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 이야기(사례 20)

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33)

by 운상

기도성취로 꿈을 이룬 혜성(20), 우룡 큰스님 법어집 중에서


평안북도에 있는 묘향산 염선봉 절벽 위에는 조그마한 암자 상원암(上元庵)이 있습니다. 조선 초기, 이 암자에는 시운선사(時雲禪師)와 혜성(慧成)이라는 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시운선사와 절친한 친구의 아들인 혜성의 본명은 최치록(崔致祿)으로,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스님을 따라와서 이 암자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시운선사는 “내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달라”는 친구의 유언대로 혜성이의 나이 스물에 이르자 혜성이의 장원급제를 위한 천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혜성이가 꼭 성공하도록 하옵소서.’


밤낮으로 간절히 기원하기를 1천 일, 마침내 기도가 끝나는 날 스님은 혜성이를 불렀습니다.

“혜성아, 이제 그만 속세로 내려가 과거를 보도록 하여라.”


스님에 대해 친부모 이상의 깊은 정을 느꼈던 혜성은 조금이라도 더 스님 곁에 있겠다고 졸랐습니다.


“장원급제하여 백성들을 잘 보살피는 것도 부처님과 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 이제 때가 되었느니라.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내려가도록 하여라.”


스님의 단호한 태도에 혜성은 더 이상 보채지 못하고 길을 떠났고, 혜성이 떠난 후에도 시운스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축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디 혜성이가 입신양명하도록 은덕을 베풀어주시옵서서.”


어느덧 해가 바뀌고 오곡이 무르익는 늦가을이 되었을 때, 시운스님은 겨울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 묘향산 밑의 안주(安州)로 내려가 탁발을 했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돌면서 적지 않은 공양미를 시주받은 스님은 암자를 향해 발길을 돌리다가, 몇 가지 물건을 사기 위해 장터로 갔습니다.


스님이 막 장터로 들어섰을 때, 젊은 거지 하나가 장삼자락을 잡고 애처롭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을 굶었습니다. 배가 고파 죽겠으니 부디 적선하십시오.”


시운 스님이 엽전 몇 닢을 꺼내어 가엾은 거지의 손에 주어주자, 거지는 거적을 벗으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스님은 거지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너는 헤성이 아니냐?”

“앗, 스님!”


“그렇게도 오랫동안 부처님께 빌었건만, 장원급제는 고사하고 거지 신세란 말이냐?”


시운스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혜성이에 대한 기대 밖의 운명과 처참한 현실에 대한 저주와 분노는 부처님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내 어려서 절에 들어와 60년 동안이나 부처님을 섬기며 ‘해달라’고 한 것은 이 아이의 입신양명뿐이었는데……, 이 아이가 거지가 되다니!”


스님은 몸을 돌려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백여 리나 되는 험한 산길을 한걸음에 뛰어올라간 스님은 부엌칼을 집어 법당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이 허수아비 부처야! 사람을 이렇게도 속일 수 있단 말이냐? 에잇!”


스님의 손에 들린 칼은 쇠로 만든 수처님의 복부로 향했습니다. 칼은 부처님의 배를 깊이 꽂혔고, 실성한 듯 시운 스님은 절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돌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저주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시운스님의 발걸음은 묘향산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상원암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아, 부처님의 배에 꽂은 칼은 아직 그대로 있는지…….”


스님의 발길은 저절로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암자에 도착하여 법당의 문을 열자, 배에 칼을 꽂은 부처님이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깊이 죄의식을 느낀 시운스님은 먼저 부처님의 배에 꽂힌 칼을 뽑아드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들어갈 대는 그토록 쉽게 들어갔던 칼이 아무리 힘을 써도 뽑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꽂힌 칼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포기하고 법당 앞뜰에 앉아 옛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산 아래에서 요란한 풍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의심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여러 관속과 하인들을 거느린 행렬이 암자를 향해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 마당이 요란해지더니 젊은 관속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안주목사 행차요.”


조선시대 암행어사.png 안주목사 행차


할 수 없이 시운스님은 목사의 행차를 맞이했습니다. 가마에서 내린 안주목사는 다 떨어진 옷에 주름 투성이의 얼굴, 봉두난발(머리털이 마구 흩어진 모양)이 된 스님의 얼굴을 보고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이고, 스님 이게 웬일입니까?”

“누구더라? 누구십니까?”


“스님, 저 혜성이옵니다. 혜성이.”

“혜성이? 오, 혜성아! 네가 틀림없이 혜성이렷다?”


혜성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리자 스님은 혜성을 부둥켜안고 감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곧이어 혜성은 그동안 겪었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암자를 떠나 과거를 보러 가던 중 몹쓸 돌림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였고, 그 후 구걸하면서 연명하다가 시장에서 스님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스님을 만난 다음 마음을 다잡아 과거에 급제하고 안주목사에 제수되어 가장 먼저 스님을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혜성은 시운스님을 모시고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합장 배례한 후, 부처님께로 다가가서 배에 꽂힌 칼을 한 손으로 쉽게 뽑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당돌한 소행을 용서하십시오. 실은 어젯밤 꿈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 칼을 빼도록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뽑은 칼을 시운스님께 건네주는데, 그 칼에는 뚜렷이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운속죄(時雲續罪)’


시운스님은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일백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행하는 참회좌선(懺悔坐禪)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앞에 청수(淸水) 한 그릇과 부처님을 찔렀던 칼을 놓고 깊이깊이 참회하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21일이 지나자 칼에 새겨졌던 ‘시운속죄’라는 글씨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시운스님은 참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자기의 죄가 소멸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윽고 단식참회 30일이 되었을 때 탈진한 시운스님은 부처님 앞에 쓰러져 입적하였습니다. 그때가 1459년(세조 5) 8월이었고, 소식을 들은 안주목사 혜성은 후히 장례를 치르고, 절기에 따라 극진히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가피가 빨리 찾아올 때도 있고, 늦게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절인연(時節因緣)입니다. 그러나 시절인연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불자들은 하소연을 합니다.


“백일기도를 했는데도 소원성취는커녕 기별도 없습니다. 기도를 하면 정말 이루어지기나 하는 겁니까?”

더 급한 사람은 이렇게도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기도를 하여 소원을 이룬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그런데도 스님들은 자꾸 기도만 하라고 하니……, 차라리 다른 종교를 믿을까 봐요.”


하지만 기도의 가피가 조금 늦게 찾아든다고 하여 조급증을 낼 일이 아닙니다.


태양이 천하를 비추지만, 산봉우리에는 빛이 먼저 찾아들고 골짜기에는 빛이 나중에 찾아드는 것과 같이, 기도성취의 인연이 무르익으면 성취의 시절은 저절로 다가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기대와 기도성취의 애착은 큰 착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운스님의 경우를 잘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언뜻 보면 시운스님의 기도는 도중에 완전히 옆길로 빠진 듯이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전혀 다릅니다.


혜성이는 시운스님의 기도로 인해 더할 수 없는 가피를 입었던 것입니다. 돌림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다한 혜성……, 다수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피가 미치지 않아 혜성이 그와 같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언젠가 혜성은 불치의 돌림병으로 신음하고 거지가 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한 과보를 반드시 받아야만 했습니다. 만약 혜성이 한 생(生)씩 한 생씩 그와 같은 과보를 받았다면 입신양명은 몇 생 뒤에나 기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혜성이 몇 생 동안 받아야 할 업을 3년 만에 모두 받았습니다. 시운스님의 지극한 기도 덕분에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업을 한꺼번에 녹였고, 마침내는 장원급제하여 시운스님의 기도 발원(發願)대로 된 것입니다.


더욱이 부처님은 배에 칼을 꽂은 시운스님의 참회까지 바아 들였으니……. 어떤 사람은 이러한 과보조차도 없었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릅니다. 좋은 것만 바라고 기도를 하면 좋은 결과가 결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꺼이 받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결과가 훨씬 훌륭하게 다가옵니다. 이와 같은 원리를 깊이 새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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