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모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요즈음 위정자들의 행태를 보면, 투표 철에는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며 머리를 읊조린다. 되고 나면 국민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내로남불과 반성할 줄 모르며, 붕당을 이루어 패거리 정치를 하는 등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 더 나아가 권한을 누리려고 애를 쓴다.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질이 부족한 위정자는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이제는 오직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내로남불이 아닌, 자기 잘못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위국헌신의 사상이 갖추어진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백 사람을 대적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염파 장군과 인상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염파 장군과 인상여(재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염파가 조나라의 장군이었을 때 인상여의 공로를 인정하여 재상인 상경(上卿) 벼슬에 임명되어 염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다. 염파 장군은 이것이 몹시 불쾌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조나라의 장군으로서 수많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공로를 세워왔다. 이에 비해 인상여는 겨우 세 치 혀만을 놀렸는데도 나보다 높은 벼슬자리에 앉게 되었다. 더구나 그는 원래 비천한 출신이다. 내가 도저히 그의 밑에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는 주먹을 쥐면서 맹세하였다.
“내 인상여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모욕을 주겠다.”
인상여는 이 말을 듣고 염파와 마주치기를 극히 꺼렸다. 조정에서 조회할 때도 염파가 나오는 날에는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인상여가 밖에 외출했다가 멀리서 염파가 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수레를 돌려 그 자리를 피했다. 보다 못한 집안 하인들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저희는 고향을 떠나 대감께 와 있는 것은 오직 대감의 높으신 뜻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대감께서 지금 염파 장군과 같은 서열에 계시면서도 염 장군이 대감의 욕을 하면 왜 무조건 피하시고 숨는 것인지요? 그런 행동은 일반 서민들도 부끄럽게 여기는데 하물며 장군이나 재상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부족한 사람들인지라 이만 하직하고 고향으로 물러갈까 합니다.”
인상여가 그들을 말리며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나라 왕 중에 누가 더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하는가?”(인상여가 연회 자리에서 진나라 왕을 협박한 것을 두고 말함).
“아 그거야 진나라 왕이 더 무섭지요.”
“그렇게 무서운 진나라 왕을 나는 면전에서 꾸짖고 그의 신하들에게 크게 모욕을 주었다. 내가 아무리 모자란 사람이라 해도 염 장군을 무서워하겠는가? 다만 내 생각으로는 지금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공격해 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두 호랑이가 싸우게 되면 둘 다 망하고, 나라도 위태롭게 된다.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기를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뒤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 뒤 염파 장군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웃통을 벗고(당시에는 잘못을 사죄하며 때리라는 뜻으로 웃통을 벗는 관습이 있었다) 가시 회초리를 짊어진 채 인상여의 집에 가서 다음과 같이 사죄하였다.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이 몸이 당신께서 그토록 사려 깊으신 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목이 떨어져도 변치 않을 돈독한 친한 벗을 뜻하는 문경교우(刎頸交友)가 되었다.
인상여의 나라의 안위를 우선 생각하고, 개인의 감정은 뒤로 돌리는 행위는 오직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정신이 깃들지 않고서는 그런 행위를 할 수 없다. 염파 장군 역시 자신이 속 좁은 행위를 늦게나마 깨닫고, 인상여의 사려 깊은 처신에 깊이 감동하고 진심으로 사죄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아름다운 행위인가? 대장부의 기상과 호연지기, 포용력을 겸비하지 않고서는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오늘날 나라의 흐름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정자들의 수준이 일반 평범한 국민의 정치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내로남불을 일삼고 반성할 줄 모르며, 붕당을 이루어 패거리 정치를 하는 등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저 정권을 잡고 의석수만 늘이는데 정신이 팔려 나라의 안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오래된 폐단은 바로잡지 않고서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이런 폐단을 바로잡는 것은 후고거(朽故車:썩고 부패한, 오래된 수레)를 새것으로 완전히 바꾸는 일이다. 이런 과정은 오직 국민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됨으로써 국민에 의해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 수십 년간 이어온 잘못된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새롭게 정치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하는 절차를 진행할 때라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낡은 정치체제는 정치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후세들에게 나라를 이대로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중국 봉건제도 하에서 국가 시스템의 한계에 부딪쳐 쉽게 타락하고 멸망의 길로 이른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 봉건제도 하에서 황제는 오직 권력만 쥐고 있고,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적 감독 장치가 미약하여 나라의 통제 능력을 잃음으로써 권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쟁취하는 데 국력을 소비 함으로써 국가 시스템이 붕괴하고 백성은 혼란에 빠지게 되어 나라가 무너지는 시기를 앞당기는 기회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국민 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지고 난장판이 되고 만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흐름이 이와 유사한 점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심히 경계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염려스럽다.
이제는 국민들이 분발하여 선진국 수준의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 개인의 감정을 뒤로하고 나라의 안위를 먼저 걱정할 수 있는 이런 위정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멀리 내다보고 그릇이 큰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위정자들은 자신이 솔선수범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산길을 가는 사람이 이정표를 따라 가면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위정자는 나라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참신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신뢰를 보내며 따라 가게 된다. 그럼으로써 나라의 풍습도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 바뀌면서 안정되고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그저 보고 만 있지 말고, 잘할 수 있도록 비판할 줄 알아야 발전이 있게 된다.
인간은 행위에 의해 현명한 사람도 되고 어리석은 사람도 된다. 현명하고 어리석음은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비록 전국시대에 일어났던 사안이지만, 위와 같은 점은 正面敎師(정면교사)로 삼아 깊이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대목이다.
註)사마천은 인상여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 번 용기를 내어 위엄을 천하에 떨치고 물러나서는 염파에게 양보하니 그의 명성은 하늘보다 더 높고 태산보다 더 무거웠다. 실로 지혜와 용기를 함께 지녔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