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34)
일타큰스님 법어집 중에서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경산에는 김해생이라는 만석꾼이 살고 있었다. 말할 수 없이 노랑이었던 그는 어쩌다 밥상에 쌀밥이 올라오면 집안 식구 모두를 불러놓고 호통을 쳤다.
“왜 보리밥을 안 해 먹는 거야? 쌀밥만 해 먹으면 집안 망한다. 집안 망해!”
거듭되는 꾸중에 식구들은 쌀밥을 지을 때 보리쌀 한 사발을 솥 밑에 앉혀 노인에게만 보리밥을 주고, 그들은 쌀밥을 먹었다. 결국 그 집안에서 보리밥을 먹고살았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오직 김해생뿐이었다.
김해생은 전답뿐만 아니라 돈도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돈을 움켜쥐고만 살뿐 쓸 줄을 몰랐다. 그는 아내에게도 돈을 주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졸라도 돈을 주지 않자, 아내는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빌기까지 하였다.
“우리 영감이 제발 돈 좀 주게 해 주십시오, 돈 좀 주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이러한 기도도 김해생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김해생은 혼자 있으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다녔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자세히 들어보면 모두가 재산에 관한 것뿐이었다.
“저 건너 대추나무골 김생원한테 쌀 한 가마니를 빌려주었으니, 추수가 끝나면 한 가마니 반을 받을 것이다. 샘골 박노인에게는 소작료로 나락 열 섬을 받아야지.”
날마다 김해생은 받을 것을 계산하며 재물의 노예가 되어 살았다. 이렇게 한평생을 살던 김해생에게 어느 날 불시에 찾아온 것은 저승사자였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김해생은 평생 모은 돈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지 문갑 속에 넣어두었던 100원짜리 지폐 세 뭉치를 꺼내어 두 뭉치는 양손에 쥐고 한 뭉치는 입에 꽉 물고 죽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00원이 매우 큰돈이었다. 보통 사람은 한평생 100원짜리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김해생은 3만 원이라는 거금을 저승길로 가져가고자 했던 것이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돈을 빼내려 했지만 워낙 세게 쥐고 있어 뺄 수가 없자 시신을 향해 사정을 했다.
“아버지, 돈 주십시오, 돈을 주셔야 장사를 치르지요, 이제 그만 돈을 놓으세요.”
그러나 죽은 노인은 쥔 돈을 놓을 줄 몰랐다. 그럭저럭 9일장을 끝내고 장지로 가야 할 시간이 되자 아들들은 결론을 내렸다.
‘억지로라도 돈을 빼내야지, 돈까지 묻을 수는 없다.’
하지만 완전히 굳어진 손과 입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손을 펴고 입을 벌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들들은 펜치로 아버지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부러뜨려 돈을 빼앗았고, 이빨을 모두 뽑은 다음 돈을 빼냈다고 한다.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돈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신의 몸은 고사하고, 자식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시신을 상하게 한 죄를 짊어지고 살도록 한 것이다. 돈을 잘못 쓰면 이토록 처참해질 뿐이다.
만약 돈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한평생 돈을 모으기 위해 아등바등 해본들, 막상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나와 함께 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사랑하던 사람인가? 아니다. 모두가 아니다. 오직 나의 업(業), 내가 지은 業만이 나와 함께 할 뿐이다.
집단이기주의적인 생각으로 60-80년 대의 국민 위에 군림하던 썩어빠진 폐습적인 전통을 만들어 국민의 정서를 병들게 하고, 국법질서를 어지럽게 하여 나라를 망국에 이르게 한 정신나간 집단과 무리들은 국민과 국가에 너무 큰 罪業을 지었기 때문에 하늘의 분노는 극에 달하여 결코 용서함이 없다.
이런 큰 罪業을 조금이나마 덜어 내는 길은 머리 숙여 마음속 깊이 반성하고 참회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폐습적인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지키려고 애를 써보지만, 재사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더미를 붙들고 함께 하는 것이 되어 고통만 더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늘의 처분은 이미 오래전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열심히 살되 지나치게 욕심을 내어, 욕망의 노예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타인을 억압하여 손해를 보게 하며 자신은 이득을 취하는 일로 罪業이 늘어나는 행동은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반성하며 되돌아 봐야 한다.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고통과 허무함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