마음만 배로 더하여 올라왔다. 그렇게 난 탈수가 올 게 걱정될 만큼 눈물을 퐁퐁 흘려냈다.
사실 머리가 크고 그때보단 다양한 세상과 다양한 사람을 경험한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때 그는 그렇게 화가 나서 쌍욕을 했던 걸까. 당연히 앞만 보고 돌진하는 내가 귀찮고 질리기도 했겠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쌍욕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등하교 시에 그에게 ‘안녕’하며 인사를 건네고, 하교 시에 같이 노래방 가자며 이야기를 했지만, 싫다고 하면 미련 없이 돌아섰다. 아니, 미련은 가득 담았지만 그래도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아마, 친구를 통해서 본인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던 걸까, 아님 내 좋아하는 마음, 사심을 채우려고 본인의 친구를 이용한 것처럼 보였던 걸까. 자기 친구였지만 내 친구였기도 했는데 데리고 같이 노래방에서 놀자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걸까, 사실 지금도 이해는 안 된다 왜 그가 그렇게까지 화가 났었는지는.
내 남사친과도 이 사건 이후에 엄청 어색해졌고, 그와는 이 사건 이후에 본체만체하며 쌩까는 사이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나를 대놓고 쌩깠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 이후에는 나도 상처받은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고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그와 나의 사이는 벌어졌고, 졸업할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고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그 사이에 같은 반 여자아이인 K가 화장실에서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 친구들에게 얘기하며 내 욕을 하는걸 나의 친구가 들어 내 친구와 K가 싸웠던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K 또한 그를 좋아하고 있었고 자기가 먼저 좋아했는데, 자기가 소개해준 격이었던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에게 대시하고 좋아하는 걸 티 내던 것이 아니꼬웠나 보다. 그래서 온갖 거짓말을 섞어가며 친구들에게 내 욕을 하던걸 내 친구가 화장실 갔다가 듣게 되어 화가 엄청 나서 나 대신 싸워준 사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K가 온갖 이간질과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 었기에, 그에게 온갖 거짓말을 섞어가며 내 욕과 이간질을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나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자기 친구를 이용해 나의 사심을 챙긴다는 쪽으로 왜곡해 생각이 흘러갔으면 그렇게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생각하긴 싫지만 내 남사친이었던 B가 내가 같이 놀자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래서 본인이 짜증 나거나 귀찮다는 이야기를 함께 전했다는 가설도 세워지기는 하는데 과연 착하고 나한테도 장난도 잘 치고 나랑 친했던 B가 그랬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온갖 가설을 세워보며 그를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그때의 그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난 아직도. 가끔.
아직까지도 그와 나의 사이는 미완이다.
이제 그는 나를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를 잊을 수가 없었고, 없다.
어떻게 잊겠어, 그렇게 좋아했던 너를. 그리고 그렇게나 쌍욕을 나에게 퍼부었던 너를.
‘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그 어디에서도 나의 사람인 걸
잊을 수 없도록 늘 함께 할게요
단 한순간에도 나의 사랑이란 걸
아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
절절한 사랑고백의 로맨틱한 이 노래를 들으며, 난 내 마음이 젖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낀다. 요즘도.
“ 요즘 난 어때, 네가 봤을 때 괜찮아 보이는지 궁금해.
요즘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는 모르거든 ”
*김동률- 감사
데이식스- 아픈 길
위의 노래를 인용하여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