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72)
불교신행 연구원에서 참고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조선 경상도 관찰사 직을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김안국이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명문 세도가인 김안국의 집은 대궐인 경복궁의 앞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김안국은 늘 초당에서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건너편 낙산 기슭에 사는 과년한 처녀가 김안국의 출중한 인물과 글 읽는 소리에 반하여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습니다.
상사병에 걸리다시피 한 처녀는 그믐날 밤에 김안국을 찾아 ‘손이라도 한번 잡아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김안국은 ‘사람 사는 도리가 그렇지 못하다’며 처녀의 종아리를 매로 쳐서 내쳤습니다.
그때 터진 종아리는 흉터로 남았고…….
그 뒤 김안국이 판서 벼슬에 올랐을 때의 어느 날, 일찍 홀로 된 며느리가 외간 남자를 별당에 불러들였다가 전송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께 죽어 마땅한 죄가 들통이 나버리자, 며느리는 속바지를 걷고 은밀한 곳에 상처를 만든 다음 소리쳤습니다.
“별당 밖에서 발을 걷고 있던 사람이 나를 겁탈하려 했으니 잡아 주시오.”
식솔들이 모두 나와 조사를 해보니 그 시각에 발을 걷고 있었던 사람은 김안국 대감이었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관가에 고발을 하여 ‘범인을 밝혀 달라’고 하였지만, 그 시각에 마당에 있었던 사람은 대감뿐이었고, 몸에 상처까지 있으니 정황으로 보아 상당히 대감에게 불리하였습니다.
영락없이 ‘며느리를 범한 시아버지’로 몰릴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유하게도 이 사건을 맡은 교리(판사)와 옥당(검사)은 형제지간이었고, 밥상머리에서 이 사건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홀로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냐?”
“저 앞마을에 사는 김안국 대감의 일입니다.”
문득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너희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나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 종아리의 흉터를 보아라.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는 지난날에 있었던 일을 두 아들에게 들려주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법을 다스릴 때는 법관의 입장에서 죄인을 다스리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교리는 다시 며느리의 상처를 조사하기에 이르렀고, 상처가 열이면 열 모두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에 의해 생긴 상처가 아니라 자해를 하였다는 명확한 증거였습니다.
결국 며느리가 자기의 허물을 덮고 살길을 찾기 위해 시아버지를 모함한 것이 모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이 이야기는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이 야기를 들은 중종 임금은 명을 내렸습니다.
“평소에 근면성실 하면 어떤 곤혹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신 공자님의 말씀이 참으로 맞는구나.
이 일을 만민에게 알려 본보기가 되게 하리니, 대감이 살던 동네를 ‘안국동’이라 명하여 길이 그 뜻을 전하도록 하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안국동’은 이렇게 해서 탄생하였지요. 그야말로 뜻이 깊은 지명이 되었어요. 평소에 올바른 마음을 먹고 올바른 행동을 하라고 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올바르지 못하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어도 이미 罪를 지은 것이라고 하였지요.
마음이 올바르지 못하여 삿된 행동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반드시 되돌려 받게 끔 되어 있는 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그러니 인생은 마치 살얼음이 낀 긴 강을 조심조심하며 건너가듯이 인생의 강을 늘 반성하며 건너가야 한다.
이왕이면 공동의 善을 행하며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주인공으로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