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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Jun 28. 2018

연애의 종말

결혼한 지가 1년이 더 넘게 지났다. 사이 좋은 결혼은 관계를 외부에서 내부로 체화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제 남편을 신체의 일부처럼 느낀다. 그와 동시에 내 인생에서 연애가 완전히 종결되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인생은 여전히 기니까 지금 당장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주제라는 것도 알고 있다. 좀 더 긴 시간이 흐르면 연애를 하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 시점으로서는 내 안에서 연애란 텍스트가 완결되어버렸다. 그동안 당신의 연애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자막이 뜨는 것 같았다. 결혼 직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놀랐다. 이 사실은 소화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연애는 나에게 대충 이런 것이었다. 평소에는 별다른 의식 없이 살았던 한 인간이 상대를 만남으로써 본인의 성적 지향성을 몹시 실감하게 되고, 그 센서가 극도로 예민한 상태를 유지한다.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모래사장에 흩뿌려진 모래가 어디서 왔는지와 상관없이 모래는 모두 모래인 것과 같았다. 하지만 연애를 할 때는 비로소 내가 이성애자인 여성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몹시 신경 쓰였다.


왠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특정 성별의 자신을 신경쓰는 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는데 연애를 할 때가 그랬다. 그 무렵 나는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갖고 있었고, 누군가의 행복을 간절하게 빌었다. 지금도 남편이 소중하고 그의 행복을 빌긴 하지만 형태가 다르다. 현재의 애정은 이미 어느정도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라면 연애 때의 마음은 훨씬 부드럽고 아직 모양이 잡히지 않은,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연애 때는 이브이였지 샤미드나 쥬피썬더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브이는 아주 귀엽다(어쩌면 진화한 후보다도). 무엇보다 연애를 할 때의 나는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안위, 끝없이 팽창하는 나의 에고를 억누르고 오직 단 한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로부터 꽤 긴 시간이 지났고 그 얼굴은 이제 내 자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가끔 내 안을 잘 들여다보면 한때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던, 그러면서도 여전히 타인인 사람이 앉아있다.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연애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렸다. 그 때의 감정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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