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70)
1) 에드가 케이시의 삶과 업적 등 평가
신문의 보도와 리딩을 받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케이시는 차츰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어떤 투기꾼은 주식시장에서 매일 리딩을 해주면 2주에 100달러를 내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케이시는 매우 돈에 궁색했지만 거절했다. 땅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 경마에서 어떤 말이 우승을 할 것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 등 많은 요구도 있었다.
그러나 경마에서 예언이 빗나가는 일이 몇 번 있었다. 결국 자기의 능력이 환자를 도와줄 때에만 믿을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 목적을 위해서만 능력을 써야 하며, 자기를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돈벌이를 목적으로 그 능력을 써서는 안 됨을 그때에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일이 결코 없었고, 동네 사람들은 그가 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 말고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사교적인 단체나 친목 단체 따위에는 속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도움을 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일관되게 살았던 것이다. 그는 세간의 주목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초기에는 케이시는 사진사로서의 직업을 계속하며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리딩에 대한 보수를 완강히 거부했다.
나중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자 사진사로서의 직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비로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약간의 보수를 받는 것은 무방하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도와주었다.
그는 리딩을 의뢰받고도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의 능력이 자신의 건강과 정신 상태로 좌우되는 것이 명백했다.
그의 리딩이 실패하는 것은 시간이 늦어서 암시를 여러 번 되풀이하거나, 또는 몸이나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였다.
때로는 낫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날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도 몇 달 뒤에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더니 당신이 말한 것과 똑같은 진단이 나왔다며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투시의 투명도와 정확도가 더더욱 높아져 갔다.
이러한 투시 능력은 항상 겸손하고 회의적이며 양심적인 그의 태도에 의해서 일그러지지기도 하고 방해받기도 하였지만, 결국은 신이 주신 능력이지 악마가 준 능력은 아니라는 믿음을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자인 휴고 뮌스터버그는 케이시의 투시능력에 대해 매우 회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케이시를 찾아왔다.
그러나 케이시는 어떤 도구도 없이 다만 대낮에 긴 의자 위에 몸을 눕히고 간단하게 암시를 받는 것만으로 최면 상태에서 뚜렷이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는 것을 직접보고는 깜짝 놀랐다.
뮌스터버그는 케이시가 리딩을 하는 현장을 면밀히 관찰했다. 또한 케이시의 투시로 병이 나은 사람들과 면접을 하고, 그때까지의 리딩 기록을 샅샅이 조사하기도 했다.
그는 최초에 무당들이 쓰는 장치나 도구의 속임수를 멋지게 폭로하겠다는 의도로 케이시를 찾아왔지만, 그가 돌아갈 때는 케이시가 틀림없이 진짜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뮌스터버그는 실제 기록이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와 케이시라는 한 인간의 소박하고 성실한 인품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의 의심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 인도적이고 과학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호의적인 사람들 가운데 케이시가 리딩을 해주고 또한 리딩에 따른 치료를 실제로 해줄 수 있는 병원을 세우려고 계획한 사람도 있었다.
케이시의 리딩으로 목숨을 건진 모턴 블루멘털이라는 부호는 그 꿈을 실현시켰다.
1929년 케이시 병원이 버지니아 비치에 설립되었다. 그 병원은 2년 동안 운영되었는데 후원자가 주식 시장의 폭락으로 재산을 날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고 말았다.
1942년 케이시의 전기가 출간되었고, 잇달아 1943년에는 <<버지니아 비치의 기적의 사나이>>라는 책자가 나왔다.
또한 잡지 「토로네트」 등이 앞장서서 케이시의 치유 능력을 미국 전역에 알리게 되었다. 그 결과 온 나라에서 편지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그래서 리딩은 이미 1년 반 이상 예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루에 둘이나 셋을 치료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요구에 응할 수 없어, 오전과 오후에 네 사람씩 하루에 도합 여덟 사람씩이나 리딩을 했다.
사실은 최면 상태, 곧 잠들어 있는 사이에 하는 리딩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런 끊임없는 긴장된 생활로 그는 마침내 1945년 1월 3일 67세의 일기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의 업적은 20여 년의 봉사 활동을 통하여, 약 2천5백 건의 실제 리딩 사례로, 그가 인간에게 투시 능력이 정말로 믿을 수 있도록 확증하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투시를 통하여 엄격한 현장 테스트로 통과하게 되었고, 그것이 진실임이 입증되었다. 결과적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리딩은 두 가지로 구분했다. 전생이나 성격을 말해주는 리딩은 라이프 리딩(Life-reading)이고, 육체와 건강 상태를 말해주는 리딩은 피지컬 리딩(Physical-reading)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윤회에 대한 성철스님의 견해와 LA 타임즈의 평가
윤회라는 것은 확실히 성립되는 이론인가? 근래 세계적인 대학자들도 윤회를 한다는 영혼 자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윤회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과학이 물질로서만이 아니라 정신과학도 자꾸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또한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점차 입증되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 <<자기를 바로 봅시다>>에서-
에드가 케이시의 기적 같은 치유력은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의 관찰과 분석을 통해 증명되고 기록된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서미나라 박사는 이 책에서 이런 치유와 윤회에 대해 예로부터 전해 오는 믿음의 확언을 다루고 있다.
윤회는 그녀의 가장 매혹적인 자질과 빛나는 재능과 탁월한 통찰력이 응축된 놀라운 결과물이다.
-LA타임즈-
지금까지 윤회에 대한 내용은 지나 서미나라 지음, <<윤회>>에서 참고하여 필요한 내용을 필자가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